<책>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저,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

by 노각

이 소설에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시설 가운데 하나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했다. 최근에 796명의 유해가 발굴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야적장에서 석탄을 실어 파는 주인공 빌 펄롱은 매일매일 힘겹게 노동하면서 번 대가로, 아내와 딸 다섯과 함께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가 이런 일상을 위선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계기는 배달하러 갔던 수도원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아이들이었다. 제대로 입지도 씻지도 못한 상태로 너무나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극도의 노동을 하던 여자들과 아이들은 수녀들의 감시와 통제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해서 의문해왔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들추는 계기가 되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엄마가 일하는 집의 주인인 미시즈 윌슨은 세상의 멸시로부터 보호해 주는 큰 울타리였다. 극히 작은 존재인 자신을 아버지라고 떳떳하게 밝히는 일이 아들에게 누가 될까 봐 뒤에서만 깊은 사랑과 배려를 베풀어야 했던 네드 덕에 펄롱은 소소한 직업과 지역에서의 인심을 얻었고,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교회에 충실하면서 지역사회에 융합되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 만난 헐벗은 아이의 모습은 자신이 둘러치고 있는 가식과 위선의 껍데기를 자각하게 하였다. 한 손엔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내에게 줄 에나멜 가족 구두를 들고, 한 손으로는 신발로 신지 못한 채 수도원 석탄광에 숨어있던 아이의 손을 잡고, 한해를 마감하며 홀가분하게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으로 들떠 있는 거리를 지나 집으로 가는 펄롱의 가슴은 묘한 흥분으로 차오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그렇지만 할 일을 하였다는 충만감이 혼재된 흥분이었다. 자신의 엄마를 구출하였다는 안도감, 자신의 부모, 그리고 미시즈 윌슨의 사랑에 보답했다는 만족감도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 구조상 많은 대비가 보인다. 까마귀 떼가 내려앉은 수도원, 흰 눈이 내려앉자마자 삼켜버리는 검은 베로강,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반짝이는 광장과 안에서 자물쇠로 잠그는 수도원, 광장을 걸어가는 여자아이의 맨발과 에나멜가죽 구두, 석탄가루 범벅인 야적장과 따뜻한 난로가 있고, 다섯 딸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집 등, 옮긴이의 말처럼 섬세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편이지만 여운은 장편에 못 미칠 바 없다.

......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은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119p~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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