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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모양 잎을 가진 사철 푸르른 비파나무

비파枇杷,『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by 경인

천자문에 ‘벽오동은 일찍 시들고, 비파는 늦도록 푸르네 (梧桐早凋, 枇杷晩翠)’라는 구절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선친으로부터 “비파비, 비파파, 늦을 만, 푸를 취”라고 읽으며 <천자문>의 이 구절을 배울 때, 나는 나무나 과일 비파보다는 악기 비파琵琶를 떠올렸던 듯하다. 왜냐하면 나무나 과일 이름으로 비파는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비파나무를 만난 것은 10여년 전 가을 영암의 어느 마을에서였다. 당시 여행 목적이 나무 감상은 아니었지만, 안내인이 큼지막한 푸른 잎에 꽃망울이 맺혀있는 나무를 보고 비파나무라고 알려줬을 때, 이게 바로 천자문의 그 비파나무구나! 라는 생각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그러다가 2018년 12월 초순, 식물애호가 모임에 참여하여 해남의 달마산을 답사하다가 미황사에서 꽃이 시들고 있는 비파나무 고목을 만났다. 이 때에는 일행들 앞에게 천자문의 “비파만취枇杷晩翠, 오동조조梧桐早凋” 구절을 읊조리기도 하면서, 한참 동안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나무를 감상했다.


비파나무 꽃, 2018.12.8 달마산 미황사


<본초강목>은 이 비파枇杷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 잎 모양이 비파琵琶를 닮아서 이름이 붙었다. … 나무 크기는 한 장丈(3미터) 남짓하고 가지가 무성하다. 긴 잎은 크기가 나귀(驢)의 귀 같고 뒷면에는 노란 털이 있으며, 짙은 그늘에 너울거리는 모양이 사랑스럽다. 사철 시들지 않고 한겨울에 흰 꽃이 핀다. 3, 4월이 되면 열매가 맺는데 소복이 모여 달린다. 탄환 크기로 자라는데, 익을 때의 색은 노란 살구 같다. 털이 조금 있고 가죽은 아주 얇다. 핵은 크기가 상수리(芧栗, 橡實의 이명) 같고 황갈색이다. 4월에 잎을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사용한다.”* 이 설명은 비파나무의 특징을 나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약대사전>, <중국식물지>, <일본식물도감> 및 <식물의 한자어원사전> 등 중국과 일본 문헌에서도 비파枇杷는 비파나무(Eriobotrya japonica [Thunb.] Lindl.)라고 일관되게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파나무 잎이 약재로 쓰였기 때문에, 비파枇杷에 대한 혼동은 없었던 듯하다. 장미과에 속하는 비파나무는 중국 중남부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현재 제주 및 남부지방에서 재배하고 있는데, 11월에서 1월 사이에 꽃이 피고, 지름 3~4cm의 열매가 이듬해 7~8월에 황색으로 익는다.


비파나무 수형, 2018.12.8 달마산 미황사


이 비파는 고려시대 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남경을 다녀올 때 지은 시 ‘양주에서 비파를 먹다 (楊州食枇杷)’에 등장한다. 이 시 결구에 “초나라 강가에서 새 비파를 맛보니, 씨앗을 품어서 동쪽 나라에 심고 싶어라”**라고 했는데, 정몽주가 정말로 비파 씨앗을 우리나라에 가져와서 심어봤는지 궁금하다. 설령 정몽주가 비파 씨앗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서는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하여간, 지금은 비파나무를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동의보감> 탕액편에서 비파엽枇杷葉에 ‘당唐’이라는 글자를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적어도 1600년대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비파는 조선시대에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 글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명나라가 1421년에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후부터는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비파는 구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임진왜란 후 일본을 다녀온 사신들, 즉 강홍중姜弘重(1577~), 조경趙絅(1586~1669), 홍우재洪禹載(1644~?), 남용익南龍翼(1628~1692), 신유한申維翰(1681~?), 조명채曹命采(1700~1763), 김기수金綺秀(1832~?) 등의 글에 비파가 진귀한 과일로 등장한다. 이 중 조경의 시 ‘비파편枇杷篇’을 조금 길지만 전체를 읽어본다.


비파-20220306-물향기수목원온실.jpg 비파나무 열매, 2022.3.6 오산 물향기수목원 온실


嘗讀蜀都賦 내가 일찍이 <촉도부>를 읽었는데

林檎與枇杷 능금과 비파가 있었네

林檎非異果 능금은 기이한 과일이 아니니

桃李無等差 복숭아나 자두와 다를 것이 없으나,

枇杷是何物 비파는 어떤 것인지 몰라서

坐井良可嗟 우물 안 개구리 처지를 자못 탄식했다네.

今來海外國 지금 바다 바깥 나라에 오니

正値枇杷熟 마침 비파가 익을 때라.

島主餉一籠 섬주인이 한 바구니를 보내왔는데

均圓似龍目 고루 둥근 것이 용안 비슷하구나.

冷甘井蓮避 차고 달기는 옥정玉井의 연蓮보다 낫고***

罅發蒲萄僕 (껍질을) 벗겨내니 포도가 숨어있네.

經齒口生津 이빨로 깨물자 입에 침이 고이고

下咽胸自澹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가슴이 산뜻해지네.

開花問何時 꽃은 언제 피느냐고 물어보니

時卦初轉坎 겨울철로 접어들 때라네.

