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송을 혼자 하는 이유

때로는 혼자가 낫다.

by 세르게이홍

양육비 미지급을 해결하기 위한 할 수 있는 가장 첫번째 법적 조치는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이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지원 받을 수 없었지만 양육비이행 관리원을 통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알량한 월급도 월급이라고 나는 조건이 되지 않아 몇차례 전화해봤지만 일반 법무법인을 통하라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소송 이혼소송 2심에서 죽을 쑨 정도가 아니라 진수성찬 차려놓고 짐승 아가리에 털어 넣은 터라.

그냥 혼자 하기로 했다. 물론 돈도 없었다.


현재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니 최소 330 만원에 이르는 변호사비를 또 쓸 수 없었다.

몇년 간 나를 위해 무엇을 해본일도, 무엇을 사본일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안쓰는 만큼 매일 매일 자라는 두 아이들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는데 옷 좀 안 사면 어때, 신발 좀 못사면 어때... 소송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해보지 뭐...


혼자하니 좋은 점도 있었다. 법원이 매우 친절했다는 것이다.

양육비 직접지급명령, 직접지급명령 취소, 채무불이행자 등재, 채권 압류 및 전부명령, 담보제공명령, 재산명시, 지급명령 등 혼자 해나가고 있는 모든 소송에서 한번도 법원이 모오오옷되게 전화를 받은 적도 냉정하게 내친 적도 없었다.

소송의 의사결정이나 나아갈 방향은 당연히 알려주지 못하지만 비법조인인 내가 모르는 소송의 절차에 있어서는 많은 사건 담당부서의 실무자들이 너무나 친절했다.


심지어 2심 이혼소송의 판결문에 중대한 오류가 있어 양육비 4개월치 1200만원을 날릴뻔 한 것을 알아봐 준것도 위 사건 담당 판사님 중 한 분이셨다. 실무관을 통해 소식을 듣고 보정명령을 받고 "저 어떻게 해요 이걸 한달안에 어떻게 내죠" 할때도 판사님이 충분히 경정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고 했던 것도 나 혼자 할때 만난 분들이었다.


이혼소송 2심 중 내 변호사는 단 한번의 소장을 쓰지 않았다. 매번 나와 내 친구들이 함께 써서 보내주면 법무법인 헤더만 추가하고 마지막에 변호사 아무개 라고 쓴뒤 제출했다. 물론 종종 아주 종종 헤더가 붙으니 문단 이동 같은 건 당연히 해주었다.


한번은 마지막 장에 변호사 아무개 라는 말을 잊고 전했더니 그 부분 까지 보지도 않고 바로 제출했더라... 그게 빠졌다고 하니 되려 나에게 ㅋㅋ 왜 안썼냐고 하더니 정정 서면을 제출했다. (험한말..) 같이 제주도 출장까지 가서 밤새고 함께 서면 썼던 친구가 그날도 같이 출장 중이었는데 "야, 저거 너 무료변론해주냐?? 우리가 어제 쓴거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갖다 냈단거 아니야... "


내가 판사라도 정말 좋게 볼 것 같지 않았다. 유명한 변호사 (이분도 상당한 일로 세상에 이슈가 있던 분이다 나무위키까지 있는 분이다) 였으니 네임드 판사와 네임드 변호사는 서로를 알아봤겠지? 그리고 서로 되게 싫어했겠지?


어떤 일을 그르치려면 최~소한 3가지 요소가 fucked up 나야 한다는데 1심은 그래도 판사들이 가정의 가치를 아시는 분들이었고, 개새가 개새했네를 아는 이런 일만 보는 가정법원이어서 그랬나. 변호사를 죽쒔어도 판사님들이 좋았어서 완승 할 수 있었다.


2심은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도 검사를 극혐하는 판사가 부장판사로 있었다. 내 변호사는 부장검사, 부부장검사 출신이었다. 사실 재판부 기피신청을 해볼까. 언론에서 기자가 "판사인가 변호사인가" 를 논했던 적도 있었고 부하직원이 양심고백을 하고 보직변경을 신청했다는 기사도 있었기에 이왕이면 정의롭고 흠결없는 재판관의 판결을 받고싶었다.

재판부 기피신청은 대단한 승부기질이 있어야 내볼 수 있는 거다. 기각시 정말 망하는걱니까 ^^ "니가 날... 피했어? 두고보자" 를 감안해야 쓸 수 있는 수다. 그리고 인용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다면 변호사를 바꿨어야 했다. 누가 봐도 검찰극혐의 전적이 있는 판사가 부장판사로 있다면, 내가 변호사를 바꿨어야했다.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일이지만 그냥 혼자 했어야 했다.


3심을 갈지 말지를 판단하기 위해 많은 변호사들을 만났다. 사시:로스쿨, 가정법원출신, 대법원연구원출신, 네임드, 법률심인 3심만 하는 변호사. 모든 자료를 검토 받은 뒤 가장 기억에 남는 표현은 이거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가지고 오는 재료들을 잘 정돈하고 요리해서 판사가 앉은 테이블에 맛있는 요리를 내는 사람이다. 이정도 증거와 이정도 정리된 자료면 세르게이님은 유기농 최상품의 재료들을 구해온거다. 그런데 이건 그냥 대충 흙털고, 대충 썰어서 판사야 너가 알아서 먹어라 하고 낸 것 밖에 안된다. 이건 서며이 아니라 보고서다, 우리 1년차 로스쿨 출신 막내 변호사도 이렇게는 안쓴다. - 당연하쥬 회사생활만 해본 저와 제 친구들이 쓴걸요....

