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토지

by 노각

작년 가을에 원주 토지문학관을 방문하였다. 작가 박경리의 집에 아직도 서려 있는 일상의 흔적과, 호미와 책, 고양이들을 함께 새긴 그의 동상을 보면서, 어찌하여 여태껏 토지를 읽을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질책이 일었다. 20권이나 되는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1부 네 권을 읽었다.

우선은 작가 박경리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다. 1969년부터 25년간 써서 완성한 소설이라는데, 1926년생인 작가가 43세에 시작하여 68세에 완결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후부터 해방될 때까지 50년 세월 동안의 평사리 사람들의 삶을 25년 동안 구현했던 것이다.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가면서 세상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은 얼마나 변하는가? 그런 속에서 자신의 과업을 한결같이 끌고 간 힘은 어디서 솟는 것인가? 작가 자신의 변화가 역사 속 인물의 구현에 미친 영향은 없는가? 소설을 시작한 1970년대에 일제 강점기와 식민지 시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어떤 자료를 참고했을까? 간략하긴 하지만 그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품평의 기반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학술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어쩌면 더 진솔한 풍문이 살아있는 시대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제목 <토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최참판댁 소작인들과 종들의 삶의 기반인 토지 소유관계가 일제 식민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모하고 그에 따라 그들의 삶도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꼼꼼하게 그려내기 때문일 테지만, 동시에 그 사람들 자체가 이 나라의 '토지' 즉 기반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질문은 다 읽고 난 다음 다시 정리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1부 네 권에서는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의 애증과 비애, 불운한 최참판댁 내 무겁고 질긴 사연, 양반이자 지주에 대한 동경과 저항이 빚어낸 사건 등이 펼쳐졌다. 세찬 풍파 속에서 싹을 피워내는 생명력은 억셌다.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냈던 당시 사람들의 거칠고 투박한 정서가 낯설면서, 내가 섬세한 만큼 허약한 시대를 살고 있음도 느끼게 된다. 이제 간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