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여는 하루

감자를 심고 된장을 담그며 시작한 시골집 첫 마당일

by 허정호

봄을 여는 하루

2026년 3월 9일.

아침은 여느 날처럼 먹었지만 마음은 조금 분주했다. 올해 처음으로 시골집 마당일을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시골집에 가져갈 것들을 챙겼다. 어제 마트 ‘텃밭’에서 사 온 메주 세 덩이, 점심으로 먹을 떡국거리,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수레에 가득 실었다.

마침 단계장날이었다. 시장 입구에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과 아저씨 한 분이 채소를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 세워줄까. 가볼래?”

아내가 채소를 구경하는 동안 나는 차를 돌려 다시 입구로 나왔다. 아내는 감자 씨앗 한 바구니와 대파 한 단을 사 들고 있었다. 감자를 심기에는 조금 이른 감도 있었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지난해에는 시기를 몰라 늦게 심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집 동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으려 하니 중동 사태 때문에 기름값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주문은 해 두었지만 기름이 충분치 않아 손님들에게는 반만 넣어 주고 있다며 사장님이 미안해했다. 시골 주유소라 조금 비싸긴 하지만 페이 결제가 되어 늘 이곳을 이용한다. 사모님은 “단골이니 괜찮다”며 만땅으로 채워 주었다.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텃밭 한쪽에 구덩이를 파고 가져온 음식물 쓰레기를 묻었다. 아내는 방 한편에 두었던 무 몇 개를 꺼내 보더니 시들어 먹을 수 없다며 버리라고 했다.

나는 목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창고에서 괭이와 삽, 쇠스랑, 까꾸리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심어 두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가지대와 지줏대를 먼저 뽑았다. 뿌리가 깊이 박힌 것들은 괭이로 주변 흙을 조금 파내야 쉽게 빠져나왔다.

검은 비닐도 걷어냈다. 겨울을 나는 동안 비닐은 삭아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가을에 풀을 베어 덮어 두었던 것들도 까꾸리로 모아냈다. 이제 쇠스랑으로 땅을 뒤집을 차례였다. 몇 번 쇠스랑질을 하고 나면 방에 들어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을 이어 갔다.

돌과 지푸라기, 마른풀을 골라내며 큰 둑 하나와 작은 둑 세 개를 만들었다.

그 사이 아내는 메주를 깨끗이 씻어 말리고 장독을 씻어 물기를 빼기 위해 뒤집어 두었다. 그리고 점심으로 떡국을 끓이겠다며 마트에 가서 두부와 계란을 사다 달라고 했다.

떡국에는 두부와 표고버섯, 그리고 요즘 아내가 눈에 좋다며 자주 먹는 청경채를 넣었다. 며칠째 물에 담가 두었던 떡이 조금 퍼지긴 했지만 국물은 시원했다. 밭일을 하다 먹는 따뜻한 한 그릇이라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내는 메주를 담글 소금물을 만들겠다며 소금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포대에 남아 있던 소금을 큰 바가지에 붓다가 그만 넘쳐는 사고가 발새하기도 했다.

소금물을 만드는 동안 나는 작은 둑을 다시 손봤다. 둑이 좁고 낮아 감자가 열리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두 골로 줄였다.

단계장에서 사 온 감자 씨앗이 담긴 검은 비닐을 풀어 보니 감자마다 하얀 순이 올라와 있었다. 순이 하나인 것은 그대로 심고, 두세 개 난 것은 순의 개수대로 나누어 잘랐다. 손으로 흙을 파 감자를 심고 흙을 덮었다.

부엌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호미를 가져다주며 손가락이 아플 테니 호미로 파서 심으라고 했다.

감자를 다 심고 나서는 검은 비닐을 덮어 주었다. 중간중간 돌을 올려 바람에 날리지 않게 고정하고 가장자리를 흙으로 덮었다.

그 사이 아내는 씻어 둔 단지 안에 종이를 태워 소독을 하고 메주를 넣었다. 준비해 둔 소금물을 붓고, 떠오르는 메주를 돌로 눌러 고정한 뒤 부직포를 덮어 고무줄로 묶었다. 올해 된장을 담그는 일도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창고 안을 정리했다. 정미기가 잘 돌아가는지 시험 작동을 해 보았다. 지난해 남아 있던 벼와 올해 수확한 벼를 한 포대씩 정미기 앞으로 끌어왔다.

7분도로 맞추고 도정을 시작했다. 기계가 돌아가자 창고 안에는 금세 쌀겨 먼지가 가득 찼다.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가 대야가 어느 정도 차면 기계를 멈추고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갔다.

내가 가져갈 쌀은 김치통에 담고, 아들에게 줄 쌀은 비닐에 담아 포대에 넣어 묶었다. 아들이 부탁한 가래떡 쌀도 따로 챙겼다.

마당을 둘러보니 지난해 가을꽃을 피웠던 국화대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낫으로 베어 정리했다. 단계장에서 사 온 대파도 감자를 심은 밭 한쪽에 줄을 맞춰 심어 두었다.

이제 마당은 다시 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다음번에 오면 장미와 과실나무 가지를 전정하고, 샤스타데이지도 옮겨 심을 생각이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떡방앗간에 들렀다. 가져온 쌀을 내려 주고 가래떡을 주문했다.

감자를 심고, 된장을 담그고, 마당을 조금 정리했을 뿐인데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큰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시골집 마당에 다시 봄이 시작되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뿌듯한 하루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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