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벌레의 생명력
- 하찮은 벌레의 생명력
두렵다. 한 마리 버러지 안에 그토록 강한 생명력이 자리하고 있다니.
하찮은 벌레라기엔 너무나 커다란 검은 생명체. 마치 갑옷이라도 입은 듯, 책으로 내리쳐도 끄떡도 않고 덜그럭거리며 다시 기어간다.
소름 끼친다.
벌레가 내게 주는 해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한 생물의 억척스러운 생명력에 떨고 있는 것이다.
한 마리 작은 벌레 안에 그처럼 강한 생명력이 작용하는데 하물며 인간은...
이 커다란 생명체가 때로 죽음을 원하고 생명을 포기하고 싶어 한다는 건 왠지 모순이다.
인간에게는 그 커다란 부피에 비례하는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를 조절하는 이성이 있기에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다른 동물의 족속과는 달리 판단과 배려심으로써 서로를 알고 이해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려움을 알고 있다.
느끼고 판단할 줄 알기에, 기쁨과 행복을 알 듯이, 겁과 두려움이 있다.
지능이 있고 생각할 줄 알기에, 무작정 덤벼들어 싸우기보다는, 재고 따지고 물러서는 나약함이 있다.
겁이 있고 두려움을 안다는 것은, 앞뒤를 살피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
신이 이 덩치 큰 인간을 쉽사리 다룰 수 있도록 뇌리를 꿰뚫어 늘어뜨린 고삐와도 같은 것이다.
대항하고 도전하기에 앞서, 이해하고 판단하고 피하도록 만든다.
인간인 나는 나와 비슷한 종족에게서는 믿고 안심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와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가진 종족에게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낀다.
나와 다른 무언가를 무서워하고 피하고, 그러다 궁지에 몰리면 달려들어 싸우고,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불을 켜놓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또다시 벌레들이 어둠을 타고 기어 나와 인간 주변을 습격하다, 소스라치게 놀란 인간에 의해 피 튀기는 전쟁이 일어나며, 몸서리쳐지는 벌레들의 사극이 연출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거다.
아직도 저 두껍고 딱딱한 책 밑에는, 여러 번의 내리침에도 불구하고 반쯤 살아남은, 바스러진 버러지의 마지막 사투가 달그락거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