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원래 책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적 호기심은 제법 있어서 정보가 필요하다면 유튜브를 뒤적거리거나, 나무위키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곤 했다. 그러나 독서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간과한 적은 없었다. 항상 마음속으로 '책 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내지 않았을 뿐. 그 와중에도 1년에 2~3권씩은 틈틈이 읽긴 했으니, 아예 독서와 담을 쌓고 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때마침 나는 오랜 취업 실패로 인한 무기력증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뭔가 하는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러던 나에게 이 남아도는 시간을 갈아 넣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한국 작가들의 이런저런 수상 소식이 연이어 터져 나왔고,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소위 '패션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패션독서도 독서 아니던가? 그 이유야 어찌 됐든 독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거니까. 이 현상들이 '책 읽어야지'라고 은연중에나마 항상 생각해 오던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 것이다.
과거에 내가 드문드문 읽었던 책 중에는 순전히 내가 읽고 싶어서 읽었던 책들도 있고 과제 때문에 (억지로) 읽었던 책들도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책들이 어떤 책이었냐,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나고 묻는다면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나마 대학시절 과제로 읽었던 책들은 매주마다 서평을 쓰거나 발표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기억이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읽고 싶어서 읽었던 책들에게서 느낀 감동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감동이니 아이디어니 하는 것들이 꼭 손 안의 모래알 같다고 생각했다. 한 움큼 가득 쥐어도 결국 손틈 사이로 흘러내리거나, 바람에 날려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책이라는 기록을 통해 전승되어 온 것처럼,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감동이나 생각들도 기록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 혼자라도 먼 훗날 이 기록들을 들여다보며 '그래, 맞아. 이땐 이런 감정을 느꼈지, 이런 생각을 했지' 떠올릴 수 있다면 이 시도는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손 안의 모래알들이 흩날리지 않게 보관하기 위한 모래상자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