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그래서 니 생각이 났어
어렴풋이 새벽에 잠시 잠이 깼는데 밖에서 비가 엄청나게 왔다.
잠결이지만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있어서 오늘은 브런치에 꼭 글을 남겨야지 했다.
2020년 여름 정말 비가 많이 왔다. (고 기억이 된다)
다른 많은 여름을 살아왔지만 잊을 수 없는 여름이어서 그런지 어떤 여름보다 늘 젖었던 발이 떠오른다.
간년네 집앞에 잠복하며, 미행하며 억수로 비가 많이 왔었다.
며칠 뒤면 5년 전 단둘이 밤 늦게까지 한집에 쳐 있던 간년 집에 갔던날이다
그 날도 비가 무척이나 많이 왔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사람은 내가 20살이 채 되기전부터 알던 인연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각각 다른 나라에 있느라 소원했던 사이.
묘한 인연은 그 긴시간 거의 15년이란 시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게 했으나.
2019년 11월 (개새 가출 6개월 전) 다시금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언니는 나랑 고등학교 1년, 대학교 1년을 같이 다녔었다.
나중에 언니와 형부 (언니남편)를 흥신소라고 고소한 놈 때문에 경찰로, 검찰로 조사 받으러 다닐때
2019년 11월 언니, 나, 그리고 다른 친구 한명이 종로에서 만나 밥먹고 술마시고 찍고 날짜가 남게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게시물을 제출하고 이미 놈의 가출 이전, 훨씬 이전부터 알던사이라고 했다.
물론 경찰서 조사를 갔더니, 이미 우리 셋의 출입국 기록지를 다 떼서 보여주셨다. 같은 시기 해외에 있었던것을 한번 더 확인했다.
무고죄로 쳐 넣었어야하는데 그건 또 안된다고 했다. 검찰처분서에 무고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써있었다.
왜냐면 이혼 소송과 상간소송 내내 놈의 서면과 년의 답변서에 수차례 내 인스타그램 캡쳐가 나돌았는데, 언니와 내 사진이 번듯하게 인스타그램에 올라있었기 때문인데 참.. 아쉽다.
년은 우리 셋을 주거침입으로 놈은 우리 셋을 비밀침해, 불법도청감청으로 검찰 직고소를 했고
(2020년 당시는 이 건들도 검찰 직고소가 가능했다.)
놈의 말도안되는 흥신소 드립과 내가 국가기관에서 일한다는 왈왈은 검사님의 "허무맹랑한 주장임에 틀림없다" 로 최종 불기소 되었다.
년의 집은 개나 소나 바퀴벌레나 다 드나드는 문이 활짝 열린 복도식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런데도 ㅇㅇ아파트 비석을 넘으면 주거침입이랬다. 어차피 특수폭행으로 처벌나올 줄 알았으면 걍 줘 패버리는건데...
경찰은 우리생활과 훨씬 더가까웠다. 아! 그 남편분 가출.. 아아... 둘이 그 오피스와이프.. 아. 하니 아! 였다.
둘이.. 아? 아... 때리고 그런건 없고, 집안 안들어가셨고, 내려가 기다리래서 바로 내려가셨고 (녹음)
경찰조사는 무혐의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셋은 멀리 모란시장인근까지 년의 관할구역이 거기라 거기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빨리 결과 알려준다던 검사는 두달이 다되어서야 기소유예를 때렸다.
언니와 형부는 한국사람이지만 외국국적이라 그 뒤로 국내 체류를 위해 비자 연장때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각서를 써야했다.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ㅅ-
많은일을 함께했고, 그 여름 비가 많이 왔고, 힘들었다.
에어콘을 날마다 틀었지만 추운지도 몰랐다. 밥을 밥먹듯 굶었지만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언젠가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625 전쟁을 물어보며 그럴땐 사람들이 어떻게 사냐했다.
배고픈건 어떻게 하냐, 무서운건 어떻게 하냐.
"다 살아진다" 였다..
인생 최저점에서 다시 만나 나의 힘든 시절을 함께 겪어주었다.
지나고 나니 다 살아졌다. 살아냈다.
결과는 매우 썼다. 이혼 판사들은 저것이 유책이 아니라고 했다.
가출 전에도 년네 집에서 자고온 사실도 본체 만체 였다.
년과의 문자가 걸리니 빤스런 가출하고, 저렇게 년네 집에서 잡힌 뒤 해명은 커녕 당당히 이혼소를 넣었음에도 이 가정의 붕괴는 둘 모두의 책임이 50:50 이라했다.
아주 오픈마인드라 외국에 살다온 나조차 치를 떨었네 오픈이다 못해 아주 기냥 와이드 와이드 오픈이다.
(상간소는 넣었었다. 1심 기간 중에 가정회복의 의지를 위해 취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하하고 용서하겠다고. 그리고 1심 가정법원은 저새끼가 유책이며, 나의 가정회복 의지는 상간소를 취하할 정도라 판시했다.)
아픈 기억이지만 또 그 안에서 늘 눈물 만있었던건 아니었다.
언니는 늘 그랬다.
이 기간이 이 시간이 너한테 나중에 힘들기만 했던 때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긍정적으로 새로운 경험이다 낙천적으로 이또한 재미있다로 기억되면 좋겠다 했다.
처음 법원에 갔던 날도 언니와 함께였다. 그날은 너무 추운 겨울이라 비는 안왔다.
상간소송도 또 년의 관할구역에서 이루어졌던터라 멀리까지 가느라 아슬아슬했다.
언니가 운전대를 잡고 너 내려 먼저 들어가. 도착했는데 주차자리가 없었다.
바들바들 떨며 짐승같은 년을 대기실서 마주하고 단 1분 만에 상간소송 첫 기일은 끝났다.
나와 변호사와 년이 다 주차장 쪽 문으로 나올때까지도 언니는 차를 세우지 못해 빙빙 돌고 있었다.
멀리서 나를 보고 차를 몰고 와서 창문을 열고 "야 이 개같은년 나왔디? 이 썅년 어딨니!!!!!" 라며 가열차게 온 사람들이 다 돌아보도록 소리를 질렀다. ㅋㅋㅋㅋㅋㅋ "어 여깄네."
예쁘게 꾸며준다고 머리며 손끝 발끝 다 언니가 쏜다며 데리고 다녔던 날도 비가 왔다.
미행하러 여기까지 왔으니 근처 맛집에서 맛있는거 먹고가자고 했던 날도 비가 왔다.
유명한 카페가 있으니 여기서 기분 풀고가자며 달달한 것들 먹고 앉았던 날도 비가 왔다.
2020년 여름 장마 때 이전의 비오는 날 기억은 거의 없다.
당연히 수없이 많은 비오는 날이 있었겠지만 무슨 우산을 썼는지 그런 날 뭘 했는지 뾰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차에 시동을 걸고, 와이퍼 소리를 들으며, 에어콘을 춥게 틀고 운전하고 있노라면 여지없이 생각난다. 조용히 집에 혼자 있는 시간 밖에서 빗소리가 들릴 때도 생각난다.
비가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너무 고마웠던 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