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온 며칠째 하루 시작은 새벽 세 시 아니면 네 시였다. 오늘은 아침까지 쭉 자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일어난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별을 볼 수 있으니까.
거실 한 곁에 설치해 둔 삼각대와 쌍안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먼저 쌍안경만 손에 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크게 무겁지 않은데 손은 왜 그리 떨리는지. 심장박동 때문인 듯 심전도 기계에 표시된 곡선처럼 눈앞의 별이 위아래로 파동쳤다. 삼각대에 거치해서 다시 보았다. 아까보다 안정되었으나 좀 더 크게 보인다는 점만 다를 뿐 눈으로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불편한 물건은 놓아두고 눈에 의지했다.
서울과 확연히 달랐다. 고개를 약간 드는 정도로 밤하늘의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가 눈에 도드라졌다. 예전에는 카시오페이아도 그랬는데 요즘은 희미한듯. 모두 아는 별자리 수준을 넘지 않아 앱 받은 휴대전화를 쥐어 하늘에 대었다. 큰곰자리는 별을 선으로 이어 뼈대를 이루고 그 바깥에는 곰이 그려졌다. 기술의 진보란. 책에서 보던 대로 수많은 별자리를 확인했으나 너무 많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Cygnus, 백조자리는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십자 배열에 꼬리 쪽을 제외하고 별이 한 개씩 더 이어졌다. 더구나 날개 부분 끝별은 뒤쪽으로 구부러져 그림 효과 없이도 진짜 날개 같았다. 앱에 표시된 별자리 중 기린자리를 하늘에서 찾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 닮은 걸 눈여겨봤으나 분간이 어려웠다. 숙소 뒤로가 화성과 토성이 있는 위치도 살폈으나 역시 보이지 않았다. 벌써 한 시간 흘렀을 즈음 아까와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처음 왼쪽 아래 있던 별자리가 오른쪽 위로 조금 이동했다. 지구가 기울어진 채 돌고 있다는 걸 의도하지 않은 관측으로 증명한 셈.
제주도지만 밤공기는 찼다. 해가 뜰 때까지 점점 더 쌀쌀해져, 내일은 따뜻하게 입고 하늘을 봐야겠다.
성산일출봉 – 섭지코지 - 제주해양동물박물관
잔뜩 흐린 아침, 다행히 출발 전 날이 갰다. 숙소가 있는 서쪽 한림에서 정반대인 동쪽 끝 성산으로 향했다.떠나기 전만 해도 하루에 이렇게 멀리까지 이동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말끔히 사라졌다. 강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키 큰 삼나무와 여린 풀, 들꽃 냄새로 기분 좋게 시작했다. 넓은 길에서는 속도 내고, 좁은 길에서는 풍경을 바라보며 한 시간 반을 달렸다.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에 올 때마다 들렀던 지라 호기심보다는 세 식구 함께 온 데 의미가 새로웠다. 아래에서 바라본 거대한 용암 봉우리는 녹색의 나무와 풀로 뒤덮여 웅장했다. 예전보다 돌로 잘 다듬어진 계단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기이한 바위들을 지나 울퉁불퉁하고 좁은 계단으로 바뀔 때쯤 정상에 도착했다. 저 멀리 솟아있는 수많은 오름과 바다 풍경이 장관이었다. 앞서 올라온 사람들처럼 정상의 일출봉 표지판 옆에 잠시 섰다.
관광객은 우리뿐인 동네 주민들이 가는 음식점에서 진한 국밥 한 그릇 먹으며 잠시 쉬었다. 다음은 섭지코지란 말에 아이가 발끈했다. 줄곧 걸어 불만이 가득했으나 엄마가 가고 싶어 한다는 말로 겨우 꾀어 도착했다. 오후 두 시, 햇살이 뜨거웠다. 평일임에도 차와 사람으로 가득한 주차장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갔다. 절벽 아래 소름 끼치도록 맑은 바다를 옆에 끼고 야트막한 언덕길을 가다 서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등대에 이르렀다.
돌아오는 길, 아이를 업었다. 내내 찡그리다가 그제야 만족하며 웃는 얼굴에 나도 기뻤다.
섭지코지에서 이십 분 거리, 제주해양동물박물관은 살아있는 생물들이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모두 박제로 전시되었다. 거대한 개복치와 백상아리, 철갑상어는 물론 만들기 어려워 보이는 갑각류까지 다양했다. 설립자의 해양생물에 대한 애착을 느끼며 들어올 때 주어진 과제를 함께 풀었다. 나올 때 퀴즈 풀이로 얻은 기념품에 덕에 흥미를 갖고 끝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오는 길은 퇴근 시간이었다. 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도심 근처는 되도록 피해야 한다. 차량도 지난번 여행보다 많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저녁거리는 읍내에서 고른 초밥과 회무침. 가격에 비해 적은 양, 제주의 물가는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