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과 영화평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3
영화를 만든 감독의 해석을 따른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남자주인공인 클라크 게이블에 흠뻑 반해, 그 배우의 역할인 레트 버틀러조차 너무도 사랑스럽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스칼렛이 영화가 끝난 후에라도 그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한 사람은 비단 나의 친구들뿐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해외에서는 이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후속작품인 '스칼렛'이라는 책이, 알렉산드라 리플리라는(원래의 작가인 마가렛 미첼이 아닌) 다른 작가에 의해 쓰였고, 그 내용은 스칼렛과 레트가 다시 합치는 것을 주된 스토리로 하고 있다.
이는 원작소설의 후속작이라기보다는, 영화의 후속 편에 가까운 책이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감독의 주관적인 해석이 듬뿍 녹아있는 내용 덕분일 것이다.
그 후속작품을 쓴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읽어보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다. 실은 ‘스칼렛’이라는 책 역시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 내용이 불을 보듯 뻔하게 짐작되었고, 원작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반짝 유명세라도 얻어, 손쉽게 돈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상업적 작품일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후속작을 쓴 작가가, 글과 책을 통해 자신의 이상과 생각을 펼쳐 보이고, 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꿈과 감동을 안겨주고자,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글을 자아내는 문학가는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만큼이나 책을 좋아하는 지인이, 그 책을 사서 읽고 내게 물려주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읽게 되었다.
86년에 써진 이 ‘스칼렛’이라는 작품은 방대한 원작에 비하여 형편없이 짧은 데다, 남북전쟁이라는 원작의 시대배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심심풀이용 소설에 불과하다.
영화의 해석에 연이은 내용으로, 원작과 비교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달라 보이는 스칼렛과, 더욱 고집스럽고 까다로워진 레트 버틀러와의 결합에 관한 스토리이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원작을 사정없이 비하해 버린 책이지만, 해외에서는 손꼽히는 잘 팔리는 책들에 속하였고, TV에서 드라마화도 되었으며,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잘 팔리는, 원래의 상업적 목적은 충실하게 달성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던 결말을 잘 간파하고, 이를 그대로 소설로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뿐만 아니라, 도날드 멕케이그가 쓴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이란 후속작도 있고, 그 외에도 비공식적인 후속작들이 즐비하다.
그 모든 작품들이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후속작품이라기보다는, 영화의 후속작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만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의 영향력은 대단하였고, 감독과 제작자의 해석이 빚어낸 결과도 막강하였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남북전쟁 당시 잔악하고 이기적이며 비인간적으로만 생각해왔던 남부인들에 대해, 재조명하고 재인식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책은 남부인 모두가 흑인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혹사시켰던 것은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또한 물자가 부족한 전쟁 중에도 민가에서의 약탈과 방화를 금지시킨 남부군 리 장군의 신사도 정신은 본받을 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남부인의 입장에서만 전쟁 상황을 피력한 것은 아니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허례허식뿐인 남부사회의 전통과 자만심을 경멸하고 비웃고 있으며, 남북전쟁을 의미 없는 어리석은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게다가 흑인해방은 인도주의적으로 생활기반을 마련해 준 후에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 소설을 철저하게 남부군의 입장에서 남부 사람들을 대변하는 방향과 인종차별주의적으로만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그 탓에 원작자인 마가렛 미첼은 흑인비하사상을 가진 인종차별주의자로 맹렬한 질타를 받았고, 영화로 인한 그녀의 명성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녀는 후에 흑인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며 살았다고 한다.
영화에 대해 원작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마가렛 미첼이 워낙 이른 나이에 사고로 사망하기도 하였지만, 그녀는 후속작을 만들 생각이 없었던 듯하고, 게다가 영화의 막강한 영향력이 그녀의 입 역시 다물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화의 해석은 내가 이해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의 내용과는 많이 달랐고, 나는 영화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 답답함을 글로나마 해소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