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오늘은 마라도다. 지난주 가파도에 이어 두 번째 제주도 부속 섬에 간다. 추자도도 좋다는 말에 웬만하면 가고 싶어 식구들을 설득하고 있다.
마라도는 모슬포 운진항과 송악산 인근 마라도 선착장 두 곳에서 배편이 있다. 운진항은 출발 약 두 시간 후로 돌아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나, 마라도 선착장은 승객이 길게 선택할 수 있다. 지난번 가파도 체류가 짧게 느껴진 데다 명물 자장면을 먹기로 해 마라도 선착장 출발 편을 골랐다. 신분증을 두고 와 숙소에 다시 가기도 했으나 아내가 좋아하는 흐린 날씨를 즐기며 기분 좋게 도착했다.
인근 공터에 차를 세웠다. 비 오는 날 외출이라 우산 하나씩 챙겨 들고, 아이는 우비와 장화를 더 갖췄다. 열 시 오십 분 출발. 창가에 앉아 바다를 보며 가는데 비바람이 있어 좀 출렁였다. 십 분쯤 지나 바다 한가운데 섬 하나가 나타났다. 가파도였다. 이제까지 보아온 섬은 대개 바다 위로 불룩 솟았으나 수평선에 깔린 낮은 섬의 모양이 색달랐다. 날이 더 좋지 않으면 언뜻 못 보고 지나가지 않을까. 가장 높은 곳이 이십 미터 남짓에 해안가 절벽이 별로 없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 후로 이십 분을 더 달려 마라도에 도착했다.
높은 절벽 근처 선착장에 내려서 계단을 올랐다. 제주도와 별개로 용암이 분출해 만들어진 이곳은 전체가 높고 평평했다. 가파도가 보리와 꽃이 인상적이었다면 이곳은 잔디밭이 그랬다. 장애물 없이 널따란 녹색의 풀밭을 본 게 얼마 만인지. 가운데 길은 현무암이 큰 타일 모양으로 다듬어져 깔렸다. 중심 도로로 이용되는 듯 시멘트나 아스팔트보다 이곳에 더 어울렸다. 길을 따라 들어간 오른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용천수가 아닌 빗물이 고여서 만들어졌으나 제법 깊었다.
이곳의 명물은 TV에도 여러 차례 나온 짜장면이다. 중식당만도 열 개에 횟집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식당이 예외 없이 팔고 있어 섬에서 처음 중식으로 문 연 곳에 갔다. 짜장면과 짬뽕 하나씩을 주문했는데 크게 아쉬웠다. 서울 시내 여느 식당보다 비싼 가격에 짬뽕은 고추장 푼 육수인 듯 텁텁하고 매운 고추를 써 아내는 거의 먹지 못했다. 짜장은 고명으로 올려놓은 고추장 불고기가 낯설었고 역시 매콤해 아이는 한 젓가락 들더니 바로 내려놓았다. 두 음식 모두 전체적인 맛은 의문. 다만 다른 관광객들은 접시를 깨끗이 비운 걸로 보아 개인차가 심한 듯했다. 식당을 나와 섬을 일주했다.
고구마 모양의 길쭉한 섬은 가장 긴 곳이 1km 남짓이고 둘레는 대부분이 절벽이다. 길을 따라 해안가를 둘러보다가 서쪽에 배가 접안 한 작은 부두가 보였다. 그 근처가 비교적 바다와 가까워 가파도처럼 갯바위 체험을 위해 내려갔으나 파도가 세고 물가로 가기에는 높아 금방 올라왔다. 좀 더 남쪽으로 가니 절이 한 채 나왔다. 최근에 지어진 듯 고풍스러운 멋은 없었으나 대웅전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이 좋았다. 쉬어가자는 아이의 말에 잠깐 앉았다. 편안하고 조용한 분위기, 좁은 천정에는 천 개도 넘는 소원 비는 등이 달렸다. 그 많은 사람이 먼 곳까지 찾아왔다는 데 감탄했다. 길 좀 더 아래쪽에 대한민국최남단비와 장군바위를 넘어가니 멀리 야트막한 언덕 위 이국적인 건물이 보였다. 지도에는 성당이라 표시되었다. 전체는 거북이 모양으로 제주도 특유의 방사탑을 닮은 종탑 곁에 등껍질처럼 생긴 예배당이 붙어 있다. 겉은 베이지색과 옅은 팥색으로 칠해져 주변에 어울렸고 작은 크기가 아기자기했다. 안에 들어가 앉았다.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파란빛이 스며들었고 천장의 둥근 보가 비대칭인 모습이 독특했다. 마라도는 멋진 카페는 없으나, 절과 성당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며 쉬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다 되어 배를 타러 갔다. 걸음이 바빴지만 지름길인 큰길에서 갈라져 언덕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양옆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섬에서 가장 높은 곳. 귤나무 향기와 소나무 냄새를 맡으며 아쉬움을 뒤로했다.
마라도는 짧은 산책 장소로 괜찮았다. 너른 풀밭, 독특한 건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쉼터, 우연히 만난 작은 숲 등 계속 이어진 색다른 풍경이 기억에 남았다. 제주도는 인근 섬들을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