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靈芝, 삼수三秀, 지芝
曉窓瀟灑淡生風 새벽 창으로 산뜻한 맑은 바람 불어와
消却塵氛萬念空 세속 기운 쓸어버리니 잡념이 사라지네
三秀靈芝今歲暮 영지靈芝는 세 번 피는데 올해도 저무는구나!
篔簹詩感晦庵公 운당시篔簹詩 감상하며 회암晦庵 선생 우러르네
구한말 서화수장가였던 자산紫山 금우열琴佑烈(1823~1904)의 시, ‘건지산의 새벽 바람 (芝山曉風)’이다. 금우열은 내 고향 출신의 시골 선비인데, 고향의 산천을 스무 수의 시로 읊은 ‘자산이십영紫山二十詠’을 남겼다. 이 시도 그 중 하나로, 퇴계 선생의 묘소가 있는 건지산에 대해 읊은 시이다. 지금은 이 시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지만, 처음 이 시를 만났을 때는 도무지 뜻이 통하지 않았다. 영지靈芝를 왜 삼수三秀라고 했으며 운당篔簹은 무엇이란 말인가?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십여 년 세월만 흘렀는데, 우연히 정조正祖가 회암晦庵 주희朱熹 선생의 글을 정선하여 편찬한 <아송雅頌> 한 권을 구해서 살펴보다가 그 실마리를 풀게 되었다. 바로 운당시篔簹詩를 발견했던 것이다. ‘원기중袁機仲이 교정한 참동계參同契 뒤에 쓴다’라는 시이다.
鼎鼎百年能幾時 빠른 세월 백 년, 그 얼마나 되는가?
靈芝三秀欲何爲 영지는 세 번 피었는데 무엇을 하려는가?
金丹歲晩無消息 세월이 저물도록 금단金丹 소식 없으니
重歎篔簹壁上詩 운당포 벽 위의 시를 읊으며 거듭 탄식하노라.
이 시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자면, 주희가 서문 격으로 쓴 다음 글을 읽어보아야 한다. “내가 어느 해 순창順昌으로 가는 길에 운당포篔簹舖(사현沙縣 운당령篔簹嶺 소재)에서 쉬다가 벽 위에서, ‘빛나는 영지는, 일 년에 세 번 피네. 나 홀로 무엇 때문에, 뜻이 있으나 못 이루나! (煌煌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라고 쓰여있는 시를 보고, 세 번 반복해서 읊고서 이를 슬퍼했다. 시를 지은 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내 심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경원慶元 정사丁巳(1197)년 8월 7일에 나는 다시 그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옛날에 보았던 시는 볼 수 없었다. 손 꼽아 헤아려보니 벌써 40년 전인데, 아직도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했다. 도중에 우연히 이 책 참동계參同契를 보다가 옛 일이 떠올라 절구絶句 한 편을 쓴다.”*
주자학만을 정통으로 인정하고 골몰했던 조선시대에는 이 시로 인해, 영지삼수靈芝三秀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한 해가 저물어감을 한탄할 때 인용하는 구절이 되었다. 나는 이 시를 읽고 나서 비로소 금우열이 지은 ‘건지산의 새벽 바람’의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몹시 기뻤던 기억이 난다. 퇴계 이황 선생이 집대성한 주자학을 공부했던 영남의 시골 선비 금우열은 퇴계 선생이 묻혀있는, 영지靈芝가 자라고 있을 건지산搴芝山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영지(Ganoderma lucidum [Leyss. ex Fr] Karst)는 약효가 뛰어나서 불로초라고도 하는데, 고대로부터 약재로 쓰였다. 삼수三秀는 영지靈芝의 별명이며, 영지가 1년에 세 번 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불로초 영지가 지芝로 나온다.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청青, 적赤, 황黃, 백白, 흑黑, 자紫의 여섯 가지 지芝가 있다. … 지芝는 원래 지之로 썼는데 땅 위로 풀이 나는 모양을 본뜬(象形) 전서체篆書體 글자이다. 