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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Dec 08. 2023

10. 자꾸만 불러오는 너의 배

내가 사랑하는 버찌

2023년 9월 22일

오늘 회사에서 행사가 있어 밤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그래도 동생이 집에 있어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버찌는 화장실을 잘 가렸다가, 또 어떤 날은 패드에 볼 일을 보기도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엄청난 정신력으로 단 한 번도 화장실 실수를 하지 않았다.




2023년 9월 23일

제법 날이 쌀쌀해졌다. 일교차가 너무 심해서 이른 아침, 저녁엔 버찌의 베란다 출입을 금했는데 얼마나 나가고 싶었으면 내가 잠깐 빨래를 하러 베란다를 나가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주 재빠르게 튀어나왔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고 버찌를 내보내주었다. 대신 너무 춥기 때문에 담요로 돌돌 말아 부리또로 만들어 바람을 쐬게 해줬다.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반항할 힘도 없는 버찌는 그렇게 돌돌 말린 상태에서 가만히 엎드려 공기냄새를 맡다, 허공을 바라보았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날부터 버찌는 본격적으로 곡기를 끊기 시작했다. 또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참을 둘러보기 시작했으며 이전과는 다르게 계속 어둡고 구석진 곳을 쉴 새 없이 찾아 돌아다녔다.




2023년 9월 24일

낮에는 거의 움직임이 없고 눈을 실눈 뜬 채 웅크리고 있다. 버찌가 잠을 못 잔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잠은 뒷전인 채 고통에 잠식되었다. 몸은 뼈와 가죽만 남아 뒤에서 보면 엉덩이 뼈가 툭 튀어나온 게 보이고, 척추뼈가 드러나서 털이 붕 떠있다. 전부 앙상한데 배만 불룩 튀어나왔다. 암은 우리 속도 모르고 하루가 갈수록 눈에 띄게 커졌다. 그리고 이날 저녁을 기준으로 버찌 컨디션은 말도 안 되게 안 좋아졌다.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지 물그릇 앞에서 오랜 시간 멍 때렸고,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있는 힘껏 소리 내어 울었다. 몸 중심도 잡지 못하면서 계속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곡기를 끊었으니 힘이 없을 텐데 자꾸만 움직이려고 했다. 이 와중에 화장실은 알아서 갔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턱에 걸려 자꾸만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먹은 것도 없을 텐데 화장실은 왜 이렇게 자주 가는지 바닥에 고꾸라져서 날 쳐다보는 버찌를 보니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2023년 9월 25일

새벽에 버찌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더 심하게 울고, 많이 아픈지 가만히 있질 못했다. 이제는 침을 흘리는 수준이 아니라 게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자꾸만 욕실에 들어가고 싶은지 문을 긁어댔다. 그 와중에 먹은 것도 없으면서 화장실은 왜 이리 자주 가는지 자꾸 들어가서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새벽부터 이상 행동을 하더니 갑자기 캣타워에 올라가고 싶었는지 점프를 했다가 굴러 떨어졌다. 많이 아픈지 버찌는 대자로 뻗어 일어나질 못했다. 내가 너무 놀라 소리 질렀더니 계속 우리 눈치를 봤다. 그런 버찌를 달래주고 쓰다듬어줬더니 다시 힘을 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더니 또다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울어댔다. 이리 오라고 부르니 성치 않은 몸으로 우리 곁에 왔다. 그리고 나와 동생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자꾸만 울었다. 너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속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다. 사실 이날 새벽, 너무 아파하는 버찌를 보며 이제는 버찌가 그만 고통스럽도록 버찌를 데려가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버찌에게 너무 힘들면 이제 편히 쉬어도 된다고, 언니들이 옆에 있으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가슴이 너무 아프지만 길게 버티는 건 버찌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버찌 얼굴을 봤는데 온통 침 범벅이었다. 얼굴을 잡고 가재수건으로 닦아주는데 그 와중에 싫다고 반항을 했다. 버찌의 얼굴은 통증으로 많이 변해있었다. 도무지 버찌의 통증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 버찌를 뒤로한 채 출근을 해야해서 신발장으로 갔는데 패드에 오줌을 싸놨다. (원래 신발장에 버찌 화장실이 있었고, 혹시나하여 그 앞에 패드를 깔아놨다.) 그걸 보고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아파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패드에 가서 볼 일을 본 버찌가 너무 대견한 동시에 안쓰러웠다. 누구보다 깔끔하고, 살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한 적 없는 버찌의 성격이 이 와중에 드러났다. 너는 도대체 지금 어떤 심정일까... 그래도 화장실에 들어가 턱에 걸려 넘어지는 거보단 패드에 싸는 게 나아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이제는 더 이상 버찌가 고통받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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