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벌써 5년전 일이잖아?

오늘도 매년처럼 비가온다.

by 세르게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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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5일은 공식적인 장마기간이었다.

날이 흐렸고 더웠고 푹했고. 그날도 나와 언니,형부는 년의 집 앞에서 년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5월 19일 밤 ~ 20일 새벽 사이 빤스런 하고 년의 주소를 알게되어 찾아가본 뒤로 거의 매일 년을 집에 태워다 주었다.


주소를 어떻게 알았냐구?

이 부분 때문에 놈은 사람을 사서 미행했다, 자기 폰을 해킹해서 유심을 심고 쌍둥이폰을 만들었다

별의 별 주장을 다했지만 너무나 너무나 간단했다.

오히려 가출 하자마자 알았다면 가서 바로 잡았을까...?

너무 사랑했는지 서재 컴퓨터에 [간년이름] 으로 폴더가 있더라. 거기에 고이 주민등록등본이 있어서 설마..

부모랑 사는 집이겠지, 어디선가 자취하겠지 하고 찾아간 첫날 놈의 자동차에 덕지덕지 차빼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딱지가 켜켜이 붙어있어 "어? 여기네" 하고 알게 되었다.

(년이 놈의 TF팀에서 알바를 하며 재회하고 "적어도 놈은" 눈이 쳐맞은거라 통장사본, 주민등록등본, 년관련 등등의 자료들이 고이고이 저장되어있었다 븅...)


처음 며칠은 이유를 몰랐다. 서로 화해하고 결혼하고 처음으로 둘이 늦게까지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며칠간 신경이 곤두서 있다가 다 끝났다. 믿기로 하고 넘어간다. 하고 나서 나는 오히려 긴장이 풀렸었다.

내가 잠든 사이 돌아다니며 짐을 싸고, 밤에 잠깐 깬 아이가 거실에 나가 "아빠 뭐해" 할 동안 값나가는 것들을 다 꾸려갔다. 내 다이아반지 돌려줘... 애들 금반지들 돌려줘...


장기 출장을 갈때 들고가는 대형 캐리어를 바득바득 끌고가는 놈을 당시 5살이던 아들이 배웅했다.

불꺼진 복도에 아이를 남겨두고 아이 손에 지 명함과 증명사진 하나를 쥐어주고 도망쳤다.

이 일로 아이는 오랫동안 심리상담과 치료를 다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생각하며 "엄마, 내가 그때 아빠를 잡을 걸 그랬어" 라는 자책은 오래 이어졌다.

아직도 상담은 종결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한회 8-10만원이 드는 심리상담비를 감당하기가 두려웠다.

10살이 되고 약속대로 모든것을 오픈하고 나서는 우리 둘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소한 전세로 이사할 돈은 남아야하는데 판사가 정해준 재산분할금을 내느라 또 빚을 냈고,

집을 팔이 주담대, 빚을 갚고나면 동네를 완전히 바꾸든가 또 전세자금대출을 해야한다.

동네를 완전히 바꾸는 건 생각 안해 본건 아니지만.. 옵션에서 지우기로 했다.

아이들은 이미 붕괴된 가정으로 너무나 큰 변화를 겪었는데 주변 환경까지 모두 다 바꿔버리자니 내가 아껴쓰고 내가 너무 죄송하지만 친정의 원조를 받는 것이 길게 봐서 아이들 중학교까지는 맞는 것 같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


며칠 전부터 비가 시작되고, 장마와 함께 시작된 공부만 하던 미친놈의 40중반 사춘기는 나와 5살,2살 아이들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무책임도 급이 있다면 이정도면 TOP

벌써 집을 나간지는 5년, 이혼판결이 나온지는 2년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뭐 어차피 나갈 놈, 더 오래 살았으면 더 많은 재산분할을 줬을 것 같다.


판사는 놈이 가출 하기 불과 2년전부터 고액 연봉을 받던 것을 결혼 후 평생 일하던 나와 비등한 가계 기여도가 있다 했다. 더 살았으면 더 뜯기고 복리로 돈 쳐주고 내 자식들 결혼할 때도 해줄 수 있을지 모르는 돈을 이미 주었지만. 이보다 더 뜯길 뻔 했다.


