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의 두 고양이

호당이 와 호순이가 가르쳐 준 기다림과 사랑

by 허정호

호당이와 호순이가 가르쳐 준 기다림과 사랑

2025년, 따스한 햇살이 마당을 부드럽게 덮던 어느 봄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호당이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낯선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처마 밑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당이는 늘 그랬듯 익숙한 목소리로 “야옹~ 야옹~” 하며 밥을 달라 보챘고, 아내는 반갑게 문을 열었다.

“호당이 왔어~ 오늘은 친구도 데리고 왔네?”

평소보다 넉넉하게 사료를 퍼서 프라이팬에 담아주었다.

하지만 함께 온 고양이는 달랐다.

차 밑에 몸을 숨긴 채 나오지 않았고, 그저 방 안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 그리고 아직은 믿을 수 없는 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당이는 먼저 사료를 먹다가 이내 차 밑으로 가더니 친구에게 얼굴을 비볐다.

마치 “이리 와,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마당으로 나가자 그제야 도망쳐 버렸고, 결국 그날은 호당이만 남아 사료를 먹고 느긋하게 낮잠을 즐겼다.

며칠 뒤, 호당이는 다시 나타났다.

아내는 장독대 계단 위에 앉아 있는 호당이를 보며 말을 걸었다.

“오늘은 혼자 왔네? 친구는 어디 갔어?”

그날도 어김없이 사료를 넉넉히 부어주고 있는데, 장독대 너머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보였다.

그 고양이였다.

꼬리는 중간이 꺾여 있었고, 한쪽 눈은 눈물과 눈곱으로 엉켜 있었다. 몸은 바짝 말라 있었고, 가까이서 보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며칠 전, 호당이가 데려왔던 바로 그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는 또다시 차 밑으로 숨었고, 호당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호당이는 먹다 말고 다시 다가가 얼굴을 비볐다. 참으로 끈질기고 다정한 설득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 일부러 마당 끝으로 물러났다.

한참이 지나서야 호당이가 “아웅~” 하고 부르듯 울었고, 그제야 그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처마 밑으로 나와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도 몇 번이나 우리를 돌아보았다.

결국 다시 불안한 듯 차 밑으로 돌아갔지만, 오늘은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내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호당이가 저 친구 참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호순이. 너는 이제 호순이다.”

그날 이후로 호순이는 늘 ‘두 번째’였다.

항상 호당이가 먼저 나타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밥을 먹고 사라졌다.

어느 날, 호당이가 하루 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호순이가 혼자 차 밑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치켜들고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딘지 낯설게 당당해 보였다.

아내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호순아~ 호당이 어디 갔어? 가서 데리고 와라~ 밥 줄게.”

호순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처마 밑으로 올라와 사료를 먹었다.

그날 이후, 호당이는 한 달 가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호순이는 빠짐없이 찾아왔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문 앞까지 올라와 “야옹~ 야옹~” 하고 밥을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집사도 정했으면, 밥만 먹고 가지 말고. 창고라도 좀 지키고, 두더지라도 잡아야지.”

그 말이 들린 걸까.

그 뒤로 호순이는 가끔 창고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사라지곤 했다.

묘하게도, 제 역할을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호당이의 자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호순이에게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호당이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곁에는, 역시 호순이가 있었다.

아내는 반가움에 소리쳤다.

“호당이 왔어! 어디 갔다 왔니~ 오늘도 여자 친구 데리고 왔네!”

그날 이후, 둘은 늘 함께였다.

여전히 호당이가 먼저 먹고, 호순이는 뒤를 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란히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거리도, 마음도 점점 가까워진 것이다.

어느 날은 점심에 먹다 남은 생선조각을 사료 위에 얹어주었다.

호순이가 다가오자, 호당이가 앞발로 탁 치며 막아섰다.

그런데 호순이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번개처럼 앞발을 뻗어 생선을 낚아채더니 유유히 먹어버렸다.

그 당돌한 모습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보면, 그 작은 처마 밑에는 단순한 밥자리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경계와 기다림, 조심스러운 신뢰, 그리고 결국에는 함께하게 되는 마음.

호당이는 끝까지 기다렸고,

호순이는 끝내 그 곁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둘의 이야기를 조용히 지켜보는 집사가 되었다.

시골집을 지키는 호당이와 호순이 그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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