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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지방의 아름다운 재목 남목楠木과 굴거리나무

남(楠 , 柟, 枏), 교양목交讓木

by 경인

몇 년 전, 김태영 선생이 찍은 눈 내린 겨울 제주도의 굴거리나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잎을 떨군 겨울 나무들이 제각기 눈꽃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눈이 쌓여 축 처진 잎을 달고 있는, 굴거리나무의 홀로 푸른 모습이 이채로웠다. <한국의나무>에 의하면 굴거리나무(Daphniphyllum macropodum Miq.)는 울릉도와 전북, 전남 및 제주도에서 자라는 상록 교목으로 높이 10m, 지름 30cm까지 자라지만 흔히 소교목상의 나무인데, “’봄철 새잎이 나온 직후 오래된 잎이 떨어져 자리를 양보하는 나무’라는 뜻으로 교양목(交讓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 번에 서정주의 시 소연가에 등장하는 석남石枏이 무슨 나무일까를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이 굴거리나무와 관련이 있는 남방의 나무 남(楠, 柟, 枏)에 대해 알아본다. 옥편에서 나무목(木) 변에 동서남북이 합쳐진 글자를 찾아보면, 북北은 없고, 동서남(棟栖楠)은 있다. 그 중 나무 이름으로는 남楠이 유일하다. 아무래도 따뜻한 남녘에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일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굴거리나무, 2015.7.26 동백섬


<군방보群芳譜>에 “남柟은 남쪽 지방에서 자라므로 남楠으로 쓰기도 한다. 검촉黔蜀의 여러 산에 매우 많다. 그 나무는 당개幢蓋처럼 무성하고, 가지와 잎이 청수淸秀한데 서로 피하는 듯 방해하지 않아서 교양목交讓木이라고도 한다.”* 교양목은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이나 <중국식물지>에 의하면 <한국의 나무>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굴거리나무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군방보>의 기록은 남柟이 굴거리나무일 가능성을 말하고 있지만, <본초강목>의 설명을 더 살펴보자.


“남목楠木은 남쪽 지방에서 난다. … 그 나무는 곧게 자라고 당개幢蓋의 모습처럼 무성해서 가지와 잎이 서로 막지 않는다. 잎은 예豫(釣樟, 털조장나무 류)나 장章(樟, 녹나무) 비슷한데, 소의 귀 정도 크기이고 끝이 뾰족하며, 계절이 바뀌어도 시들지 않고 새잎과 묵은 잎이 서로 바뀐다. 꽃은 적황색이다. 열매는 정향丁香과 비슷한데 푸른 색이고 먹을 수 없다. 줄기는 매우 곧고 큰데, 높이가 10여 장丈(30미터)이고 큰 것은 수십 아름이나 된다. 냄새가 매우 향기로워 동량棟梁과 기물器物을 만들기에 좋은 훌륭한 재목이다. 색이 붉은 것은 단단하고 흰 것은 무르다.” 이렇듯 <본초강목> 설명에 의하면, 남楠은 수십 아름에 30m까지 자라는 동량감의 재목이라는 데서, 과연 굴거리나무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녹나무 수피, 2018.11.11 서귀포


<중약대사전>이나 <중국식물지>를 참고해보면, 현대 중국 에서는, 남楠을 남목(楠木, Phoebe zhennan S. K. Lee & F. N. Wei) 혹은 전남(滇楠, Phoebe nanmu (Oliv.) Gamble)이라고 한다. 즉 남목과 교양목을 다른 나무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중국 고전에서 남楠은 전남(滇楠, Phoebe nanmu (Oliv.) Gamble)을 뜻하고, 일본에서는 녹나무(Cinnamomum camphora)를 가리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에 통용되는 <한한대자전> 등 옥편에서 남楠을 녹나무와 굴거리나무로 설명했기 때문에, 남(枏, 楠)을 흔히 ‘녹나무’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녹나무를 남楠으로 쓰는 일본 영향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중국 고전에서는 녹나무(樟)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훈몽자회>를 보면, “枏 매실염 卽梅子 又音 남 木名”으로 설명되어 있다. <전운옥편>에도, “枏남, 나무 이름. 매남자梅枏子. 살구와 비슷하지만 시다. 예장豫章과 비슷하고 좋은 재목이다. 남楠과 같은 글자이다.” <물명고>에서는 “남枏, 남楠의 옛 글자이다. 잎이 크고 나무가 곧게 위로 무성하게 자란다. 계절이 바뀌어도 시들지 않고 꽃은 적황색이다. 열매는 정향丁香과 비슷한데, 씨앗이 붉은 것은 재목이 단단하고, 씨앗이 흰 것은 재목이 무르다. 남쪽 지방에서 난다.”***라고 했다. 이 설명을 보면 중국 문헌을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전석요>와 <신옥편>은 “枏남, 나무 이름. 매남梅枏. 남楠과 같은 글자”라고 해서 전운옥편 설명을 잇고 있다. 그리고, 1935년 박문서관 발행 <한일선신옥편>도 “枏난, 매화나무(남), 매梅이다.”라고 해서 훈몽자회부터 이어온 우리 해설을 따르고 있다.


