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 제주 협재 일기 여드레 < 석양 >

by 준환

엉또폭포 – 최남단감귤체험장 – 서귀포올레시장


지인들과 다른 일정으로 잠시 작별했던 아내가 돌아왔다. 전날까지 삼 일 빡빡한 여정에도 금세 회복해 여느 때처럼 맞은 아침. 이제 나갈 때다.


매일 다녀 친숙해진 평화로와 중산간로를 지나 서귀포시로 갔다. 첫 목적지는 ‘엉또폭포’. 글쓰기 모임을 같이하는 분이 추천해 준 곳이다. 중간중간 표식이 달려 올레길임을 알리는 큰길을 건넜다. 이어진 나무 오솔길을 잠시 걸었을 때 해가 잘 드는 비탈진 언덕에 작은 산장이 있었다. 오름을 등지고 앞에 둔 귤 숲까지 더해 유달리 아늑했다. 옆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중간 쯤 절벽 쪽으로 비죽 나온 전망대를 무심코 지나치려다 멈췄다. 절벽은 다름 아닌 ‘엉또폭포’. 계단에 오르기 전 작은 안내표지에는 세계 4대 폭포, 물이 떨어지지 않는 가장 높은 폭포라는 장난기 넘치는 글이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다가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진 용소를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비 내린 지난주 왔더라면 웅장한 모습을 보았을 텐데 지금은 물이 모두 흐르고 없었다.



내려가는 길은 방금 전 산장으로 이어졌다. 사람 없는 작은 카페로 한쪽에 걸린 대형 화면은 모든 것을 휩쓸듯한 폭포의 세찬 물줄기가 재생되어 장관을 연출했다. 아쉬움을 대신한 셈. 바깥에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놓칠까, 아이가 아이스바 하나를 냉큼 집어 들며 웃었다.



제주 남원 효돈에는 유명한 돼지 생갈비 집이 있다. 회사 동료 추천으로 출장 때 두어 번 갔다. 굵은소금으로만 간한 싱싱한 고기를 불판에 구우니 기름기 적고 부드럽다. 큰 뚝배기를 가득 채운 된장찌개까지 처음 왔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감귤 따기 체험 농장에 갔다. 대부분 삼월 말이면 끝나지만 연중 하는 곳이 더러 있었다. 귤은 초여름 하우스에서 시작해 가을부터 이듬해 2월까지 노지 귤이 나온다. 그 후에는 귤나무에 다른 과실수를 접붙인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진지향, 카라향 같은 만감류가 순서대로 제철이다. 지금 5월 초는 진지향과 카라향 시기. 나누어준 바구니를 들고 꽃향기 가득한 하우스에 들어섰다. 아이는 전지가위를 든 사냥꾼. 큰 열매를 찾아 어느새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원하는 걸 찾을 때마다 감탄하며 일러준대로 꼭지 가까이 잘라 바구니 손잡이까지 가득 담는데 여념이 없다. 욕심 많은 아빠를 꼭 닮은 모습. 농장 일부는 동물체험장이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욕심쟁이 까만 당나귀, 먹는 게 귀찮은 알파카, 예쁜 강아지와 사슴, 우리 밖으로 손을 내밀어 과자 집어 먹는 포악하지만 귀여운 너구리가 있었다. 도마뱀의 오톨도톨한 피부가 신기했고, 곤충 표본 관람도 흥미로웠다. 나오는 길 투호 던지기까지.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갔다. 아내가 왔던 주말은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지만 월요일은 한산했다. 저녁거리를 위해 마늘이 듬뿍 들어간 통닭과 전복 김밥, 흑돼지고기와 김치가 부꾸미에 함께 말린 것도 함께 사 돌아왔다.


햇살 따뜻한 늦은 오후, 비양도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까지 한 시간 남짓하다. 문밖 테이블에 먹을거리를 펼치고 아내에게 받은 신청곡, 빅뱅의 새로운 곡부터 예전 노래까지 하나씩 틀었다. 그들의 노래는 데뷔한 때부터 장년의 감성이 들어있어 매번 진한 공감을 느낀다. 천천히 해가 졌다. 생기 가득한 아침이나 강렬한 낮보다는 저녁이 좋은 건 맨눈으로도 편안히 볼 수 있어서이다. 파란색에서 감청, 노랑과 빨강으로 하늘빛이 차츰 변해갔다. 사진을 찍듯 글로 남기고 싶어 노트북을 꺼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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