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주를 좋아했다. 그래서 추억도 많다. 봉황대에 올라가 맥주를 마시고 떼구루루 굴러 내려온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벌금 2000만 원에 해당하는 범법행위라고 한다. 어느 연말엔 친구랑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만 들고 경주를 찾았다. 불국사 저녁 예불 종소리가 좋다고 한 글을 읽고, 문 닫힌 불국사 경내에 담을 넘어 들어갈 생각으로 접근했다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개한테 쫓겨서 줄행랑을 쳐야 했고, 이정표도 없는 남산의 감실 부처(정식이름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일명 할매부처)를 찾아서 얼마나 헤매었던지, 바위에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안에 살던 분을 세상에 드러낸 듯한 부처님을 만난 감동을 더 깊게 하였다. 감은사지 탑의 담백하면서 웅장하고 거침없는 기상에 놀랐고, 대왕암 문무대왕릉이 보이는 정자에서 매서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에 차도, 지도도, 스마트폰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여행했는지 모르겠다.
긴긴 세월을 보내고 이번 여름에 딸과 함께 다시 경주를 찾았다.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여 경주의 문화유산을 둘러봤다. 대구보다 더 덥다는 경주 날씨를 우려했지만 조금씩 바람이 불어서 견딜만했다. 무열왕릉비의 꼼꼼한 조각, 대릉원의 초록 구릉과 압도적인 자태의 큰 나무들, 고요한 침묵에 잠기게 하는 석굴암, 불국사 석조 기단부의 돌멩이 하나하나의 존재감과, 관광객의 소란과 별세상인 듯 비로전 뒤뜰의 고요와 볕뉘와 새소리 등, 다 좋았다.
문화해설사가 불국사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도록 했는데, 이곳엔 특별히 맛있는 식당이 없다며 한 곳을 추천하는데, 말꼬리의 느낌이 다소 미심쩍었다. 맨 뒤에서 일행을 따라 가는데 조그마한 가게에서 여자분이 나오시더니 호객행위를 한다.
"여 오이소! 요런 데가 더 맛있습니다. 직접 농사지어서 반찬 만들어예."
그의 외침은 뜨거운 햇볕 아래 흩뿌려진 물처럼 그 누구의 주목도 끌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마저 외면하기 힘들어서 그 가게로 갔다. 식탁이 4,5개 정도 있는 작은 가게인데, 정말 직접 재배하고 조리한 밑반찬이 줄줄이 나왔다. 묵나물과 부추전, 오이무침 등 평범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맛깔스러운 반찬들이었는데, 특히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콩잎장아찌가 매력적이었다.
손님은 우리뿐이어서 여사장님과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는데, 큰 식당이 독과점하는 그곳의 상권 특성에 대해 설명하시면서도 별 불만은 없으셨다. 혼자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손님이면 되고, 여러 번 찾아주는 단골손님들로 보람도 있다고 하신다. 다만 외국 관광객들이 짜고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1,2시간이나 앉아 천천히 억지로 먹는 듯한 모습이 안쓰럽다며 그만 먹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다고 하셨다. 딸에게 영작을 해보라고 했다. 번역기의 검증을 거쳐 영수증 뒷장에 써 드렸다.
If the food doesn't suit your taste or full, you can leave it 한글로 발음도 써 드렸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우연적인 만남 아니겠는가? 그것이 풍경이든, 역사적인 내력이든,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든, 자연의 이치이든, 만남을 통해 자신이 확장된다고 느낄 때 풍족함을 느낀다. 특히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에 닿았다는 경험은 참 긴 여운을 남긴다.
황리단길 근처 숙소에서 묵으면서 황리단길을 샅샅이 훑었는데, 난잡하게 늘어선 간판들과 해외 물건으로 꽉 채운 소품샵, 아예 일본어로 쓰인 간판과 메뉴, 거리로 방출하는 일본 방송, 뻔하면서 중복된 놀거리 등이 못내 아쉬웠다. 천년고도 경주의 중심지가 고작 이런 모습인가 싶었다. 다행히 중심부에서 몇 골목 바깥에 경주의 이미지를 개성 있게 표현한 작가의 작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으로 재해석한 티룸도 주변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중심부로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사장님의 토로가 씁쓸하다. 뭔가 행정적인 지도와 관리가 필요한 부분인 듯하다. 세월과 역사가 빚어낸 이 소중한 곳이 돈벌이에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삶이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곳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