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의 온기와 마당에 스미는 생명의 시간
마당에 금낭화와 무스카리가 꽃을 피웠다
시골집으로 향하는 길에 산청장을 들렀다. 봄나물을 사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장터 입구부터 북적였다. 공용주차장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장날이라 해도 이렇게 붐비는 모습은 드문 일이라 잠시 놀랐다. 결국 한적한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난전 한복판에는 묘목과 모종을 파는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머위나물과 산나물, 두릅이 제철을 맞아 한창이었다. 봄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한 풍경이었다. 머위나물 한 소쿠리를 사니 할머니는 말없이 한 주먹을 더 얹어 주셨다. 그 소박한 손길에서 장터의 온기와 인심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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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에 들러 민생안정지원금 카드까지 챙기고 나서야 시골집으로 향했다. 마당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리며 집 안팎을 둘러보니, 계절은 이미 한 발 앞서 와 있었다.
입구에는 올초 심은 수선화 네 포기 중 두 포기만이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같은 날 심었던 백합도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지난번 가지치기를 했던 장미는 연둣빛 새순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겨울을 지나온 것들이 하나둘씩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처마밑 큰 화분 안 무스카리는 보랏빛 꽃을 피워 작은 색을 더했고, 튤립 두 포기는 꽃봉오리를 맺은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가을에 뿌린 유채가 노랗게 번지기 시작했고, 수레국화도 곧 꽃을 피울 준비를 마친 듯했다.
앵두나무는 하얀 꽃을 눈부시게 피워 마치 늦은 매화를 보는 듯했고, 자두나무와 복숭아나무 역시 가지 끝마다 꽃을 달고 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나무 아래 춘란은 지난해 잡풀에 덮였던 기억 때문인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대신 감나무 아래 금낭화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꽃대를 올리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생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을 건너고 있었다.
이날 내가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돌길에 부직포를 까는 일이다. 돌과 돌 사이로 끈질기게 올라오는 잡초를 매번 뽑아내는 일은 늘 버거웠고, 장마철이면 결국 손을 놓고 말곤 했다. 더위와 모기까지 더해지면 그 일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농협 자재판매소에서 검은 부직포와 핀을 사 와 돌길을 따라 깔기 시작했다. 돌 사이의 잡풀과 잔돌을 정리하고, 길의 폭에 맞춰 부직포를 펼친 뒤 핀으로 고정했다. 하지만 마당에 박힌 돌들이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핀 하나를 꽂기 위해 여러 번 힘을 주어야 했고, 운 좋게 한 번에 들어가면 그마저도 고맙게 느껴졌다.
곡선으로 이어진 돌길 덕분에 부직포는 자꾸 한쪽으로 밀렸고, 그때마다 접어가며 핀을 박아야 했다. 작업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됐고, 결국 핀이 부족해 두 묶음을 더 사 와야 했다.
점심은 밖에서 먹을 줄 알았지만, 아내는 이미 시간을 재고 있었다. 내가 부직포 작업에 몰두한 사이, 아내는 감자 싹이 숨 쉬도록 구멍을 내주고, 머위잎을 따고, 듬성듬성 자란 달래를 캐고 있었다. 그리고 마트에서 사 온 두부와 청국장으로 따끈한 한 끼를 준비해 두었다.
큰 대접에 밥을 담고 청국장을 넣어 비벼 먹는 그 소박한 식사는, 하루의 노동을 충분히 위로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늘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다시 작업에 나섰다. 남은 돌길에 부직포를 덮어 나가는데, 멀리서 벼락이 치며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금세 비가 쏟아질 듯한 기운이었다.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아내는 집으로 가져갈 상추를 캐고 있었다. 나는 차에서 우산을 꺼내 들고 아내에게 달려갔다. 비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지만,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모를 하늘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아직 손대지 못한 장미 한 그루 앞에 멈춰 섰다. “이건 하고 가야겠다”는 말과 함께 망설임 없이 가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성하던 가지를 정리하고 나니 네 개의 줄기만 남았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비워낸 자리의 단정함과, 곧 다시 채워질 생명의 여백이었다.
며칠 후 이 마당이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의 손길이 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