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요양보호사 한나선생님

by 노각

엄마는 작년 척추 3,4,5,6번의 협착증으로 인한 고통이 심해져서 '추간공 확장술'이라는 시술을 받고 6주간 재활치료 이후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나 길어진 병원생활로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게 되었고, 거동이 매우 불안정해져서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온 후에 내가 엄마와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저녁 4시간 동안 돌봐줄 수 있는 요양보호사님을 찾았고, 그래서 한나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73세의 고령이시지만 동그란 얼굴에 반짝이는 눈빛과 적극적인 태도가 인상적인 분이셨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 분의 생은 몇 겁의 윤회를 거쳐오신 듯 현란했다. 깡패에게 납치되어 시작된 결혼 생활,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숱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고, 이혼과 아들의 죽음, 일본으로의 도피와 장사, 그리고 여러 종교에 귀의하다 결국 기독교에서 안식을 찾은 후, 늦은 나이에 시작한 재혼 생활의 어려움과 전 생을 통해 얻은 육체적인 고통 등 맥락을 따라가기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라고 눈물 섞인 토로를 하실 때에는 이 분의 폭풍우 같은 삶이 결코 자신의 방황이나, 욕망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감동받은 것은 이 질곡의 삶을 살면서도 절망하지 않은 점이다. 오히려 거뜬히 헤쳐 나오면서 체득한 삶의 지혜와, 세파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사랑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한 예로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다니실 때, 인지상태가 좋지 않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만져달라고 하자, 손으로 다독다독 해 드리고는 '어서 나아서 좋은 마누라님 만나세요.'라고 하셨단다.


그것은 이 분이 많은 경계를 벗어나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나와 너, 깨끗함과 더러움, 가짐과 못 가짐, 체면과 모욕, 노동과 휴식 등 어느 것에도 집착함이 없으시다. 이런 분에게 엄마는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으셨다. 씹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엄마를 위해 재료를 다 갈아서 영양식을 만드는 일에 열심이셨지만 음식 재료를 사달라는 요구를 거의 안 하셨다. 냉동실의 재료를 알뜰히 썼고, 반찬을 많이 가져오셨다. 하루 종일 기저귀를 하고 있는 엉덩이 쪽 피부를 유심히 살피시고 손발의 체온, 발 붓기 등 엄마의 몸 상태에 따른 조치를 취해주셨다. 틀니를 벗기고 거즈 수건으로 입안을 깨끗이 닦아 드려야 하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 엄마를 웃게 하려고 애썼고, 내색하지 않는 엄마의 심경을 들으려 하시며, 나에게 전달해 주셨다. 또 나의 편의를 많이 봐주셨다.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워하셨던 덕택에, 4박 5일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고, 1주일에 걸친 수술과 병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못 본 척 못하셔서 길에서 채소장사하시는 할머니의 사채 빚을 탕감해 주느라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하셨는데, 이 분이 사람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는 이념적인 도덕성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깊은 인간애가 바탕이 되어 있는 듯하여 참 흉내내기 힘든 면이 있다.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분을 만났을까 생각해 본다. 유난히 엄마를 아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음덕인가? 아님 엄마의 복인가? 내 복인가?


하지만 1년을 못 채우고 떠나시게 되었는데, 남편분의 선교사업에 대한 열망을 꺾지 못하고 훤히 보이는 고생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아기 같은 엄마 옆에서 엄마의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한나샘이 그만두시는 날, 나는 예쁜 꽃다발에 지난 시간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담아 드렸다. 엄마를 돌보며 지낸 그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다는 한나샘은 또다시 자신의 결정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실 것이다. 다만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고령인 나이가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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