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오름 – 항파두성(항파두리항몽유적지)
둘이 여행 둘째 날. 세 번째 오름 새별오름에 갔다.
어제 이달오름과 비슷한 높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달이 제 원하는 데로 자란 풀과 나무로 더벅머리 느낌이라면, 새별은 옅은 금빛 갈대와 풀이 포마드발라 가지런히 빗어 넘긴 모양이다. 낮은 언덕을 지나 넓은 광장같은 입구에서 두 오름을 함께 바라봤다.
새별은 애월 오름을 대표하는 듯 근방에서 가장 컸다. 정상으로 이어진 길은 왼쪽과 오른쪽 두 개, 사람들을 따라 왼편에서 올랐다. 완만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심한 경사로 삼분에 일을 오르다가 잠깐 쉬었다. 다시 삼분에 일을 올랐을 때 길 곁 비탈면을 깎아 평평하게 만든 작은 공간이 있었다. 의자는 먼저 온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차 잠시 멈춰 서서 올라온 길을 돌아봤다. 입구에 개미만 해진 사람들 너머로 들판의 보리가 바람에 따라 금빛으로 일렁였고, 파랑 빨강 함석지붕 올린 집들이 모여 작은 모형 닮은 마을이 되었다. 다시 가려 할 때 힘들어 한 아이가 업어주길 바랐다. 혹시 뒤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 먹을 것으로 유혹해 평탄한 등성이에 겨우 오르니 이달오름이 높이를 나란히 했다. 어제 기억을 등 뒤로 정상까지 넓고 평평한 길을 따라갔다. 오른쪽과 왼쪽 한라산과 크고 작은 오름이 늘어서서 키재기 하는 풍경 끝의 커다란 바위에 ‘새별오름’이 새겨진 정상이 있었다. 잠시 쉬려 했으나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고 거센 바람이 쌀쌀했다. 내려간 오른쪽 반대편 길은 왼쪽보다 수월했다.
점심은 갈치구이. 주인 할아버지는 요즘 갈치 살이 빠질 때라 평소보다 작다며 덤으로 통통한 옥돔 한 마리를 같이 주셨다. 미리 배워간 대로 숟가락만을 써 갈치 뼈를 바르고, 살을 떠 아이 입에 넣어줬다. 처음 먹는 것이지만 입에 딱 맞는지 우동집보다 더 좋단다.
항파두리항몽유적지 입구는 길이 복잡하다. 잠시 헤매어 도착한 항파두성은 1271년부터 이 년간 몽골에 대항했던 삼별초의 마지막 자취였다. 그들은 진도 용장산성에서 주장 배중손을 잃었음에도 항쟁을 계속하기 위해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로 자리를 옮겼다. 길이 약 육 킬로미터로 흙을 다져 외성으로 축조하고, 주요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 유적으로 남은 건물터 둘레에 내성을 쌓았다. 수천 명의 군사는 지킬 준비를 마치고 협재 해안으로 진입한 만 오천 여몽 연합군에 사력을 다해 맞섰으나 결국 전멸했다. 그러고 보면 제주는 굳은 의지의 섬인 듯했다. 4.3 사건 때도 불의에 맞서지 않았던지. 건물터 왼편에는 전시관이 있었다. 성터에서 출토된 기와, 자기, 철갑옷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도 유물 발굴이 진행 중인 건물터, 뒤편으로 난 트레일을 따라갔다. 토성은 이삼 미터 높이로 남아있고, 일부 복원이 끝난 성벽 위는 산책로로 개방되었다. 우리 둘 외엔 아무도 없는 길을 잠시 걷다 꽃으로 팔찌와 반지를 만들어주니 해맑게 좋아하는 얼굴, 하지만 곧 힘들다고 인상 쓰며 가만히 멈춘 모습이 변덕스러운 제주도 날씨 같다. 업은 등 뒤로 쉼 없이 종알대는 소리에 장단 맞추다 잠시 조용할 때면 앞에 펼쳐진 노랑과 녹색 들판에 빠졌다. 그렇게 사십 분 정도 둘레길을 걸었다.
오늘은 일찍 돌아왔다. 보드게임과 체스로 마감하고 한 혼술. 제주 막걸리가 육지보다 맛이 좋은 건 여행지이기 때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