이제는 바라건데 양육비나 좀 제대로 보냈으면 좋겠다.

재판부 대단한 인심인냥 놈의 연봉을 고려해서 월 300만원 (현존 양육비테이블상 최고라한다) 을 판결했지만

알다싶이 줘야 300만원인거다. 안주면 아무것도 아닌거다.

차라리 재산분할을 좀 덜 주고, 월 양육비를 좀 덜 받게 하지. 무슨 놈 로또 당첨, 잭팟, 계를 태워준 셈 밖에 안된다. 그리 사람 보는 눈들이 없었을까. 3년의 소송 기간 동안 지 새끼 제대로 건사 안한 놈이 퍽이나 그 큰돈을 가져가고 큰 돈을 매달 보낼거라 생각 했을까.


내일은 오랫만에 정신과에 간다. 적어도 박수무당 75프로 동기화가 끝난 매서운 교수님을 보러간다.

가차없고 필터없지만 언제나 다녀오면 마음이 편하다. 언제나 현실적인 조언과 해결책을 주신다.

5년이나 지났지만 괜찮은 날도, 안괜찮은 날도 있다. 특별한 트리거가 있으면 완전히 모래성처럼 폭싹 무너지는 정신상태가 좋지 않다. 평소 괜찮을땐, 너무나 괜찮다.


6월 25일은 2020년 이후 거의 매년 비가 왔던것 같다.

폭우 속에서 년의 집에 둘이 올라가서 밤 11시가 넘도록 내려오지 않을때 차에서 부들부들 거리며 떨던 날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상간 담당했던 변호사님이 그랬다. 영원힌 흉으로 남는다고. 상처는 아물겠지만 그 흉은 영원할거라고.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갈 일이라 하셨다. 불에 덴 상처고, 여간해서는 지울 수 없는 화상흉터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손에 데인 흉이 있다. 아주 어려서 제삿날 고깃국 끓이던 큰 들통에 손을 담궜다고 한다.

20대 30대 좋은 시절에는 몰랐다. 뭐 좀 다른데랑 살짝 달라보이는 것같은?

그런데 나이가 들고 40살 언저리쯤 되고 나니 뜨거운 날은 그 부분이 더 뜨겁고 건조한 날은 그 부분이 더 바삭바삭 마르는 것 같다.


이 흉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흐려지기 바란다


법은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고 오히려 더 줘패서 마지막 남은 눈알까지 빼가려했다.

삶이 인생이 판결해 주기 기대한다. 살아온 어제까지의 삶이 오늘의 년과 놈이 되기 바란다.





+ 그렇다고 둘이 지금도 만나냐구?

아니. 상간소 하며 갈기갈기 찢어지고, 년은 년대로 회사에서 놈 얘길 하고 다니고

놈은 놈대로 나보러 상간소 왜 취하했냐고 그년 때문에 회사 못다니겠다고 광광거렸다.

년은 아주 잘 산다. 놈은 병신같이 나온 회사를 년은 빤빤히 잘 다니고있다.

사내 대출도 받고 주담대도 받아서 서울에 작은 아파트도 마련했다.

놈보다 한 10~15살은 어린 것 같은 남친하고 온 세상 휴가 마다 돌아다니며 당당히 카톡에 사진이 올라온다.


조용히 기다린다. 니 결혼소식만을... ㅋ 결혼 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혼인신고라도 먼저 해주면 더 땡큐지.

뒤늦게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아직 상간소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남아있다.

(이 역시 재판부는 또 어떻게 판단 할 지 모르지만..) 얼른 결혼하렴, 너도 이제 30 중반이란다.

결혼 해보면 알거고, 자식을 낳아보면 니 삶에서 하루 쯤은 생각 날거다.


내 새끼들 얼굴까지 일고 놈에게 카톡으로 이런저런 사진까지 다 받아본 년이..

취업해서 정규직자리 꿰차자고 두 아이들 미래를 찢어놨는데 그 죄가 너에게 꼭 돌아가기 기다린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짧다.

포기하지 않으면 한 번은 기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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