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한가운데서 자란 한 통의 수박
정말 귀한, 우리의 여름
시골집 마당놀이를 시작한 첫해 초여름, 마당 한가운데에서 떡잎 셋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뭘까. 참외일까, 오이일까, 수박일까.
떡잎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줄기가 자라나며 두 장의 잎을 펼치자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먹고 난 음식물 쓰레기를 묻은 자리잖아. 수박일 거야, 틀림없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식구들은 참외를 즐겨 먹지 않았고, 오이는 통째로 먹어 씨앗이 나올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수박이겠지.
가느다란 줄기는 방향도 가리지 않고 힘차게 뻗어나가며
어느새 열 개가 넘는 옆가지를 만들어냈다.
잎은 여전히 연약했고, 줄기는 가냘프기 짝이 없었지만
생명력만큼은 놀라웠다.
퇴비도 없고, 거름 한 번 주지 않았지만
줄기들은 이리저리 서로 얽히며 자라났다.
엉킨 줄기를 하나하나 풀어주다 부러뜨리기도 했지만
수박은 금세 새로운 줄기를 내어 상처를 덮었다.
줄기마다 꽃이 피어났다.
수십 송이의 노란 꽃들.
하우스 수박 농가에서는
한 포기에 두세 개의 열매만 남기고
나머지 꽃은 모두 딴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두었다.
꽃도, 줄기도,
수박이 되고 싶은 작은 시도들도.
그중 제일 큰 줄기는 어느새
6~7미터 가까이 자라 있었다.
꽃마다 동전만 한 아기 수박들이 주렁주렁 달렸고
시간이 지나자 주먹만큼 자란 수박들이
물러져서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결국 끝까지 남은 건 단 세 개였다.
7월을 지내고 8월로 접어들면서
그 수박 세 개는 내 머리통만큼 커졌다.
노지 수박은 8월 중순이면
더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더 기다릴지,
아니면 지금 따야 할지.
혹시 욕심을 내다 더 두었다가 썩어버리면 어쩌나 싶어
두 개는 따고, 하나는 더 두기로 했다.
아내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나는 가위를 들었다.
조심스레 수박 꼭지를 자른 뒤
수박을 얼굴에 대보았다.
내 머리통이 큰지,
수박이 큰지.
그렇게 웃으며
두 손으로 소중히 안아
방 안으로 가져갔다.
칼끝이 수박 껍질에 닿는 순간
얇은 껍질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아내와 나는 동시에 움찔했다.
속살은 진하게 붉지는 않았지만
주황빛 살 사이로 박힌
검은 씨들이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웠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상큼한 수박의 육즙이
입안 가득 고였다.
그 맛은,
어디서도 없는 맛이었다.
직접 키운 손맛.
그 한입이 주는 기쁨은
비록 크지 않았지만
너무나 조촐하고,
또 깊었다.
정말 귀한 수박이었다.
정말 귀한, 우리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