굴거리나무 열매, 2020.11.14 서귀포 - 열매 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어디를 보더라도, 녹나무로 해석한 곳은 없으므로 우리 고전에서 남(枏, 楠)을 녹나무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며, 일부 문헌에서 교양목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굴거리나무도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남목(楠木, Phoebe zhennan S. K. Lee & F. N. Wei), 혹은 전남(滇楠, Phoebe nanmu (Oliv.) Gamble)은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는 나무라서 아직 한글 국명이 없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고문진보>에 실려있는 두보(杜甫)의 시 한 편을 읽는다.


남목柟木이 비바람에 뽑힌 것을 한탄하다 (柟木爲風雨所拔歎)


倚江柟樹草堂前 초당 앞 강 가에 남목(楠木)이 서있는데

故老相傳二百年 마을 노인들이 이백 년 묵었다고 말하네.

誅茅卜居總爲此 띠를 베고 이곳에 거처한 것은 모두 이 나무 때문이었고

五月髣髴聞寒蟬 5월에도 찬 매미 소리 들릴 때처럼 시원하였네.

東南飄風動地至 사나운 동남풍이 땅을 진동하듯 불어오니

江翻石走流雲氣 강물은 출렁이고 돌 구르며 구름이 흩날리네

榦排雷雨猶力爭 줄기는 우레와 비 물리치며 힘껏 싸웠는데

根斷泉源豈天意 뿌리가 물살에 끊어졌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리요

滄波老樹性所愛 푸른 물결과 늙은 나무는 마음으로 사랑하였고

浦上童童一靑盖 물 가에 푸른 햇볕 가리개처럼 무성하게 서있었네.

野客頻留懼雪霜 나그네들 눈과 서리 피하여 자주 머물렀고

行人不過聽竽籟 행인들은 멈추어 서서 바람이 연주하는 피리 소리 들었네.

虎倒龍顚委榛棘 호랑이가 쓰러지고 용이 넘어진 것처럼 개암과 묏대추나무 덤불 속에 버려지니

淚痕血點垂胸臆 피눈물 자국이 가슴 속에 드리웠네.

我有新詩何處吟 내가 새로 시를 쓴들 어디에서 읊어야 하나

草堂自此無顔色 초당도 이로부터 볼품 없게 되었구나.


참고로, 정태현은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굴거리나무의 한자명으로 교양목交讓木과 만병초萬病草를 들고 있고, 대신 들메나무(Fraxinus mandshurica Rupr.)의 한자명으로 불柫과 함께 남楠을 들고 있지만 근거는 찾지 못했다.


좀굴거리 열매, 2020.11.14 서귀포 - 열매가 하늘을 향해 있다.


나는 굴거리나무를 부산 동백섬과 제주도에서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다. 지난 해 11월 제주도에서 다시 굴거리나무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운 좋게도 좀굴거리 나무도 비교하며 볼 수 있었다. 시절이 늦가을이라 모두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굴거리나무 열매는 송이채로 땅을 항해 풍성하게 드리워진 데 반해, 좀굴거리 열매는 힘차게 하늘을 향해 곧추 서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눈 내린 숲 속의 굴거리나무는 만나지 못했다. 어쨌든 한 겨울에 이채를 발하는 교양목, 굴거리나무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한 시인이 있을 듯도 한데, 아직 나는 감상하지 못했다.


<2019.6.29 처음 쓰고 2021년 보완>


*柟生南方 故又作楠 黔蜀諸山尤多 其樹童童若幢蓋 枝葉森秀不相碍若相避然 又名交讓木 - 群芳譜

**楠木生南方 … 其樹直上 童童若幢蓋之狀 枝葉不相礙 葉似豫章 而大如牛耳 一頭尖 經歲不凋 新陳相換 其花赤黃色 實似丁香 色青 不可食 幹甚端偉 高者十餘丈 巨者數十圍 氣甚芬芳 為梁棟器物皆佳 蓋良材也 色赤者堅 白者脆 - 본초강목

***枏 古楠字 葉大 樹直上童童 經歲不凋 花赤黃色 實似丁香 子赤者材堅 子白者材脆 出南方 - 물명고

+표지사진: 굴거리나무, 2018.11.10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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