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치원? NO치원!

by 노각

엄마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낸다고 하면 '아, 노치원?'이냐고 반문한다. 엄마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친척들도 노치원에 잘 다니시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노치원이라는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다.

엄마는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걷는 것이 매우 불안정하고, 누우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대명사로 연결된 문장만 구사할 때가 많다. 점점 아기처럼 되어간다. 엄마와 같은 분들이 가족들의 손길을 떠나, 전문가들의 돌봄과 증상완화를 위한 프로그램, 재활치료를 해주는 곳이 주간보호센터이다. 거기서 대화가 가능한 친구들을 사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요양 등급을 받은 분들이어야만이 그런 곳을 싸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급을 많지 않은 분들이 이용하기엔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대체로 그곳은 무기력과 지루함이 가득한 침묵으로 덮여있다. 그 침묵을 걷어내려는 직원들의 노력은 요란할 뿐 흥겨움이 없다. 대화를 나눌 상대를 찾지 못한 엄마는 가기 싫어했고, 힘들어하셨다. 그래도 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견뎌야 함을 받아들이셨고, 나도 엄마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지이다.


이런 곳을 노치원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우선 말이 틀리지 않는가? 老가 상반된 뜻의 稚와 한 단어 안에 쓰였다는 것은 외형적인 어눌함만 강조하여 노인의 삶을 멸시하는 말이다. 영화 <소풍>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두 할머니가 귀천을 위한 소풍지를 향해 바람을 안고, 나무 막대기를 짚으며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이었다. 7, 80년의 세월을 견뎌온 두 몸이 바람에 옷자락처럼 휘적거리며 힘겹게 오르는 모습에서, 고목의 웅장함과 고독감이 느껴졌다. 멀리서 본 노인들은 그런 존재이다. 그러나 바로 내 앞의 노인들을 존경과 관대함으로 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노치원이라는 말에는 보내는 사람도, 보내지는 사람도 어떤 점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모른 체하는, 노인부양문제를 바라보는 얕고 경박한 시선이 있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핵가족을 넘어서 1인가구로 살아가는 것이 대세가 된 세태 속에서 속절없이 길어지는 수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를, 노치원이라는 말로 얼렁뚱땅 대충 감싸서 한쪽에 치워놓는 듯한 느낌이 영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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