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테권 구합니다.’ 3개월 주기로 맘카페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시글이다. 주말 아침부터 학원가 앞에 긴 승용차의 행렬이 늘어서면 바로 그 날이 학원의 레벨테스트 날이다. 정권에 따라 폐지와 부활이 반복되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명 일제고사)가 초등학교에서 폐지된 후 과도한 경쟁과 성적 줄 세우기가 사라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으나, 자녀의 구체적인 학업 수준을 사교육 시장에서 검증받으려고 나서는 학부모들로 인한 풍선효과도 만만치 않다.
대형학원의 시스템과 커리큘럼은 공교육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우위에 설 정도로 촘촘하다. 레벨테스트를 통한 수준별 반 편성 및 주기적인 테스트를 통해 승급할지 강등할지가 결정된다. 학원별 레벨테스트 족보도 존재하고 특정 학원 레벨테스트를 합격하기 위한 과외도 성행한다.
학원에서는 성행하는 서열식 평가가 정작 교육의 핵심인 학교에는 없다. 초등학교는 평가권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경기도교육청의 초대 민선교육감인 김상곤의 공약으로 등장한 혁신학교는 ‘행복학교’ ‘빛고을학교’ 등의 이름으로 전국 13개의 교육청에 뻗어나갔다. 혁신학교의 하나의 특징이 기존의 줄 세우기 식 평가가 아닌 학생 한명 한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과정중심평가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성적표에서 숫자 점수는 사라지고, ‘매우잘함’, ‘잘함’, ‘보통’, ‘노력요함’의 척도와 아이의 특장점을 서술해놓은 전인적인 성적표로 변모했다. 평가를 거부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아이들이 ‘매우잘함’ 또는 ‘잘함’을 성취하다보니 학부모 사이에서는 내 자녀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하다는 말이 나온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우잘함’만 받던 아이가 중, 고등학교에서 지필평가를 치르는 순간 수준이 여실히 드러나 충격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의 사례도 자주 보인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학부모들은 정확하게 내 자녀의 수준을 진단받기 위해 줄을 서서 레벨테스트권을 신청하고, 커뮤니티에서까지 찾게 된 것이다. 특정 유명학원에 입학하면 그 아이는 우수한 학교의 명찰을 단 것과 마찬가지로 주변 부모의 부러움을 받는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이의 학습은 학교와 별개로 학원에 맞춰 진행된다. 학교에서의 성적 줄세우기는 기함하던 학부모들이 학원 내 레벨에 대해서는 순종적이다. 아이들은 기를 쓰고 밤을 세워 학원 숙제를 하고 낮에 학교에서는 꾸벅꾸벅 존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숙제를 내 주면 민원을 제기한다. 내 아이가 학원숙제만으로도 바쁜데 시시한 학교 숙제에 신경을 쓰는 에너지가 아깝기 때문이다.
문제는 초등학교에서 평가의 역할이 옅어지니 부모에게 있어서 학교 수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영역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학원 수업이 그 자리를 훌륭하게 대체하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일은 없어도 학원 선생님에게는 내 자녀 성적을 올려줘서 감사함이 넘쳐난다. 교권이 약해진 것이 평가권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평가권을 가진 중 고등학교는 내신이라는 방패로 교사들이 기를 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학습과 평가를 위해 학원으로 모여드는 현상은 분명히 기형적이다. 그 기회도 소수의 정보를 갖춘 학부모들이 향유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교육격차는 학교에서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부분을 학부모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할 때 조금씩 벌어진다. 이렇게 누적된 교육격차가 결국 계층의 사다리마저 없애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 과도한 경쟁과 성적 줄 세우기는 지양되어야 마땅하지만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이 主가 되어버린 작금의 실태에 정책 입안론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