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유방임적 민주주의 4
- 미국의 자유방임적 민주주의 4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복지정책이 잘 되어있는 북유럽 여러 나라들로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사실 모든 북유럽국가들의 복지정책이 오래전부터 잘 되어있었던 것은 아니다.
핀란드나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의 나라들에서는 그다지 복지 수준이 높지 않았고, 스웨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태반이 핀란드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자국에서 스웨덴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이루어, 더 이상 타국에서 설움 받는 외국인 근로자가 될 필요가 없다.
스웨덴 뿐 아니라 북유럽 사람들은 상당히 이성적이고 냉소적이며, 타국인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들에게조차 몹시 비판적이다.
그러한 그들의 특성은, 사회보장제도가 뒷받침된 자신감이 가져온 결과인 듯도 하다.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보장제도의 이익만을 취하고자 이민 온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법적 사회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아무리 잘 살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라도, 자기 자신의 나라가 아닌 한은, 충분한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지는 못한다.
즉,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는 나라로 이민 가는 것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국민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 듯하다.
더군다나 언어로 인한 어려움은 세상에서 겪어야 할 가장 마지막 어려움임을 몸소 겪어본 사람으로서는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런 잘못도 장애도 없는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 바보가 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을, 외국에서 사는 동안 계속적으로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나라가 자신의 나라보다 잘 살기 때문에 이민 온 경우라면, 그 텃세와 비난은 이민자로서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상이 됨을, 타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잘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사회보장제도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된 계기도, 편안히 안정적으로 살던 스웨덴에서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그 나라에서 한국으로 날아와 여전히 독재정치가 판치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게 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려 애쓰는 한국사람들의 애환을 스스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한국에서였다.
민주적 정치제도와 자유, 평등을 주장할 만한 좋은 환경이 전혀 아닌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을 무릅쓰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거리로 뛰어나가 민주화를 외치는 것을 보면서, 나의 피도 끓었고, 이 나라 사람들은 좀 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이 나라에 사회보장제도를 이루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도 깨달았다.
즉, 잘 사는 나라로 이민 가는 것보다는, 내 나라를 사회보장제도가 잘 된 나라로 만드는 것만이 최상의 최선의 방법임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회보장이 잘된 나라에서 경제적 사회적 불만이나 이념적 구속에 의한 불편을 모르고 살다가, 그 모든 구속과 불공평과 경제적 쪼들림과 불편함을 한 몸에 받아야 하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기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아니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불쾌함과 억울함의 연속이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좀 더 잘 사는 외국으로 이민 갈 생각을 하기 전에, 자신의 나라를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일에 훨씬 더 적극적이고 열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