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오 Dec 08. 2023

8. 기쁨 그리고 놀람

내가 사랑하는 버찌

2023년 9월 18일

오늘은 너무나도 기쁜 하루여서 또다시 기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3시에 잠이 깬 나는 화장실을 갔다. 무드등을 킨 탓에 동생과 버찌가 날 쳐다봤고, 우리 둘은 버찌를 쓰다듬었다. 새벽에 잠이 깨면 항상 골골송을 불렀던 버찌는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의 손길에 골골송을 불렀다. 그러다 목이 말랐는지 물을 마시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쉬어버렸지만 꽤나 큰 목소리로 "컁!"하고 울었다. 그러더니 곧장 모터보트급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나와 동생은 버찌가 너무 귀여워 기쁨의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우리 둘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 버찌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엄청나게 오바하며 버찌를 자극했다. (옛날부터 공주대접을 받았던 버찌인지라 이 방법이 제일 잘 먹힌다.) "공주님 이거 너~무 맛있겠죠? 한번 맛보세요!" 각종 멘트를 버찌에게 날렸다. 전날 거의 쫄쫄 굶은 버찌가 날 쳐다보길래 바로 밥을 줬더니 어제보다 더 많이 먹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훔치고 출근을 했는데 요즘 새벽에 잠을 뒤척여서인지 버스에서 자다 목적지를 놓쳐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생이 버찌가 아프고 퇴사를 하여 평일 낮 시간에 버찌를 전적으로 돌봐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씨여서 동생이 버찌를 베란다로 내보내주었다. (펫캠으로 구경했다.) 몸 상태가 나빠진 뒤로 집 안에서는 옆으로 누워 자지 못하는 애가 이상하게 날씨가 좋은 날 베란다에 나가면 편히 잤다. 오늘 역시 그랬다. 그래서 햇빛의 효능에 대해 검색해 보니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이 "암 예방"이었다. 주말 내내 흐렸던 날씨에 컨디션이 안 좋았던 버찌가 오늘 맑아진 날씨에 되살아난 것 같았다. 쇠약해진 버찌의 몸은 날씨에도 컨디션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예민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는 버찌에게 로얄캐닌 베이비 캔을 줬다. 건사료를 완전히 거부하는 버찌를 위해 부드러운 무스타입의 캔을 따뜻한 물에 개어 죽처럼 줬더니 기적처럼 먹어주었다. 또다시 기쁨의 환호를 외쳤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밥을 먹인 후, 이제 스스로 그루밍을 하지 못하는 버찌를 위해 빗으로 빗어줬는데 골골송을 불렀다. 웃긴 건 버찌는 평생 빗질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고양이었다. 얼굴에 빗을 가져다대주니 스스로 요리조리 비벼댔다. 아무래도 간지러웠나보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에 턱을 얹고 눈을 감더니 턱을 긁어주는 내 손길에 엄청난 골골송을 불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버찌 몸에 힘이 빠지면서 내 손에 본인 얼굴을 전적으로 맡기고 기대었다. 정신이 혼미한 듯 보였지만 골골송은 멈추지 않았다. 아파서일까 아니면 진짜 내 손길이 좋아서일까?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2023년 9월 19일

버찌를 지켜보는데 평소와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숨을 거칠게 쉬었다. 온몸에 힘이 빠진 상태로 고통스러운지 간헐적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고,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정신을 잃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지 못한 나는 순간 버찌가 이대로 떠나버리는 줄 알고 오열했다. 너무 심하게 놀란 나머지 심장이 아팠고, 사레가 들릴 정도로 꺽꺽 소리 내며 울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은 버찌 앞에서 울지 말라며 분위기를 풀어주었고, 나는 얼른 자리를 떠 화장실에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동안 울었던 건 운 게 아니었다.


작가의 이전글 7. 버찌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