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과 영화평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8 - 멜라니와 스칼렛
애슐리의 부인인 멜라니 역시, 애슐리와 마찬가지로 착하고 올바른 성품으로,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
그녀 역시 주관이 뚜렷하지만 부드러운 성품으로, 남들이 모두 비판하는 스칼렛과 레트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옹호해 주는 사람이다.
레트는 그녀를 몹시도 존경하여,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주곤 하였고, 스칼렛은 모두가 피난가 버린 어려운 시기에 멜라니를 지켜주고 출산을 도와주었으며, 끝까지 그녀를 버리지 않고, 타라로 데리고 가서 생계를 책임지기까지 하였다.
멜라니는 스칼렛이 애슐리를 사랑하여 그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그것을 역이용하는 타산적이고도 현실적인 면모를 보인다.
또한 스칼렛이, 집으로 침입한 탈영한 북군을 총으로 쏴 죽였을 때, 장칼을 이끌고 도와주러 나타난 멜라니의 모습에서 현명하면서도 현실적인 모습이 엿보인다.
그녀는 북군을 죽인 스칼렛을 단지 돕는 선을 지나, 북군의 가방과 주머니를 뒤져 현실적인 이익을 도모하고, 스칼렛과 함께 주검을 은폐하여 후사를 도모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준다.
멜라니의 존재가 책의 내용에서 애슐리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이상과 격식을 표방하는 것이라면,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칼렛이 고향땅 타라를 잃지 않기 위해 동생의 애인과 결혼했을 때에도, 멜라니는 그것이 스칼렛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스칼렛과 멜라니의 식구들 모두를 위한 일이었음을 알고, 스칼렛의 행동을 이해했고, 스칼렛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를 두던하고 감싼다.
그런 점들이 스칼렛으로 하여금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멜라니를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스칼렛은 멜라니가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멜라니의 사랑을 깨닫는다.
영화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역할은 무척이나 탐욕적이고 끈질기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비인간적인 성격으로 묘사된다. 물론 소설 속의 인물도 비슷하긴 하다.
그러나 책 속의 주인공 스칼렛은, 평범한 여자의 범주에서 이해되는, 현실주의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여느 평범한 여자라도 같은 환경에서 같은 역경을 겪으며 살아남으려면, 그만큼 억세고 강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칼렛의 성격이나 행동이 그 시대가 가르치는 남부의 요조숙녀 모습에 위배된다고는 하나, 현대여성상에 견준다면 오히려 여성스럽고 고지식한 부분이 더 많다.
어린 나이에 걸맞은 생기발랄함을 지녔고, 인생을 즐기고 사랑하며,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의 어느 여성에게서나 익히 보이는 성품일 것이다.
그리 예쁘고 아름답지는 않으나, 마음만 먹으면 어떤 남자라도 반하게 만들 수 있을 만한 자신감과 매력도 충분히 갖춘,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감각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일구어나갈 자세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여느 강직하고도 평범한 현대여성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영화 속에서는 스칼렛이 일방적으로 애슐리를 짝사랑하거나, 이미 남의 남편이 된 남자에게 허황된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비추어지지만, 소설 속에서는 분명 애슐리가 스칼렛에게 희망을 불어넣은 부분이 있었다.
애슐리는 2년간을 적어도 주 1회 이상 끊임없이 스칼렛의 집인 오하라 댁을 방문하였고, 그녀를 무도회로 피크닉으로 공판일로 데리고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더군다나 멜라니와의 약혼을 발표하기 바로 전 주에도 스칼렛과 함께 말을 타고 외출을 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캔들을 만든 것은 스칼렛이 아니라 애슐리 자신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지탄을 스칼렛이 떠안은 부분에서는, 스칼렛이 좀 억울해할 만하다.
물론 스칼렛이 동생의 남편 될 사람을 빼앗아 차지한 부분에서는, 도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으나, 그 직전에 그녀가 겪은 일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녀는 처절한 전쟁을 몸으로 겪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참하게 죽는 일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세금을 빌미로, 그녀가 그토록 혹독하게 몸으로 일구어 되살려낸 농장을, 송두리째 빼앗아 집어삼키려는 음모를 겪고 있었다.
그녀가 동생의 결혼상대를 빼앗음으로써 막으려 했던 것은, 부모를 모두 잃고 온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그녀에게, 단 하나 남아있던 타라 땅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일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했던 고향 타라는, 그녀에게는 부모와의 추억이고, 어린 시절의 향수이며, 그녀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편히 쉴 수 있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의 동생은 아직 어리고 순진했고, 그들이 따라 땅을 잃고 겪게 될 어려움이나 불이익 같은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녀만이 그 모두를 지켜내야 할 주역임을 통감하고, 그 책임을 떠안은 것이다.
그 어떤 여자도 돈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나이 많은 남자와, 더구나 동생의 연인인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생과의 반목을 눈앞에 두고도, 그녀가 돌보아야만 했고, 잃지 말아야 했던 것은, 오로지 부모와도 같은 그 땅이었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녀가 했어야만 했던 선택에 어느 정도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려낸 그녀의 모습은, 오로지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체질인 양, 탐욕스럽게 자신의 매력을 악용하는, 모든 이에게 미움을 받고 또 그래야 마땅한, 강하고도 추한 모습뿐이었다.
내가 공감하고 동정했던, 잔인한 현실 앞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쌍하고 처절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