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소프라노,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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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신이 내린 목소리'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이번에 조수미 선생님이 또 어마어마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해서 화제인데요. 바로 지난 5월 27일 프랑스 문화예술공로상 최고 등급 '코망되르'를 받았다는 소식이에요. 한국인 수훈자는 이때까지 10여 명이 있지만, 이 중 최고 등급을 받은 사람은 조수미 선생님까지 해서 총 3명뿐이라고 해요! 조수미 선생님의 이력은 너무 많아서 읊는 데만 몇십 분이 걸릴 정도인데요. 조수미 선생님은 정말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 드라마 주인공도 이렇게 쓰면 욕 먹어요.
[1] 프랑스 최고 훈장 '코망되르' 수훈
[2] 세계 3대 소프라노가 되기까지
[3] 말해? 뭐해! 조수미는 신이에요
[4] 클래식 크로스오버가 뭐야?
[step 1] 프랑스 최고 훈장 '코망되르' 수훈
문화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 훈장을 받다
지난 5월 26일,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프랑스 문화부에서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를 수훈했어. 이 훈장은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거나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데요. 문화예술의 중심지 프랑스에서 주관하는 만큼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화훈장 중 하나라고! 특히나 이번 수훈식에서는 한국계 프랑스인인 플뢰르 펠르랭 전 문화장관이 훈장을 전달해 더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조수미는 어떻게 이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알아볼까요?
코망되르,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문화예술공로훈장은 슈발리에, 오피시에, 코망되르 총 세 등급으로 나뉩니다. 그중 조수미가 수훈한 코망되르는 가장 높은 등급에 속하는데요! 2002년 김정옥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2011년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2025년 조수미가 세 번째 수훈자가 되었습니다. 펠르랭 전 장관은 '1980년대 서양 오페라 세계에서 아시아 예술가가 성공하는 건 거의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속에서 당신은 장벽을 깨고 편견을 극복했으며 다른 이들이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며 조수미의 공로를 치하했는데요. 특히 조수미는 40여년간의 성악 활동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 간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열린 제1회 조수미 국제 콩쿠르
조수미는 코망되르 수훈에 대해 벅찬 감정을 드러내며 눈시울을 붉혔는데요. 특히 유학생활을 시작하던 1980년대, 타국에서 온 예술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준 프랑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기도 했어요! 이어 이번 코망되르 수훈은 프랑스가 한국의 문화적 예술성을 인정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에게 더욱 가치있는 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조수미는 프랑스에서 본인의 이름을 내건 국제 콩쿠르를 개최하기도 했는데요. 2024년 7월 7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이 콩쿠르는 젊은 성악가들에게 국제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어요. 게다가 올해 6월, 콩쿠르 우승자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 투어도 열린다니! 성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아야겠네요!
[step 2] 세계 3대 소프라노가 되기까지
미친 재능으로 수석을 휩쓸어버림
국민학교 4학년 시절, 어린이 음악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에 출연한 조수미는 당시 선화예중 합창반을 맡고 있던 유병무의 눈에 띄어 성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그렇게 선화예중 전교 수석 입학으로 시작된 학창 시절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어요. 선화예고까지 6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노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죠. 조수미는 이 시기를 '워낙 탁월한 재능 덕분에 '경쟁'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하기도 했어요. 이어서 서울대학교 성악과까지 수석으로 입학하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대학 생활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랐어요.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그 이유는 바로 아주 지독한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인데요. 같은 학교 경영학과였던 K군과의 연애에 몰두해 학교 생활에 소홀해진 나머지 수석 입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만에 낙제점을 받고 퇴학당하게 돼요. 이후 홀로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게 된 조수미였죠. 원래대로라면 여유롭지 않은 집안 상황 때문에 3~6개월 정도만 공부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탈리아에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K군에게서 이별의 편지를 받게 되죠. 이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여기에서 성공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라는 강력한 결심을 하게 돼요.
