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함께한 시골집 마당의 하루

"밥은 먹을 수 있을까요?"

by 허정호

비와 함께한 시골집 마당의 하루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아내는 이미 시골집에 가져갈 것들을 하나둘 챙기고 있었다. 오전은 흐리고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니, 그 틈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겨울 바지를 세탁해 말리겠다는 생각까지 보태어 보따리를 꾸렸다.

단계천의 벚꽃은 이미 활짝 피어 있었고, 시골집 근처 벚나무들은 막 꽃잎을 내밀고 있었다. 계절의 속도가 조금씩 다른 것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마당에 도착하자 수선화 한 포기가 먼저 맞았다. 지난주 전정을 해둔 장미 네 그루도 봄을 준비하는 듯 푸른빛이 강해 겼다. 옮겨 심은 한 그루는 아직 땅의 기운을 충분히 받지 못한 듯해 그대로 두었는데, 오늘은 손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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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마당을 둘러보는 사이 나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창고에서 쇠스랑과 까꾸리를 꺼냈다. 냇가 쪽에 샤스타데이지를 옮기고 남은 자리에 꽃씨를 뿌릴 생각이었다. 쇠스랑으로 흙을 뒤집고, 그새 올라온 잡초를 까꾸리로 걷어냈다. 가을에 국화꽃을 화려하기 피웠던 곳은 잡초가 기세를 부리고 있었다. 괭이와 호미로 하나하나 파냈더니 마음까지 정리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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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아내는 잎이 쳐져있던 고무나무를 분갈이하고, 세탁한 바지를 빨랫줄에 널었다.

점심만 하는 단골식당이 오늘은 장날까지 겹쳐서 몇 번이나 밥 먹으러 가자고 독촉을 했다.

식당 문을 열며 “밥 먹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묻자, 주인은 흔쾌히 방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비빔밥을 시켰고, 옆 테이블 손님도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하지만 준비한 재료가 그걸로 끝이었는지, 뒤에 온 손님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리도 조금만 늦었으면 다른 집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밥을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주인이 문을 열며 “비가 오는 것 같네”라고 했다. 그 말에 아내와 나는 동시에 “어, 빨래!” 하고 외쳤다. 남은 밥을 급히 삼키고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비는 퍼붓듯 쏟아지지 않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내는 상추밭을 살피고, 나는 다시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가 “아직 올라올 꽃들이 많은데 이렇게 마구 헤집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스쳤지만, 잡초를 그냥 둘 수는 없다는 생각도 여전했다. 마당을 돌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비닐을 덮고 씨앗을 뿌린 상추는 여린 잎을 내밀고 있었고, 2주 전 심은 감자씨는 아직 소식이 없다. 너무 깊이 심은 탓일까 짐작만 해본다. 근대와 쑥갓을 심을 밭도 손봐야 했지만, 결국 다음으로 미루었다.

비는 오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이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수확할 것은 아직 없어서 상추 몇 포기만 뽑아 비닐봉지에 담았다.


돌아오는 길, 정취암으로 이어지는 벚꽃길이 눈을 붙잡았다. 아직 위쪽까지는 꽃을 피우지 않았지만, 아래쪽 길은 이미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비에 젖은 벚꽃이 더 또렷하게 빛났다.

짧은 하루였지만, 흙을 만지고 계절을 느끼고, 서두르고 또 멈추는 사이에서 하루가 조용히 지나갔다. 비를 피해 다녀온 것이 아니라, 비와 함께 하루를 건너온 듯한 날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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