후에 지之 자字를 어조사로 가차假借하여 쓰게 되자 초草를 더해 지之와 구별했다. <이아爾雅>에 ‘수苬는 지芝이다’라고 했으며, 주注에, ‘한 해에 세 번 피는 서초瑞草이다’라고 했다. 혹자는 굳은 곳에서 자라는 것을 균菌이라 하고, 무른 곳에서 자라는 것을 지芝라고 말했다. 옛적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지芝를 채취했고 여러 신선들이 먹었다. 그러므로 지芝 또한 버섯 종류(菌屬)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 시진時珍은 항상 의심하길, ‘지芝는 곧 나무가 썩은 나머지 기운으로 생기는 것으로, 사람에게 혹이나 군더더기가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고금을 통틀어 모두 서초瑞草라고 한다. 또한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진실로 그릇된 말이다.’”***
<본초강목>의 지芝가 곧 영지이다. <중약대사전>에는 영지초靈芝草의 이명으로 삼수三秀와 지芝 등이 나오고, 자지紫芝(Genoderma japonicum [Fr.] Lloyd.)와 적지赤芝(Genoderma lucidum [Leyss. ex Fr] Karst)가 그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문헌으로 <훈몽자회>는 “芝, 지촛지, 속칭 영지초靈芝草”라고 했고, <물명고>에서는 “삼수三秀는 영지靈芝이다”라고 하여, 중국 문헌의 해석과 일치한다. 이제 굴원屈原(기원전353~기원전278)이 지은 초사楚辭의 구가九歌 산귀山鬼에서 삼수三秀가 나오는 구절을 읽어본다.
留靈脩兮憺忘歸 신께서 즐거워 돌아가지 않길 기다리니,
歲既晏兮孰華予 나이 들면 누가 나를 다시 아름답게 해주려나?
采三秀兮於山間 무산巫山에서 영지를 캐는데
石磊磊兮葛蔓蔓 돌은 어지러이 쌓여 있고, 칡넝쿨은 이리저리 엉켜 있네.
怨公子兮悵忘歸 저를 슬프게 하시고 돌아갈 것을 잊게 만드신 공자님을 원망합니다.
君思我兮不得閒 그대는 저를 흠모하나 올 시간이 없습니다.****
꽤 오래 전 여름에 나는 아내와 함께 청계산을 오르다가 참나무 숲에서 작은 영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후 오랫동안 못 보다가 몇 해 전 안동에서 굴참나무 썩은 둥치 주변에 돋아난 영지靈芝(Ganoderma lucidum [Leyss. ex Fr] Karst) 무리를 만났다. 이미 성숙한 후 썩어가는 영지, 벌레가 파먹어 곳곳에 구멍이 난 영지, 성숙한 영지, 그리고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영지가 섞여 있었다. 한 해에 세 번 핀다는 삼수三秀의 의미를 헤아려보면서 한동안 감상했다. 세 번 피지는 못하더라고 한 해에 한번이라도 무언가 뜻을 이루는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2020.8.1 끝>
*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予頃年經行順昌 憩篔簹鋪 見有題 煌煌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之語於壁間者 三復其詞而悲之 不知題者何人 適與予意會也 慶元丁巳八月七日 再過其處 舊題固不復見 而屈指歲月 忽忽餘四十年 此志眞不就矣 道間偶讀此書 并感前事 戲題絕句 - 아송雅頌,
**商山四皓: 중국 진시황 때에 난리를 피하여 섬서성陝西省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숨은 네 사람. 동원공, 기리계, 하황공,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이른다. 호皓란 본래 희다는 뜻으로, 이들이 모두 눈썹과 수염이 흰 노인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芝 … 青赤黃白黑紫六芝 … 芝本作之 篆文象草生地上之形 後人借之字爲語辭 遂加草以別之也 爾雅云 苬芝也 注云 一歲三華瑞草 或曰生於剛處曰菌 生於柔處曰芝 昔四皓采芝 群仙服食 則芝亦菌屬可食者 … 時珍嘗疑 芝乃腐朽餘氣所生 正如人生瘤贅 而古今皆以爲瑞草 又云服食可仙 誠爲迂謬 - 본초강목****초사楚辭 구가九歌 산귀山鬼 중에서, 권영호 번역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