結果問何時 열매는 언제 맺는가 물어보니

朱明按月令 월령을 살피더니 여름철이라네.

一名是盧橘 또 한 이름이 노귤盧橘 이고,

柑柚同味性 맛과 성질이 귤이나 유자와 같은데.

苞貢闕夏書 하서夏書 우공禹貢편에 공물로 실려 있지 않으니

産非九州境 구주九州의 경내에선 생산되지 않았네****

安得薦金盤 어떻게 하면 이 과일을 금쟁반에 담아서

一獻君王聖 우리 임금님께 바칠 수 있을까?

翻思三代時 다시 생각하니 삼대三代 시절에는

而不貴遠物 먼 고장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네

百馬死山谷 수많은 말들이 산골짝에서 죽으니

茘芰爲漢疾 리치(荔枝, Litchi)가 나라의 근심거리였다네.*****

吐哺三歎息 먹다가 뱉으며 세 번 탄식하고서

謝爾枇杷實 너희 비파 열매에게 고마워하노라.


비파나무 꽃, 2018.12.9 진도

<촉도부蜀都賦>라는 글에서만 보았던 비파를 일본 사행에서 실제로 맛본 감동을 조경趙絅은 한 편의 시로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임진왜란 후 사신들이 일본에서 보았던 이 비파나무가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 초기까지도 도입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다가 1937년 간행된 <선한약물학>은 비파에 대해 “가정에 재배하나니라”라고 기재하고 있어서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이나, 1943년 <조선삼림식물도설>, 1957년 <한국식물도감> 목본부 등에는 비파나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시에 비파나무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널리 재배되지는 않은 사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 후, 1956년 이영노, 주상우 공저의 <한국식물도감>에는 “산에 자라기도 하나 보통 집안에 재배하는 늘 푸른 큰키나무”로 다시 비파나무가 등장한다. 그리고 1966년에 임업시험장에서 발간한 <한국수목도감>과 1971년 농촌진흥청에서 간행한 <약용식물도감>에 비파나무가 나오는데, “일본산으로 남쪽에서 과수 또는 관상용으로 심고 있는 상록소교목”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앞의 두 문헌은 모두 이창복 등이 편찬에 참여했다고 한다. 한편 1991년에 간행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비파나무가 “원산지는 중국과 일본의 남쪽지방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는 약 60년이 된다”라고 하여 1930년대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큼을 말해주고 있다.


비파나무, 2020.11.15 서귀포 - 잎 모양이 악기 비파를 닮은 듯도 하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역사는 길지 않지만, 비파나무는 이제 우리나라 제주도나 남부지방에서 조경용, 약용, 식용으로 심어 가꾸는 아름다운 나무이다. 나는 겨울철에 피는 비파 꽃은 여러 번 감상했지만, 아직 열매는 보지 못했다. 언젠가 노랗게 익은 비파 열매를 볼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때, 조경趙絅이 “이빨로 깨물자 입에 침이 고이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가슴이 산뜻해지네”라는 묘사한 그 비파 맛을 음미하면서, 어릴 때 배웠던 ‘비파 비, 비파 파, 늦을 만, 푸를 취’를 흥얼거리고 싶다.


<끝>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2023, pp.119~125. 초고>


*枇杷. 其葉形似琵琶 故名 … 木高丈餘肥枝 長葉大如驢耳 背有黃毛 陰密婆娑可愛 四時不凋 盛冬開白花 至三四月成實作梂 生大如彈丸 熟時色如黃杏 微有毛 皮肉甚薄 核大如芧栗 黃褐色 四月採葉 曝乾用 - 본초강목

** 稟性生南服 貞姿度歲寒 葉繁交翠羽 子熟蔟金丸 藥裹收爲用 氷盤獻可飡 嘗新楚江上 懷核種東韓 - 圃隱集, 楊州食枇杷

*** 태화봉 꼭대기 옥정의 연은, 꽃이 피면 열 길이요 뿌리는 배만 한데, 차갑긴 눈서리 같고 달기는 꿀 같아서, 한 조각 입에 넣으면 고질병이 낫는다네. (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冷比雪霜甘比蜜 一片入口沈痾痊) - 韓愈, 古意

**** <書經>의 하서夏書는 하夏나라 시대 사관이 기록한 것이다. 그 중 우공禹貢 편은 우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리고 구주九州를 정한 사적인데, 각 고을에서 세금으로 올릴 공물도 기록하고 있다. 그 중 양주揚州의 특별 공물로 橘과 柚가 보인다. – 서경

***** 양귀비가 중국 남방의 과일 리치(Litchi chienensis), 즉 여지를 좋아해서, 양귀비에게 신선한 여지를 바치느라 많은 말들이 죽고, 나라의 근심이 되었다는 말이다. 두보의 ‘병귤病橘’에 “생각하면 옛날 남해의 사자들, 여지를 바치러 달려왔었지. 일백 마리 말이 산골짝에서 죽었으니 지금도 노인들이 옛일을 슬퍼하네 (憶昔南海使 奔騰獻荔枝 百馬死山谷 至今耆舊悲)”가 있다.

+표지사진 - 비파나무, 2018.12.8 해남 달마산 미황사


비파나무표지-1941년야담-소화16-7월호.jpg 비파 열매와 잎이 그려진 일제강점기 잡지 표지 (1941년 7월호 야담) - 비파나무가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정황정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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