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돌라 안에서 시작된 느린 가족 산행기
덕유산, 발끝에서 피어난 눈꽃
천안에서 집으로 내려오는 길, 덕유산에 들러 눈꽃을 보고 가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인삼휴게소에서 허리를 한 번 펴고 다시 길에 올랐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추위 덕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그 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은근히 바랐다.
곤돌라 앞 설천하우스 푸드코너는 분명 붐빌 것 같아 입구 식당가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점심은 뭘로 정했나요?”
“봐둔 데가 있습니다.”
며느리는 전주한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아직 혼잡하지 않은 시간. 단체 손님을 기다리는 듯 식당 아주머니들은 분주했다. 예약석을 피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산채돌솥밥으로 통일했다. 잠시 후 단체 손님이 몰려들며 식당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되었고, 일반 손님은 받지 않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 집 점심은 놓칠 뻔했다.
아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곤돌라 입구 쪽은 사정이 달랐다. 간신히 한 자리를 찾아 차를 세웠다.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배낭에는 아이젠, 발목 보호대, 보온병만 챙겼다.
아들은 무인 발매대에서 사전 예약한 티켓을 뽑았고, 아내와 나는 안내소에서 할인권을 샀다. 푸드코너에 잠시 들러 몸을 녹인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곤돌라 입구는 스키어들로 혼잡했지만, 가족끼리 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곤돌라 안에서 발끝부터 시려왔다. 신발을 벗고 핫팩으로 감싸 보았지만 시림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곤돌라가 중턱을 넘자, 세상이 하얗게 열렸다.
능선 위 나무들은 말없이 눈을 끌어안고 있었다. 가지마다 쌓인 눈은 꽃처럼 피어 있었고,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눈송이들이 조용히 흩날렸다. 잠시 발의 시림도 잊었다.
아이젠을 꺼내 하나씩 건네며 신는 방법을 설명했다.
아내는 “지금 신어야겠다”고 했고, 나는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아이젠과 발목 보호대까지 함께 착용했다.
설천봉에 도착하자 덕유산은 우리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눈꽃은 생각보다 더 풍성하고 더 단단했다. 단순히 하얀 것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을 머금은 채 빛나고 있었다.
아이젠을 신고 향적봉으로 향했다. 설천봉에서는 아래 스키장에서 뿜어 올리는 눈 때문에 눈보라가 일었고, 바람은 매서웠다.
아내는 발이 시리다며 힘들어하는 아들 내외를 보고
“우리는 천천히 갈 테니 먼저 올라가”라고 말했다.
초입 계단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자 바람은 잦아들고 공기는 포근해졌다.
나무들은 모두 눈을 입고 있었다. 가지마다 매달린 눈은 꽃이 되어 숲 전체를 조용한 겨울 정원으로 바꿔 놓았다.
사진을 찍어도 손끝이 시리지 않았다. 그만큼 고요했고, 그만큼 깊었다.
향적봉에 도착하자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들 내외는 이미 정상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긴 줄 대신, 아내와 나는 향적봉을 배경으로 셀카 한 장을 남겼다. 눈바람에 오래 머물 수 없어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계단에서 설천봉을 바라보니, 능선 위 눈꽃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바라봤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길을 막았지만,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산길에 신기하게도 시리던 발이 풀렸다. 훈기가 도는 듯 따뜻해졌다.
아이젠 덕분이었는지, 몸이 적응한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발이 편해지니 눈꽃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나무에 핀 눈들이 하나하나 말을 거는 것 같아 자꾸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들 내외는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며 설천봉 휴게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발이 풀렸는데, 너희는 어때?”
아직도 많이 시리다며 곤돌라를 재촉하는 표정이었다.
곤돌라 안에서 아내와 나는 가지고 있던 핫팩을 건넸다.
곤도라 밖에서는 눈발이 조용히 흩날리며, 우리의 하루를 배웅하듯 축하해 주고 있었다.
그 눈은 차갑지 않았다.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조용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