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 제주 협재 일기 스무엿새 < 제주도 동쪽 >

by 준환

김영갑두모악갤러리 – 제주 아쿠아플래닛 – 온평포구 - 세 번째 손님맞이


제주도에서 열일곱째 날 목적지는 동쪽이었다. 그날 표선면에 있는 김영갑두모악갤러리에 가장 가고 싶었다. 생각하지 못한 휴관으로 오름과 서귀포 시장만 둘러보아 사뭇 아쉬웠다. 스물여섯째 날. 세 번째 동쪽으로 갔다. 숙소에서 성산까지는 직선으로도 칠십 킬로미터에 가까운 가장 먼 거리. 시간이 제일 아까운 여행지에서 한 시간 이상 걸려 간 건 아쿠아리움 때문이었다. 그 기회를 빌려 지난번 놓친 갤러리로 먼저 갔다.

※ 한라산은 부악(釜岳) 또는 두무악(頭無岳)이라고도 부른다. 정상부가 마치 솥처럼 머리가 없는 산처럼 보인다는 말로 그 형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후 제주에 사는 사람들을 비슷한 이름인 두모악(豆毛岳)으로 불렀다. 두모악은 조선시대 울산 해안 지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제주인을 부르는 단어가 되었다. 십오 세기 중엽부터 제주도를 벗어나 경상도와 전라도 등지로 옮겨 와 살았으며, 진상 해산물을 채취하는 의무가 부과되었기 때문에 두모악은 역(役)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 네이버 지식백과)


가까이 갈수록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단층집과 깨끗한 길은 외부인의 손때를 덜 탄 제주도 본래 모습이었다. 외양마저 그런 듯 아닌 듯한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옛 폐교의 운동장은 잘 꾸며진 정원으로 바뀌어 나무 사이사이에 테라코타 인형들이 살고 있었다. 넓지 않았으나 허리 높이의 나무 담벼락을 따라 여유로운 산책길이 났다.


전시관은 두 개의 교실로 되어 있었다. 인접한 곳은 작가의 프로필이 게시된 입구를 지나 돌아가실 때까지 쓰던 작업실이 있었다. 그는 지금처럼 DSLR도 아닌 무거운 거치대가 붙은 기다란 카메라를 들고 많은 오름을 오르내리며 사진으로 남겼다. 보통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 작품 대상은 따라비나 용눈이처럼 거주지 가까이 있어 사람들 생활에 함께했던 중산간 오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름 외에도 들판에 가득한 보리나 가축들이 한가롭게 풀 뜯는 모습도 주요 소재였다. 두모악이란 갤러리 이름은 작가가 관심 있던 거친 자연과 생활력 강한 현지 주민의 공존이란 주제를 온전히 담았다. 전시관 구조는 특이했다. 새하얀 벽면 중간에는 네모난 구멍이 커다랗게 뚫린 벽이 가로로 돌출되어 있었다. 액자처럼 만들고 싶었던 모양으로 그 뒤에 서니 오가는 사람들도 작품이었다. 출구 가까이 넓은 테이블에 놓인 방명록을 아이가 단번에 펼쳤다. 몇 쪽 넘겨 우리 가족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었다. 다음번에 온다면 좀 더 다양한 느낌을 담아 적을 수 있을 거다.



아쿠아플래닛은 규모가 크다. 맨 아래층 아크로바틱 공연장까지 모두 삼 층, 대형 스크린 모양의 수족관이 있다. 어류 중에 가장 큰 흰색 격자와 점무늬가 독특한 고래상어가 실제 살던 곳이다. 지금은 바다로 돌아가고 큰 화면 속에 거대한 몸을 영상으로만 남겼다. 다양한 해양 생물들에서 독특했던 건 알 속에서 자라는 상어였다. 한 뼘 크기 자루 속의 양수에서 점점 성체가 되어 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수족관 일 층으로 내려와 앉으니 대형 가오리와 상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고래들이 내는 음향이 간간이 울리고 푸른 물빛에 깊은 바닷속이 연상되었다.



협재로 돌아가며 온평리 포구에 들렀다. 멀리 벽랑국에서 온 공주들이 처음 배에서 내려 고을라, 부을라, 양을라 삼 신인과 혼인지에서 각각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방파제를 따라 십수 개의 탑과 조형물이 있었다. 작은 포구는 제주도 다른 곳들처럼 아담하고 편안했다. 오늘 세 번째 손님이 온다. 처형 식구와 앞으로 사 일간 함께한다. 아이는 사촌 형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숙소 가는 내내 재잘댔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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