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에 사시는 할머니와의 대화는
내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달았던 추모 리본으로 시작되었다.
전라도 태생인 할머니는 아파트의 다른 할머니들과의 정치적 입장 차이로 소외감과 답답함을 떨치지 못하고 지내시다가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웠던 거다.
6.25 전쟁 때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을 잃은 경험을 얘기하면서 아직도 눈물을 흘리기도 하시지만, 반공주의에 빠지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시는 분이다. 정치적 식견을 넓히기 위해 TV토론 프로를 보시고, 책도 사 보시면서 스스로 판단하려고 노력하시는 면이 대단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시골에서 삼촌이 시금치를 한 상자 보내셨는데, 갑자기 아버지 간병을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 때라 보호자가 교대로 간병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도 않았다. 시금치를 옆집에 드리고 할머니께도 드리며 병원에 며칠 있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다음 날 할머니가 시금치나물을 해서 그릇에 담아 집으로 갖다 주셨다고 한다. 병원에 있는 나한테 전해주라고 했단다. 내가 드린 시금치를 할머니의 걱정과 사랑을 양념으로 무쳐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느새 80대 후반이 되신 할머니를 뵈면서 건강한 노후의 비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첫째, 공동체 생활이다. 성당을 다니시는데, 그 관계가 동네 친구로까지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신다. 둘째는 일을 놓지 않으신다. 초등학교에서 급식 도우미를 하시고, 집 앞 화단에서 자그마한 텃밭과 화초를 가꾸신다. 셋째, 자식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혼자 생활하시지만, 어떤 일이든 주위에 조언을 구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신다. 또 지역의 복지 서비스 정보를 잘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신다. 넷째, 변하는 세태에 민감하며 배우려고 애쓰신다.
물론,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경우가 많아지고 키도 조금씩 더 작아지시는 것 같지만, 벤치에 앉아 친구와의 대화에 열중하는 모습을 만나면 경탄하며 되돌아본다. '우리 엄마도 저러면 참 좋을 텐데' 혼자 중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