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향기와 벌 소리로 가득 찬 하루
시골집 마당 사과꽃과 유채꽃으로 가득 채운 날
시골집 마당에 들어서자, 유채꽃 향기가 먼저 나를 맞았다. 마당 가득 번져 있는 그 향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짙고도 부드러웠다. 지난해 봄 수확해 두었던 유채를 가을에 뿌렸지만, 싹이 올라오자마자 새들의 모이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작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꽃들은 지금 절정을 이루어 피어 있고, 그 향기에 이끌린 벌들이 모여들어 유채밭은 ‘웅—’ 하는 낮은 울림으로 진동하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나비들까지 더해져, 유채밭은 한층 더 생동감 있는 풍경이 되었다.
마당 한편에는 이 집의 터주대감 같은 사과나무가 서 있다. 스무 해를 훌쩍 넘긴 그 나무는 지난 2년 동안 유난히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에는 꽃이 거의 달리지 않았고, 그나마 맺혔던 사과와 잎마저 태풍에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올봄에는 꼭 꽃을 피워야 한다며 정성껏 퇴비를 주고, 마음을 담아 기도까지 했다. 그 간절함이 닿은 것일까. 올해는 가지마다 하얀 꽃송이가 내려앉아, 마치 눈이 쌓인 듯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사과나무 잎 사이사이 피어난 꽃들은 고요하면서도 환하게 봄을 밝히고 있었다.
벌들은 유채밭과 사과나무를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의 바쁜 날갯짓 속에서 봄은 더욱 또렷해지고, 마당은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된다. 사과나무 아래에는 금낭화가 자리 잡고 있다. 4년 전 퇴비공장에서 한 포기를 분양받아 심었던 것이 이제는 아홉 포기로 늘어났다.
그중 일곱 포기는 붉은 저고리와 흰 치마를 입은 꽃들을 줄기마다 매달고, 바람에 한들거리며 춤을 추듯 봄을 즐기고 있다. 한 포기는 올봄 새싹을 틔웠고, 또 다른 한 포기는 아내가 화분에 씨앗을 심어 지난해 발아까지는 했지만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다.
며칠 전에는 지난해 받아 두었던 금낭화 씨앗 스무 알을 두 알씩 나누어 심고, 돌로 작은 담처럼 둘러주었다. 잘 발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도 듬뿍 주었다. 그 작은 자리에도 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다.
마당 곳곳에서는 수레국화가 꽃 필 준비를 끝낸 듯하다. 오 년 전 이맘때쯤 개울가에서 자라던 한 포기를 옮겨 심었을 뿐인데, 이제는 마당 전체로 번져 나갔다. 늦은 봄 꽃이 지고 나면 따로 씨를 받아 뿌린 적도 없는데, 해마다 자연스럽게 퍼져 나간 것이다.
텃밭에 난 수레국화는 다른 곳으로 옮겨심기도 하지만,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될 때는 뽑아 풀더미와 함께 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왜 버려, 꽃 피우려고 이렇게 자란 것을” 하며 다시 주워다 심곤 했다. 그 말속에는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감자는 이미 순이 올라왔지만, 때늦은 꽃샘추위에 한 번 모두 녹아버렸다.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어 새 잎을 보슬보슬 밀어 올렸다. 연약해 보이지만 쉽게 꺾이지 않는 생명의 힘이 그 작은 잎에 담겨 있다.
마당의 잔디도 겨울을 이겨내고 푸르게 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잔디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크로바다. 얼마 전까지는 뿌리째 뽑아냈지만, 너무 많이 번져 이제는 그 방법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예초기로 자라는 대로 베어내기로 했다. 오늘도 막 올라온 크로바 잎과 줄기를 베어내며 마당을 정리했다.
아내가 상추를 수확하는 동안, 나는 부엌에서 청국장을 끓였다. 깜빡하고 무를 넣지 못했지만, 청국장 한 봉지에 두부 한 모를 넣고 대파만 썰어 넣어 끓였다. 재료는 단출했지만, 구수한 냄새가 시골집 마당까지 가득 채웠다. 갓 따온 상추와 함께 차린 점심은 소박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걸쭉하게 끓여낸 청국장 한 숟가락에, 마당의 봄과 우리가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그날의 마당은 꽃과 바람, 벌과 나비,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어우러져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그래서 더 오래 동안 마당에 머물고 싶어지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