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함과 만족감, 세 번째 배웅 >
휴애리자연생활공원 – 협재해변
처형 가족과 함께한 세 번째 날, 전날까지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먼 곳까지 다녀와 되도록 근처에 가기를 원했다. 처형은 단지 쉬는 게 좋았다. 동서 형님은 오랜만에 온 제주 여행이니만큼 다양한 곳을 가고 싶었다. 원하는 게 달라 각자 움직이는 것도 괜찮으나 내일 헤어지기에 막상 그러기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말했다. “원하시는 대로 하자.” 지금에야 알았으나 동서 형님은 온 첫날 숙소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휴애리 수국 축제에 매료되었다. 가까운 한림공원이나 카멜리아힐처럼 잘 꾸며진 식물원도 괜찮은 선택이었으나 가장의 의지는 꺾기 어려웠다. 아내가 호응해 처형이 따랐고, 활기 넘치는 큰 남자아이는 우리 식구와 함께해 모두 그럭저럭 만족한 나들이가 되었다.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은 철마다 다른 식물이 만개했다. 동백나무 길은 이미 삼월에 한창때가 끝나고, 수국 심긴 길에 화려함을 넘겨주었다. 담장과 온실마다 파랑, 분홍, 빨강 다채로운 커다란 꽃이 만발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 사진 찍기에 바빴고, 우리도 ‘휴애리’라고 쓰인 곳에서 차례를 기다려서 가족을 한 장에 담았다.
돌아오는 길 협재해변에 갔다. 남자아이 둘은 우리가 미처 자리 잡기도 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 바다, 그 앞의 섬이 만든 이색적인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오랜만에 만난 바다에 푹 빠졌다. 나도 따라 들어갔으나 바람과 물이 차 무릎높이에 맞춰 물가를 걷는 데 만족했다. 오월, 너무 덥고 습한 여름이 오기 전 발 디딜 틈 없이 해변에 가득한 사람들과 시원한 바다 수영을 즐기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해가 저물었다. 처형은 조카아이들이 해물을 원한다며 한림 읍내 식당에서 먹을 것을 제안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종일 맞춰 돌아다니다 보니 한 끼는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편하게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입맛들인 제주 막걸리 한 잔도 그리웠다. 그걸 알아챈 아내 덕분에 숙소로 바뀌어 밝아진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숙소로 와 씻기고, 야외 테이블에 먹을 준비를 했다. 한참 만에 도착한 처형 부부는 양손에 한 아름 들고 온 걸 내려놓았다. 고기 세 근, 전복 열 마리, 새우 일 킬로. 우리 식구가 한동안 먹을 양이었다. “너무 많지 않아요?”란 말에 “이 정도는 먹어 줘야죠.”란 대답이었다. 과연 코로나19도 피해 간 가족다웠다. 여럿이 앉은 자리에 처형 혼자 고기와 전복을 솜씨 좋게 구웠다. 집에서도 매일 음식 준비에 힘들었을 텐데 여행에 와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들어 미안했다.
열한 시 넘긴 밤, 모두 함께 별 보러 밖에 나갔다. 길을 따라 내려가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제만큼 환하게 비춘 별이 가득했다. 되돌아 올라오는 길 아이들이 갑자기 춤추기 시작했다. 멀리 부둣가에서 비친 불빛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윤곽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무반주로 시작해서 서너 곡 바꾸어 튼 노래들에 따랐다. 잠시 어디서 본 듯한 동작을 이어 하다가 모든 걸 보여줬는지 그다음부터 음악의 박자에 몸을 맡겼다. 그 모습에 나도 자유를 느꼈다.
레고랜드
나흘간의 짧은 여행이 지나고 처형 가족이 돌아간다. 우리 식구는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세 번째 손님을 배웅한다. 비행기는 오후 3시, 비교적 이른 시간으로 오전에 다른 일정은 잡지 않았다. 대신 점심을 같이하기로 했다.
처형은 자신들이 체류했던 시간보다 많이 남은 우리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남은 사람도 떠나는 사람과 기분이 다르지 않다. 미리부터 다가오지 않길 바라는 날을 세고 있는 데다, 빈자리로 하루 이틀 또 허전함에 시달릴 거다. 남자 조카도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며칠이 안 되면 늦은 비행기 편으로 바꾸자고 여러 차례 성화였다. 내색하지 않았으나 어른들도 같은 마음이다.
식당에서는 남자 조카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가락국수와 돈가스 세트를 다 먹은 후에 그제처럼 이모의 그릇을 넘보았다. 예전에는 먹지 않아 걱정이었으나, 장염에서 회복한 데다 키 크려는 듯 엄청난 먹보가 되었다.
마지막 음식값도 처형 가족이 부담했다. 그동안 같이한 식사와 장 본 것에 제주도 오는 비용도 적지 않았을 터였다. 가는 길에 아이에게 돈까지 쥐여 줘 계속 미안할 따름이다.
형과 작별하고 우선 선택권 받은 아이는 주저 없이 레고랜드를 골랐다. 시내 쪽은 피하려 했으나 단연 일 번이라는 말에 바로 그곳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