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 제주 협재 일기 스무닷새 <주말 같은 하루>

by 준환

한림 오일장 – 한라봉스시 - 애월 카페거리


오늘은 별다른 계획이 없다. 그간 분주했고 내일은 마지막 손님이 온다. 늦게 일어나 계속 쉬려다 아내가 가고 싶던 식당이 있다는 말에 점심이 다 되어 길을 나섰다.


5월 19일, 한림 오일장이 선 날이다. 열흘 후 지방선거 때문인지 유세차량이 많았다. 후보를 알리는 탑차와 선거 운동원들 때문에 평소에도 부족한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었다. 괜히 시장 안으로 들어온 걸 후회하며 다른 사람들처럼 건너편 밭 가에 주차했다.


한림장의 다른 말은 한림조끄뜨레전통시장이다. 조끄뜨레는 가까이란 제주 방언으로 한림 읍내 중심에서 가깝다는 걸 감안하면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시장은 살 게 없어도 볼거리가 많았다. 풍족한 산물과 오가는 많은 사람에 활력을 느끼며 구석구석을 지났다. 아내 먹을 과일과 아이를 위한 쫀드기 몇 개를 사 나오는 길에 먹거리 테이블에 삼삼오오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가까운 가게에서 음식을 사 식사 겸 낮술 하는 이들. 날씨 좋은 날 국밥에 막걸리 한 병 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아내에게 종일 빌어야 할지 몰라 부러움만 남겼다.


한림이 현지인 동네라면 곽지는 관광객을 위한 마을이다. 가로는 잘 꾸며졌고, 다양한 음식점이 모여있었다. 아내가 고른 한라봉스시는 한담해안산책로 옆 2층에 있어 실내와 테라스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좋은 풍경 못지않게 주메뉴로도 유명했다. 천국의 계단은 나선형 계단을 본뜬 나무 그릇에 여러 재료로 만든 초밥이 놓였다. 일행이 많다면 주문했겠으나 셋은 먹는 양이 적어 단품을 시켰다. 멋진 장소와 맛있는 음식에도 아내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곽지 해변 산책로는 주말 전임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코로나 제한이 풀린 데다 애월, 한림 등 제주 서쪽은 점점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바다에 붙은 한 카페로 갔다. 외부는 테이블이 가득 차 실내 한군데에 간신히 앉았다. 드라마 촬영지였기도 해서 올 때마다 손님이 늘어나고 크기도 사방으로 넓어졌으나 입장 전 주문, 높은 가격, 부족한 직원 수는 불만이었다. 이름이 났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애월 카페거리를 지났다. 커피와 도넛, 햄버거를 파는 상점과 기념품 판매 노점들이 어울려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했다. 작은 광장 모래밭에는 영문으로 ‘애월일몰해변’이 새겨진 커다란 그네가 있었다. 태평양 어떤 섬의 바닷가 같아 잠시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 아내 얼굴이 어두워진 이유를 들었다. 난 음식 먹을 때 표현이 적은 편이다. 양이나 질이 괜찮은 곳에 가면 잘 먹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평은 없어도 거의 먹지 않는다. 게다가 초밥은 즐기는 편이 아니다. 말없이 빈 숟가락만 놀리는 모습이 굳이 비싼 곳을 찾아가냐는 무언의 항의처럼 비친 듯. 보통 여행지에서는 분위기 좋은 곳을 찾기 마련이니 오해할 만했다. 상대를 위해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녁은 집 앞 테이블에서 간단히 먹었다. 아이는 고양이와 노느라 먹는 둥 마는 둥 한 입 먹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조용한 주말 같은 하루였으나 비양도 위로 저물어가는 해가 아쉬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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