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노꼬메오름 – 공항
아빠 둘은 높은 오름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중산간 애월읍 소길리와 유수암리 사이에 있는 노꼬메오름은 해발 팔백삼십삼 미터로 이 근처에서 큰 편이다. 시작 지점이 높아 비고는 이백 미터 남짓이다. 원래 이름은 놉고메였고 소리 나는 데로 변해 노꼬메가 되었다. 한자어는 녹고산(고산고길산)이다.
차도에서 안쪽의 주차장까지는 한 차선 너비의 긴 시멘트 포장길이었다. 높고 짙푸른 나무로 입구는 좁아 보였으나 말 목장이 있는 안쪽은 무척 넓고 평평했다. 이른 시간부터 방문객이 많았다. 빽빽한 나무숲 가운데 난 산책로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갔다.
규모가 컸으나 오름 안내판과 간간이 위치가 표시된 팻말이 있어 길을 찾기 쉬웠다. 입구부터 정상까지 네 구간 중 첫 둘은 곶자왈이나 사려니숲 길을 걷는 듯 평평했다. 하늘 높이까지 키 큰 나무가 조밀해서 한낮에도 서늘하고 밝지 않았다. 다음 둘은 경사 가파른 흙길과 돌계단이 번갈아 나타났다. 한참 후에 나무가 사람 키 정도로 낮아진 곳은 하늘이 열려 비친 햇살로 환했다. 아래 입구에서 바라봤을 때 첫 번째 높은 지점이었다. 새별이나 금오름은 밭과 마을 가까운 풍경이 인상 깊었으나, 지금은 넓게 펼쳐진 원시림이 장관이었다. 한라산에 가까이 갈수록 언덕이 많고 땅에 굴곡이 심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이 습하고 흐려 경치가 선명하지 못한 게 좀 아쉬웠다.
힘든 오름길에 비해 내리막길은 편안했다. 정상의 남동쪽 비탈은 짙은 분홍색 철쭉이 옅은 황톳빛 갈대밭 사이에 도드라졌다. 크지 않은 소나무도 무성했다. 비교적 해가 덜 드는 북서쪽은 높이 낮은 쥐똥나무가 흰 꽃을 피워냈다. 길 하나 차이로 자라는 식물이 완연히 다르다는 게 참 신기했다. 아마 해를 좋아하는 소나무가 남쪽에 자리를 잡은 탓에 다른 것은 반대편에 군락을 이룬 듯했다.
길가에 나무가 듬성듬성하게 자란 곳은 곶자왈 숨골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올라왔다. 청량하고 상쾌한 나무 향기가 진했다. 사람 키보다 점점 높아져 가는 나무 사이 길로 들어서면 숲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 위쪽은 같은 종류가 곳곳에 군락을 이루었으나 아래로 갈수록 다양한 것들이 공존했다. 높은 소나무가 강한 햇볕을 가리고, 적은 빛을 좋아하는 서어, 때죽, 꾸지나무들이 그 옆에 뿌리내렸다. 땅 가까이 낮은 곳은 조릿대가 자랐다. 해와 바람을 싫어하는 넝쿨은 소나무 표피에 달라붙어 있었다.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나무 덩치가 점점 커졌다. 좀 더 넓고 안정된 환경에서 삼나무와 소나무가 수십 미터 높이로 자라났다. 예전에는 눈에 들지 않았던 광경. 어르신들이 산에 가면 나무와 꽃 이야기를 많이 하더니, 사십 대의 나는 몇 달간 전원생활에 적응했기 때문인지 금새 그렇게 되었다.
숙소 근처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동명정류장은 오래된 버스 정류장으로 착각할 팻말과 귤색 세련된 외관이 도드라진다. 아빠들이 숙소에서 쉬는 사이 다녀온 아내들은 그곳에서 먹은 음료 사진을 건넸다. 작은 잔 안에 제주도가 오롯이 담겨있었다. 오레오 과자 조각은 현무암, 모카 가루는 붉은빛 화산 토양, 로즈메리는 토종 식물을 나타냈다. 미니어처같이 앙증맞은 모양으로 맛도 그에 못지않다는 말이었다. 이름은 밭담라떼. 한라봉에이드, 블루베리에이드라떼라 불리는 다른 음료도 빛깔이 아름다웠다.
오늘은 선배 가족이 떠나는 날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 기억에 남는 장소와 음식을 돌아가며 말하는 것에서 헤어질 때가 왔음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차 안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장난쳤지만, 이따금 서운해했다. 짧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한 어른들도 같은 마음이다. 한동안 가는 사람, 남는 사람 모두 빈자리가 느껴질 거다. 나는 먼저 작별하고, 아내와 아이는 배웅을 위해 선배 가족과 출국장에서 내렸다. 주차하고 아내에게 연락하니 선배 아이 신분증 찾는 것이 늦어져 아직 출국심사대 앞이라는 대답이었다. 다시 한번 인사한 건 떨어지기 싫은 마음을 아는 듯한 짧은 해프닝. 누군가를 배웅하고 돌아오니 숙소가 우리 집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일주일 다시 우리 가족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