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과 코스모스의 계절
시골집 마당의 여름
여름이면 시골집 마당에는 두 친구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나는 키가 크고 수줍은 얼굴을 한 코스모스, 다른 하나는 무엇이든 집요하게 타고 오르려는 붉은 나팔꽃이다. 둘은 성격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한 계절을 함께 부대끼며 버티고 피어나며 마당을 가득 채운다.
코스모스의 시작은 2017년, 담양 장평마을의 한적한 슬로시티 길에서였다. 마을 길을 걷다가 풀숲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코스모스가 그날따라 유난히 곱게 보였다. 나와 아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씨앗 몇 알을 챙겨 왔다. 시골집 냇가 둑을 따라 그 씨앗들을 뿌렸지만, 척박한 흙은 우리의 기대만큼 너그러워지지 않았다. 발아는 드물었고, 단 몇 줄기만이 힘겹게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자라던 코스모스에게 어느 날 뜻밖의 경쟁자가 나타났다. 진도의 어느 초등학교 담장에서 보았던, 유난히 붉고 탐스러웠던 나팔꽃이 그 주인공이다. 그때 가져온 씨앗을 화분에서 공들여 키웠고, 어느새 마당으로 옮겨심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담장 한쪽을 곱게 장식하라고 데려온 아이였는데, 예상보다 훨씬 왕성한 생명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팔꽃은 땅의 성질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줄기를 세차게 뻗어 담장을 오르고, 담쟁이덩굴의 길을 빼앗기도 했으며, 때로는 코스모스의 줄기를 휘감으며 올라갔다. 코스모스는 그 기세에 눌려 한동안 꽃을 피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길을 찾는 법이다. 나팔꽃 줄기를 비켜나 조금 늦게 자란 몇 송이가 티끌만 한 희망처럼 가지를 뻗더니, 마침내 늦여름 하늘 아래 은은한 분홍빛 꽃을 피워냈다.
그러나 그 평온도 오래가진 못했다. 가을 태풍이 한 차례 마당을 훑고 지나간 뒤, 쓰러진 코스모스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지주대를 세우고 하나하나 묶어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꺾여 거의 부러질 것만 같던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 다시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연의 생명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나팔꽃은 여전히 담장을 오르고 있었다. 줄기가 엉키지 않도록 지주대를 박고 그물을 설치해 방향을 잡아주었더니, 나팔꽃은 마치 그 길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던 듯 흔들림 없이 그물을 타고 하늘로 향했다. 몇몇 줄기는 결국 사과나무까지 올라가 붉은 꽃을 터뜨렸다.
아침이면 이슬을 머금은 붉은 나팔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당 가득 번진 붉은 색채는 하루를 깨우는 따뜻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꽃들을 바라보며, 하나의 계절이 내게 건네는 선물에 감사했다.
코스모스와 나팔꽃.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여름을 살아냈고, 또 다른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했다. 수줍고 섬세한 아이 같은 코스모스, 그리고 그 아이를 감싸 안으려다 어느새 욕심을 부린 나팔꽃. 나는 그 둘을 함께 돌보고 지켜보며, 한 계절의 정원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