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온기 사이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다
마당 손님 얼랑이와 그 친구들
시골집에 가면 종종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언제부터였을까. 마당 근처를 얼씬거리며 나타나던 길고양이 한 마리. 우리는 그 아이를 ‘얼랑이’라 불렀다. 이름 그대로, 늘 곁에 있을 듯 말 듯 얼씬거리다 사라지는 녀석이었다.
얼랑이는 늘 혼자였다.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음식물 찌꺼기가 묻은 흙을 앞발로 파헤치기도 했고, 마당을 한 바퀴 휙 둘러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은 먹다 남긴 쥐꼬리 같은 ‘야생미 넘치는 선물’을 마당에 두고 가 아내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날도 얼랑이는 조심스럽게 마당을 기웃거렸다.
배가 고픈지 음식물 쓰레기가 든 포대를 앞발로 박박 긁었다. 아내는 먹다 남은 밥에 닭국을 비벼 그릇에 담아 내주었다. 얼랑이는 냄새를 쿡쿡 맡더니 컨테이너 창고 밑으로 사라졌다.
“닭국에 도라지를 넣어서 맛이 없나 봐.”
아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얼랑이는 창고 옆에서 개구리를 잡아 놀고 있었다. 앞발로 툭툭 건드리고, 입에 넣었다가 다시 뱉고, 달아나면 다시 낚아채는 일을 반복했다. 한 시간쯤, 개구리는 사냥감이 아니라 장난감이 된 듯했다.
아내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청돌이네’ 영상 마지막에 마당 가꾸기 장면과 함께 넣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작전을 세웠다.
“얼랑이를 마당으로 계속 불러오게 할 거야.”
어떻게 하면 길고양이와 친해질 수 있을지 책을 사고, 사료도 주문했다.
며칠 뒤 사료가 도착하자, 딸이 한 포를 먼저 들고나갔다.
“강변 쓰레기 더미에 새끼 고양이가 있길래 손 위에 올려서 줬어. 잘 먹더라.”
나는 괜히 걱정스러워 말했다.
“할퀴면 다칠 수 있으니까 꼭 그릇에 담아 줘.”
이렇게 마당 안 사람들과 길고양이 사이에, 아주 조심스럽고 느린 연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2020년, 따뜻한 봄날.
시골집 마당에 길고양이 네 마리가 찾아왔다.
가장 먼저 온 고양이는 흰 털에 노란 무늬가 은은하게 번진 예쁜 길냥이 었다.
“얘가 제일 예쁘다.”
아내는 이름은 ‘예랑이’라고 지어 주었다.
두 번째는 이미 익숙한 얼굴, 얼랑이였다.
세 번째는 흰 바탕에 노란색이 덤성덤성 얹힌 고양이여서 ‘노랭이’.
마지막은 얼랑이가 데리고 온, 전신이 까만 고양이였다. 살금살금 걷는 모습이 어쩐지 의젓해 보여 ‘검랑이’라 불렀다.
그날 아침, 예랑이는 옆집 밭을 가로질러 마당으로 어슬렁어슬렁 들어왔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경계심이 가득한 걸음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창고 밑 좁은 구멍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예랑이 왔어. 가지 말고 있어. 밥 줄게.”
아내가 사료를 가지러 간 사이, 예랑이는 구멍 속에서 사라졌다.
사료를 그릇에 담아 창고 앞에 두고 한참을 기다렸다. 예랑이는 구멍 안에서 사료를 빤히 바라보며 나오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온 그때,
‘오도독, 오도독.’
사료 씹는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를 들고 다시 나가 보니, 예랑이는 그릇 바닥까지 깨끗이 비우고 조용히 사라졌다.
점심 무렵에는 얼랑이가 나타났다. 개울 둑을 넘어 익숙한 눈빛으로 다가와 예전 사료 그릇 앞에 앉았다.
“나도 왔어요. 나도 밥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면 먹는 걸 멈췄다가, 모른 척 지나가면 다시 오도독 소리가 났다. 얼랑이는 조금씩, 정말 조금씩 사람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세 번째로 노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가 사료를 떠다 놓았지만, 노랭이는 바로 오지 않고 창고 아래 구멍으로 들어가 밖을 살폈다. 살며시 나와 먹는 순간을 찍으려 하자 다시 숨어버렸다.
그때 얼랑이가 검랑이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얼랑이가 친구를 데려왔네!”
두 녀석은 나란히 사료 그릇 앞에 섰다. 검랑이는 한참 주변을 살피더니 얼랑이와 함께 사료를 나눠 먹었다. 형제인지, 친구인지, 연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란히 먹는 모습이 묘하게 정겨웠다.
나는 그릇을 하나 더 꺼내 사료를 나눠 담았지만, 얼랑이와 검랑이는 끝까지 같은 그릇을 고수했다.
잠시 뒤 노랭이가 다시 다가오자, 검랑이가 갑자기 “꽥!”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등이 곤두세우고 앞발이 날아갔다. 노랭이도 물러서지 않고 “쉭—” 소리를 내며 방어했다. 짧지만 치열한 기싸움 끝에 노랭이는 꼬리를 내렸다.
그 사이 얼랑이와 검랑이는 두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꼬리를 곧게 세운 채 창고 구멍으로 들어가 개울가로 사라졌다.
하루의 끝자락, 마당에는 고요만이 남았다.
사료 그릇에 남은 흔적, 창고 밑구멍의 인기척, 보이지 않는 발자국들. 오늘도 길 위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사람과 고양이,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그 거리감이, 그래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