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동산(신화월드)
처형은 간호사다. 주말 부부라 낮에는 일로 저녁에는 두 살 차이 딸과 아들을 돌보느라 바쁘다. 아내는 처형이 오기 전 제주 일정을 물었으나 단지 필요한 건 충분한 휴식이란 대답이었다. 피곤한 워킹맘을 위해 하루 정도는 둘 중 한 명을 우리가 맡기로 했다.
남자아이 둘 눈높이에 맞춰 어디가 가장 좋을까? 놀이동산을 골라 아침 먹자마자 숙소를 나섰다. 등 뒤로 처형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느껴졌으나 아내와 나는 어린애 한 명이 더 낄 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와 조카는 죽이 잘 맞는다. 막내인 열두 살 초등학생은 ‘형아’ 대접받으며 이끌어 줄 동생이 필요했다. 외동의 일곱 살 유치원생은 수준에 맞춰 놀아주는 연상이 좋았다. 활달한 형과 잘 따르는 동생. 평소에도 삼사일에 한 번 영상통화 할 정도로 그리워한 사이인 둘이 만났으니 오죽 재미있을까. 함께 앉은 차 뒷좌석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야단법석이다. 수발 대상이 하나 더 늘었을 뿐 아니라 경쟁적으로 서로 다른 걸 요구하는 통에 처음부터 편안한 여행과 거리가 멀었다.
놀이공원은 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했다. 다만 키 제한이 있었다. 작은아이 키는 115cm. 120cm는 되어야 보호자 없이 즐길 수 있는데 5cm가 모자랐다. 큰애는 바이킹과 롤러코스터를 혼자 재미나게 타고 작은애는 우리 곁에 남아 칭얼댔다. 둘이 같은 또래였다면 뒤처지는 아이에 속상할 엄마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제한이 없는 회전목마, 관람 열차 같은 기구는 아이 둘만 타고 보호자가 동반하면 가능한 롤러코스터를 타려 아내도 표를 끊었다. 함께 갔다 돌아온 작은 아이는 아직 두려움 남은 얼굴을 애써 숨기고 허세 부리며 엄지를 척 들었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시간 보낸 곳은 VR 게임관이었다. 안경 쓰고 가상의 화면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사격게임에 한참 빠졌다. 어찌나 여러 차례였는지 큰애는 맨 위에 이름 올렸고 작은애도 세 번째에 표시되어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한참 후 배가 고팠다. 패스트푸드가 그리웠으나 문 연 곳이 없어 편의점으로 갔다. 소시지, 삼각김밥, 핫바를 사 들고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 한구석에 앉았다. 각자 고른 걸 먹는데 자기 것을 끝낸 큰애가 아내 것을 넘보았고 아내는 내 것을 가져가 버렸다. 안 그래도 부족했던 점심, 간식마저 빼앗겨 울상 짓는 척하는 모습에 나머지가 한참 웃었다. ‘파리떼’. 큰애와 아내에게 지어준 별명.
밤에 아내와 함께 언덕을 내려갔다. 맑은 날, 하늘에 별이 선명했다. 숙소에서 분리수거장까지 걷는 사이 어둠에 적응해 오르막에서 더 많은 별자리가 보였다.
식구들이 잠든 사이 혼자 다시 나갔다. 상전벽해. 이번에는 안개로 가득했다. 바람을 따라 부드러운 작은 물방울들이 피부에 감겼다가 풀어졌고, 가로등 아래는 마치 물이 흐르는 듯 보였다. 가만히 길가에 서서 이곳저곳 한참 둘러봤다. 어둠, 가로등과 집안에서 새 나오는 빛, 안개가 모여 신비한 풍경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