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 숙소 – 소길리 - 공항
당분간 계속되는 화창한 날씨. 오늘은 가파도로 간다. 제주도 부속 섬은 봄맞이 여행객들이 많아 지난주 미리 표를 구했다. 인원 제한이 목적인 듯 입도와 출도 편을 함께 사야 하고 대개 두 시간쯤 체류할 수 있다. 다만 열한 시 배가 삼십 분 더 길다.
현장 발권을 위해 일찍 나선 데다가 길에 차가 적었다. 승선까지 한참 남아 여객선터미널에서 가까운 모슬포로 갔다. 주민들이 많이 찾는 빵집에 들러 단팥빵과 샌드위치 등 몇 개를 골라 담았다. 아침에 나와 온기가 남아있었다.
배를 타고 십 분 남짓한 시간에 도착했다. 섬 둘레는 걸어서 약 한 시간 반. 예전에는 안쪽 상동과 제주도 가까운 바닷가 하동에 하나씩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위, 아래 포구 한 개씩과 섬 중간 이렇게 세 군데에 있다. 반대편 포구까지 닿는 여러 길에서 직선의 짧은 경로를 골랐다. 안이 훤히 보이는 담 낮은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을 지나 넓은 들판이 나왔다. 조금씩 높아지는 언덕은 모두 돌담으로 구분 지은 밭이다. 보리밭은 사월까지 연두색 풋보리던 것이 오월 되며 황금색 익은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군데군데 휴경지는 꽃밭이 되어 이름 모를 보라색 작은 꽃과 철 이른 코스모스가 한가득 피어났다.
아름다운 언덕을 얼마 지나지 않아 섬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에 닿았다. 바다 건너 모슬포와 송악산이 가까워 보이는 게 파도가 잔잔하면 헤엄쳐 갈 수 있지 않을까.
아내는 지난주 함께했던 지인들과 해변에서 춤을 춘 영상을 남겼다. 여행지 추억을 위해 오늘도 함께 해보자는 말에 배에 오르기 전 서너 번 따라 했으나 한동안 댄스 수업받았던 아내에게 비할 수 없었다. 전망대 너머 가는 길 사람 없는 풀밭을 찾아 엉성한 모습으로 웃음을 남겼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다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다 건너 마라도가 보이는 바위 해변에는 바다 고둥인 보말이 많았다. 전복보다 맛이 좋아 죽을 쑤고 싶었으나 담아가지 못한 아쉬움에 미련이 남았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바닷게나 골리려 등껍질을 잡다가 그놈에게 꽉 물리고 말았다. 조그만 체구에 아귀힘이 어찌나 센지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그사이 재빨리 사라지는 녀석, 괜한 분풀이에 대한 앙갚음을 톡톡히 받았다. 가는 길에 있는 섬 남쪽 가파포구는 여느 곳보다 아담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조용한 부둣가를 지나 긴 해안 산책로를 따라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선착장은 운진항에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늦은 점심, 한림 읍내에 있는 보말칼국수 집으로 갔다. 세 시가 조금 넘었으나 재료가 소진되어 벌써 문을 닫았다. 제주도 오래된 음식점은 대개 서너 시에 문을 닫는 여유로운 삶이다.
며칠 함께하는 손님들을 위해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한 시간 가까이 여유가 있어 소길리에 잠시 들렀다. 유명 연예인이 보금자리로 고른 이유가 궁금해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갔다. 중산간보다 높은 평평한 자리, 가려진 곳 없이 내린 따스한 햇살, 산새 지저귀는 소리와 깨끗한 집들. 다음에 길게 온다면 머물고 싶은 동네였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다시 공항으로 가 반가운 일행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