이정도 증거면 회사로 찾아가서 년놈의 사이를 법적문제 없이 제보하고 (채용관련 비리도 있었다) 애초에 형사소송을 취하하도록 유도했어야한다. 형사고소가 들어왔다면 상간소로 질러서 딜을 했어야한다...

이 모든것을 그냥 2심에서 포기하란것으로 마치기엔 앞으로 사실 수 있겠냐. 내가 아니어도 좋다. 이건 명백히 판결이 잘 못 된거다. 살면서 잠이 오시겠냐. 가야한다 3심..

가사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비율이 얼마인지 아냐. 특히 그중 이혼사건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2심에서 끝장을 보고 목숨을 걸고 싸웠어야하는데 오히려 1심보다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 포기해라.. 다 잊고 살아가야 애들 키우지 않겠나. 판결들이 다 제대로 되는게 아니예요. 어느정도의 운도 있다. 세르게이님이 운이 없었나보다.


ㅠ.ㅠ 네... 혼자 했어야한다요..


온정주의저이며 굉장한 자신만의 기조로 판결 하기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그냥 그길로 동정표에 호소했어야 했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 아이들을 온전한 가정에서 키우고 싶다고 우는 것 따위는 "어려서부터 가난해서 부모님은 저의 성공만을 바라셨고, 동생의 희생으로 저 하나 서울로 대학을 보내고, 사업실패(응 아니고 사기)로 가족들에게 못해줘서.. 근데 저 마누라년이, 며느리년이, 새언니년이 돈을 나눠 쓰려고 안합니다" 에 패했다. 온정주의자라는 말은 엄청나게 맞았던것 같다.


애들 아빠의 가출로 생계가 곤란하다. 집 하나 영끌 대출한거 뿐이다. 이마저도 친정이 보태줘서 샀다며 제출한 이체내역 따위는 가볍게 무시당했다. 재산 분할 반반, 친정에 돈 있나보네 당장 아파트 팔아서 반띵해.


년과의 문자로 싸우다, 화해하고, 갑자기 가출하고, 결국 그 년네 집에서 단둘이 자빠져 술마시는 것 잡았던 증거도 응 상간아냐~로 무시당했다. 차라리 철저히 돈도 없고 뭣도 없고 가정을 지키고 싶은 필부의 모습으로 늘 허름하고 남루한 모습으로 법원에 변호사도 없이 혼자 다녔다면 그 온정이 나에게 오지 않았을까?



변호사가 일을 안하니 내가 직접 재판부로 전화하기도 일쑤였다. 다음은 뭘 하게 되나요. 제출은 잘 됬나요 따위의 질문에 한번도 속시원한 답을 받은 일이 없으니 말이다. "변호인 있으시잖아요. 변호인과 상의하세요." 가 들을 수 있는 답변의 전부였는데 혼자 하면서는 달랐다.


이름 모를 실무관은 집행문 받는데 정말 큰 도움을 주시기도 했다. 응당 받을 수 있는 거라 받으러 갔는데도 안주는 민원실에서 울며 불며 (집행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동동거리며 전화한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셨다. 변호사가 있었으면 집행문은 쉽게 받을 수 있었겠지? 는 오산이다. 나중에 이래저래 판결문을 내다보니 나한테 준 판결문에는 뒷면에 희미하게 열.람.용 이라는 워터마크가 있었다. 징그럽다. 징그러워..


이혼소송 변호사비는 1심 770만원 , 2심 1000만원, 3심 2200만원 이었다.

상간소송 변호사비는 550만원 이었다. 중간 취하는 소송비용 계산은 하지 않는다.

형사고소 들어온거 방어는 1000만원 이었다.

다 합치면 5500만원 정도가 들었다.


그리고 1심 소송비용은 놈이 부담하라 판결났지만 2심은 각자 부담으로 판결해서 3심에선 2심이 뒤집어지지 않았으니

최종소송이 기준이라 소송비용 1180만원도 내가 냈다.


재산분할 말고도 거의 7000만원 돈이 들어갔다. 미친 쓰고도 어이가 없네...

그러고도 결과는 이러하다. 재산분할 3.5억 그리고 양육비는 못 받고 있고. 웃어야지 내가 ...


더는 소송으로 돈을 더 쓸 수도 없었을 만큼 돈도 없었지만 그냥 차라리 내가 하는게 낫다 싶었다.

그리고 그때 그때 궁금한건 10만원, 15만원 정도 쓰며 변호사 상담을 받아보고 진행하고,,

나머지는 유투브와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가본 선배들의 조언과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나아가고 있다.


매우 지치고, 매우 챙길게 많고, 매우 궁금한게 많고, 매우 답답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돈을 날려버린 뒤라 느리지만 천천히 힘들지만 해나가고 있다.


이래봐야 양육비 안주는 놈에게 받아낼 수도 없을 것 같고 결국 그 끝은 형사처벌을 노리는 수밖에 없는데

빨라야 2028년 본다. 그때까지 지치지 말기를... 그때까지 정책과 제도가 더 많이 정비 되어 내 뒤에 오는 양육비 못 받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평탄한 길을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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