처절했던 노력이 남긴 것
한국 밖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이들을 마주하며 지금까지의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실감한 조수미는 성악 공부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해요. 아침에 이탈리아어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곧바로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향해 동시에 3명의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았죠. 영양실조와 빈혈로 쓰러지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이를 악물고 노력했어요. 그 덕분에 5년 과정을 무려 2년 만에 마칠 수 있었죠. 그토록 힘들었던 당시의 생활은 '인생 공부'가 되었고, K군에게 느꼈던 사랑과 미움 등 온갖 감정들은 그의 노래에 담긴 깊은 울림의 자양분이 되었죠. (이제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할 정도라고!)
좌절을 딛고 프리마돈나로 우뚝 서다!
이후 조수미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 볼 첫 번째 기회로 핀란드 국제 콩쿨에 도전하지만, 유력한 우승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선 탈락에 그치게 되죠.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석 달간 노래를 부르지도 못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졌다고 해요. 그러나 거기서 포기할 그가 아니죠! 이후 나폴리 존타 콩쿨부터 남아공 프리토리아 콩쿨까지 무려 6개의 국제 콩쿨에서 1등을 휩쓸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덕분에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 역 제안을 받게 돼요. 당시 23세의 어린 동양인 성악가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자리 잡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진심 어린 노래와 연기는 냉담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놓았고, 결국 1986년 10월 26일, 유럽 무대 최초의 한국인 프리마돈나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극찬을 받았답니다! 세계 3대 소프라노 조수미의 당찬 시작이었죠.
[step 3] 말해? 뭐해! 조수미는 신이에요
카라얀이 선택한 마지막 소프라노
소프라노로 갓 데뷔한 조수미의 인생을 한 번에 뒤바꾼 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요. 바로 '클래식의 황제' 타이틀을 가진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캐스팅된 건데요. 조수미의 데뷔 무대를 본 캐스팅 담당자가 카라얀과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이때의 첫만남으로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주요 배역인 '오스카'에 조수미를 캐스팅한 거죠. 이를 계기로 조수미와 카라얀은 국적을 넘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었다고 해요. 실제로 카라얀은 '조수미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이는 조수미 자신에게뿐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다.'라는 극찬을 남기며, 조수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죠.
카라얀과 조수미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유명한 영상이 있는데요. 1987년 카라얀이 조수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 리허설을 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죠. 여기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르게 될 조수미에게 목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며 걱정하고 충고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냉철하기로 소문난 카라얀의 보기 드문 모습에서 카라얀이 얼마나 조수미를 아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죠.
세계적으로 단 3명만 가능한 곡
오페라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다는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는 조수미가 세계적인 소프라노로서의 입지를 굳힌 작품이기도 한데요. 사람이 부르기엔 기술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평을 받는 이 곡에서 조수미는 정확한 음정과 박자 표현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는 찬사를 받았죠. 또, 당시 지휘자였던 게오르그 솔티는 '세계적으로도 세 명밖에 소화해낼 수 없다'면서 '조수미는 그 세 명 중 한 명'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여담으로 당시에 다른 회사와 계약하고 있던 조수미에게 솔티가 자신의 녹음에 참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설득한 끝에 허락을 맡아 녹음을 진행했다고 하죠. 이 일화는 조수미의 자서전에 기록될 만큼 유명한 일화이기도 해요. 얼마나 잘 불렀으면 3년 동안 3개의 녹음이 나왔을까요?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해요)
조수미 선생님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조수미가 세운 여러 기록 중 주목할 한 가지의 기록은 바로 체르비네타의 아리아를 세계 최초 원본으로 선보였다는 건데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체르비네타가 부르는 '고귀하신 공주님'은 최고음으로 20분 넘게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의 곡(소프라노의 한계음인 높은 F#음을 세 번이나 찍어야 한다고)으로, 당시에 여러 소프라노의 항의가 있었을 정도로 어려운 곡인데요. 심지어 작곡한 슈트라우스마저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악보의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죠. 하지만 조수미가 1994년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원본을 부르는 기록을 남겼죠. 그런데 실제로 조수미의 고음은 그보다 두음이나 더 높은 A(라)까지 낸다고 하니 그의 재능은 과연 한계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예요.
