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심다

시골집 마당에 첫 씨앗을 뿌리던 날

by 허정호

시골집 마당에 첫 씨앗을 뿌리던 날

2019년 5월 중순.

동의보감촌을 산책하고 산청시장에 들렀다.

장날 특유의 소란함 속에서 길 양편으로 늘어선 난전들이 사람을 붙들어 놓았다.

그때였다.

모종이 가지런히 놓인 좌판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나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지모종 세 포기와 방울토마토 두 포기.

값은 모두 합쳐 2,500원.

그 작은 봉투를 들고 우리는 묘하게 설레는 마음으로 시골집으로 향했다.

마당 한쪽 잡초를 뽑아내고 두둑을 만들었다.

서툰 손길로 흙을 고르고, 모종을 눕히듯 심었다.

물은 괜히 부족할까 싶어 몇 번이고 더 뿌려주었다.

그날, 시골집 마당은 처음으로 ‘텃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주일 뒤, 다시 시장으로 갔다.

이번에는 고추 두 포기와 오이 한 포기, 참외 모종 하나를 샀다.

식료품 가게 앞 작은 바구니에 담긴 무언가가 눈에 들어 “이게 뭐예요?” 하고 묻자

아주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쪽파 씨요.”

그 한 바구니를 5,000원에 샀다.

시골집 앞 농자재 판매장에서 퇴비 한 포대도 샀다.

농협 회원이면 1,700원이었고, 나는 회원이 아니어서 3,700원을 냈다.

괜히 손해 본 것 같은 기분도 잠시,

그 포대 하나가 텃밭에 주는 든든함은 값으로 따질 수 없었다.

방울토마토 옆에 두둑을 하나 더 만들고,

퇴비에 밀기울을 섞어 고추와 오이를 심었다.

참외는 개울가 쪽 둑 가장자리에,

쪽파 씨앗은 고추밭 앞 작은 땅에 뭉텅이로 심었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시골집으로 향했다.

방울토마토에는 지줏대를 세워 주었지만,

줄기가 약해 자꾸 옆으로 쓰러졌다.

결국 여러 개의 지줏대를 덧대야 했다.

그래도 방울토마토는 성실하게 소임을 다했다.

붉게 익어갈 때마다,

마치 “기다려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듯했다.

가지는 더 기특했다.

튼튼하게 자라 튼실한 열매를 맺었고,

가을이 끝날 때까지 식탁을 든든하게 책임졌다.

그때 알았다.

사람도 작물도, 겉모양보다 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반면 고추는 끝내 마음을 다 주지 못했다.

거름이 모자랐던 탓인지, 줄기는 늘 연약했다.

붉게 익기도 전에 풋고추로 밥상에 올랐다.

된장에 찍어 먹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탄저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붉은 고추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오이도 마찬가지였다.

줄기는 지줏대를 올라갈 기운이 없었다.

아래로 축 처진 채 힘없이 버티다.

가느다란 오이 몇 개만 남기고 조용히 시들어갔다.

그중 하나.

작지만 단단했던 그 오이 하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베어 무는 순간 퍼지던 풋풋한 향과 아삭함.

시장에서 사 먹는 오이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참외도 하나뿐이었다.

가는 줄기에 매달린 그 작은 열매는

여름 햇살 아래서 오래도록 익어갔다.

쪽파는 의외로 성실했다.

심은 지 일주일쯤 지나자 땅을 밀어내고 파란 줄기를 올렸다.

한 달이 지나자 밭은 초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씨앗을 욕심내어 뭉텅이로 심은 탓에

줄기들은 가늘고 여렸다.

결국 가위로 모두 잘라내고,

하나씩 떼어 다시 심었다.

그제야 쪽파는 스스로의 자리를 찾았다.

번듯한 줄기로 자라났고,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해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쪽파는 식탁 위의 주인공이었다.

파장국에, 파김치에, 파전에.

우리 밥상은 어느새 푸른 향기로 가득 찼다.

돌이켜보면

텃밭은 작았지만

내가 배운 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조급해하지 않는 법,

욕심을 줄이는 법,

그리고—

기다리는 법.

그해 봄,

시골집 마당에서

나는 비로소 텃밭을 시작하는 작은 종을 울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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