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 제주 협재 일기 열닷새 < 공원과 사찰 >

by 준환

제주4.3평화공원 – 관음사 – 신비의 도로


며칠간 피곤했던 가보다. 해 뜬 지 이미 오래였으나 아홉 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지인들이 떠나고 일상으로 복귀.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는 공부하고, 난 어제 하루를 글로 남겼다. 밥 먹으려고 같이 앉은 식탁에 빈자리가 느껴졌다. 어제까지 만해도 가득 찼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이곳에 와서 한 주는 흐리고 한 주는 맑았다. 월요일인 오늘, 쨍쨍한 건 아닌 게 앞으로 며칠간 흐릴듯하다. 멀리 서귀포 넘어 온평포구까지 가려다가 여유롭게 보내고 싶어 가까운 4.3평화공원으로 정했다. 무거운 현대사는 아이에게 좀 일렀으나 한 번은 가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공원은 국민의 정부 때 설립이 추진되어 2008년 완공되었다. 재조명된 4.3 사건 아픈 역사를 세세히 기억하기라도 하려는 듯 상당히 큰 규모였다. 어린이체험관입구 스크린에는 샌드아트 기법으로 제작된 짧은 영상이 상영되었다. 권리를 찾기 위해 항거한 도민들에게 육지는 토벌대를 파견했고, 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산간이나 동굴로 숨은 어린이들에서 상당수가 희생된 것이 주제였다. 죄 없는 어린 죽음이 별이 되었다는 마지막 내레이션에 코끝이 아렸다. 희생당한 어린이들에게 추모 편지를 쓰고 풍등으로 띄우는 건 영상으로나마 제를 올리는 의식 같았다.


1947년 3월 1일 제주읍에서 3.1절 기념행사 후 도민들의 거리 시위가 있었다. 이를 뒤따르던 경찰 기마대 발굽에 어린아이 하나가 크게 다쳤다. 정중한 사과가 필요했으나 경찰은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흥분한 군중들은 곧 집단으로 항의했고, 위기를 느낀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죽고 말았다. 4.3 사건의 시작이었다. 1954년 일단락될 때까지 불순세력으로 몰린 도민 1/5이 사망했다. 소개 작전의 대상이 된 중산간 마을은 100여 군데 이상이 폐허가 되었다. 이를 주도한 건 미군정과 건국의 아버지라 불린 이승만 세력으로 정치이데올로기와 권력에 대한 탐욕이 합쳐진 결과였다. 아이는 암울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담긴 흑백사진을 무서워했다. 몸에는 너무 크고 참혹한 상처가 남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계속 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에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싫은 거 잘 알지만, 정확히 기억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어.” 후세에게 좋은 역사만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시관 한가운데에는 창을 통해 햇빛 비추는 곳에 ‘백비’가 있다. 4.3 사건의 정의와 명칭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하얀 비석은 그때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채로 눕혀질 거라고 한다. 가슴 아픈 과거가 부디 있는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로 가까운 절에 들르기로 했다. 제주 40여 개 사찰의 본산인 관음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내와 함께 탄성 질렀다. 일주문에 이르기까지 백 미터 정도 바닥은 회색의 현무암으로 덮여있고, 양옆에 검은색 돌담과 그 위의 불상이 어른 키 높이로 쌓여있었다. 담 바깥은 녹색의 높은 상록수가 열을 이루어 좌우 대칭되는 모양이 차분하고 단정했다.




문으로 들어서자 풀밭과 조밀한 나무들이 조화로웠다. 뒤뜰 큰 바위 근처에는 주변에서 구한 것으로 쌓은 듯한 관음굴이 엄숙하기보다 친근했다. 다만 4.3 사건으로 사찰 전체가 소실되어 역사에 비해 오래된 건물이 많지 않았다. 더욱이 전각 주춧돌과 기둥이 인공 콘크리트로 복원된 게 아쉬웠다.


경내는 독특한 것이 많았다. ‘설문대 할망 소원돌’은 아이도 들 수 있는 공 모양의 돌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무거워서 들리지 않거나 잡아당기는 힘이 강하게 느껴질 때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이는 처음에는 손쉽게 들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이내 들지 못하는 시늉이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나도 따랐다.



방사탑이란 돌탑도 있었다. 제주 곳곳에는 현무암으로 오벨리스크 모양의 탑을 쌓았다. 나무나 화강암 대신 제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듯했다. 불교는 가문이나 마을의 안녕을 위한 민속신앙을 받아들여 도량 안에 그 탑을 크게 만들었다. 옆의 짧은 길을 통해 언덕으로 올라가면 큰 석가 상이 있고, 그 뒤는 수십 개의 작은 불상들이 둘러쌌다. 돌아서려는데 절 뒤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나한상을 모신 전각이 있다는 안내문에 호기심이 일어 혼자 그리로 갔다. 굽어진 길 앞에 서자 멀리서 보이지 않던 전각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백록원, 아미당, 나한전으로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제주 시내와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오래된 외관이 주변과 잘 어울렸다. 누군가 관음사에 온다면 일주문까지 이어진 바깥길과 안쪽 전각은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돌아오는 길은 신비의 도로를 지났다. 시각차 때문에 내리막이 오르막처럼 보이는데 중립 기어에 놓고 차를 타면 알 수 있다 했다. 아이에게 열심히 설명하며 시연했으나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만은 알아주려는지.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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