세계 최고의 프리마돈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너무 많아서 지겨울 정도의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를 6개를 석권했고,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프리마돈나로 공연한 최초의 동양인이에요. 그리고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하죠.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유학 길에 올랐던 1983년에서 딱 10년 후인 1993년에 이룬 업적이라고 해요. 세계 정상에 오른 그의 업적은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 조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입에 올리는 건 너무 입 아픈 일이겠죠?
[step 4] 클래식 크로스오버가 뭐야?
클래식 크로스오버?
많은 대중들에게 아직 클래식은 '어려운' 장르로 여겨지고 있어요.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숙해야 할 것 같은 공기, 이름 모르는 수많은 작곡가의 이름들.. 그러나 사실 음악이 주는 감동은 어느 장르를 가리지 않죠! 조수미는 클래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며, 클래식과 대중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싶어 했어요. 그녀는 이전 JTBC <비정상회담> 방송을 통해 '젊은이들이 K-POP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만큼 클래식도 좋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렇기에 클래식이 어려운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하고 싶다.' 고 말하며 학생들을 공연에 초대하는 등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시도한 '크로스오버'는 주목할 만한데요. 클래식 크로스오버는 클래식의 엄격한 문법에서 벗어나 팝, 재즈, 민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만나는 방식을 말해요. 조수미는 세계 정상급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면서도,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의 감동을 전하고자 크로스오버 장르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고 해요.
조수미만의 독보적인 크로스오버
그 대표적인 음반이 바로 <Only Love>인데요. 이 앨범에는 <미스 사이공>의 'I Still Believe', <지킬 앤 하이드>의 'Once Upon A Dream', 'In His Eyes', 'Someone Like You' 등 유명 브로드웨이 뮤지컬 넘버와 LG DIOS 광고 삽입곡인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 등 우리 귀에 친숙한 명곡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2000년에 발매된 이 국내 클래식 음반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1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는데요! 요즘이야 100만 장이 이렇게까지 놀랄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기에 클래식 장르에서 이만큼의 성과를 내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어요. 특히, 이 음반이 발매되던 시기에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성악가가 크로스오버를 하는 것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클래식을 통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던 조수미는 이 앨범을 통해 그러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녀의 한국 가곡 사랑을 막을 순 없다!
<Only Love> 이후 조수미는 한국 가곡에 대한 꾸준한 애정과 새로운 해석을 선보이고 있어요. 단순히 클래식과 팝 사이를 오가는 데 넘나드는 것을 넘어, 우리의 노래를 세계 무대에 올리고 그 아름다움을 확장해온 것이죠! 특히 2022년 12월에 발매된 앨범 <사랑할 때 (In Love)>는 한국 가곡의 100주년을 축하하며, 사랑하는 시간을 우리의 언어와 정서를 담아 담담하고 세련되게 표현한 앨범인데요. 시적인 아름다움에 현대 팝의 감성을 더한 이 음반은 한국 가곡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사실 조수미의 한국 가곡 사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예요. 1995년 앨범 <아리아리랑>에서 처음으로 한국 가곡을 수록하고, 2002년에는 그녀의 첫 번째 순수 한국 가곡집인 <향수>를 발매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녀가 37년 넘는 세월 동안 세계 무대에서 한국 노래를 빠뜨리지 않고 불러왔다는 사실인데요! 세계 정상의 오페라 무대에 서는 성악가가 한국 가곡을 노래하는 일은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서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조수미가 그려나가는 한국 가곡의 세계는 이제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오페라와 클래식이 만나 새롭게 태어난,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진정한 의미의 '크로스오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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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025년 6월 10일, 세컨즈 메일 레터 구독자분들께 먼저 전달되었던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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