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樺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11/12월호)
동토의 겨울에 은빛으로 빛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자작나무 숲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낭만적인 분위기에 빠진다. 북부 유럽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여러 곳에 자라는 이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 [B. platyphylla Suk.])는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의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로 시작하는, 백석(白石, 1912~1996)의 시 백화(白樺)는 함경남도 함주에서 쓰였다고 한다.
자작나무과에 속하고 수피가 회백색인 사스레나무가 남한의 고산지대에 자라고 있어서 자작나무로 오인하기도 하지만, 이 나무는 남한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자작나무를 도시의 공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정원수로 인기가 많아 흔히 식재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이 손 잡고 거닐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강원도의 어느 자작나무 숲도 모두 심어 가꾼 나무이다.
이 자작나무는 백석의 시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한문으로 화樺 자字를 쓴다. 자작나무 껍질은 화피(樺皮)라고 하는데, 기름기가 많아서 불에 잘 타기 때문에 화촉樺燭으로 만들어 썼고 활 제작에서 활을 감는 용도로 쓰였다. <훈몽자회>에서 화樺를 찾아보면, “봇화 속칭 화피목(樺皮木)”으로 나온다. 이 화피는 약재로도 쓰여서 <본초강목>에 화목樺木*으로 소개되어 있다. <동의보감>에도 이 화목피樺木皮가 탕액편에 등장하는데, 한글로 ‘봇’이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고어사전을 참조해보면 ‘봇’은 ‘자작나무’를 나타낸다. 가끔 이 ‘봇’을 ‘벚’으로 오해한 때문인지 화피樺皮를 ‘벚나무 껍질’로 설명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토산품으로 화피樺皮를 생산하는 곳은 모두 함경도 아니면 평안도이다. 또한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약천집藥泉集 연보에 “화피(樺皮)는 본래 지극히 추운 곳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본도에서 진상하는 것은 삼수와 갑산 두 고을, 혜산진(惠山鎭)과 운총보(雲寵堡) 두 진보에서 올리고 있습니다.”가 나온다. 그러므로 화피는 북쪽 지방에서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고, 벚나무 껍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벚나무는 평북/함남 이남의 중부/남부 지방의 낮은 산지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유희는 <물명고>에서, “화목樺木, 우리나라 동북지방에서 난다. 나무는 황색으로 반점이 있고 껍질은 두텁고 가벼우며 중첩해서 일어나고 매우 옅은 붉은 색이 있다. 기물器物에 포개어 붙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봇나무’라고 우리말 훈을 달았다. 유희 선생은 ‘봇나무’에 대해 자생지를 우리나라 동북지방이라고 한 점과 껍질에 대한 설명을 보면, 분명히 벚꽃이 피는 벚나무를 설명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벚나무는 껍질이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옥편에서 혼선이 발생했다. 즉, 지석영의 <자전석요>에서 화樺를 ‘벗나무 화’라고 훈을 단 것이다. 대정2년 간행 <한선문신옥편>에서도 ‘벗나무 화’, 1935년 간 <한일선신옥편>도 ‘벗나무 화’이다. 한글학회가 지은 사전도 1957년간 초판본 <큰사전>부터 1992년간 <우리말큰사전>까지 화피(樺皮)를 ‘벚나무의 껍질’로 한결같이 해설하고 있다. 재고가 필요한 사안이다. 다행히 <한한대자전>은 ‘자작나무화’로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물명고>의 표제항 화목樺木 부분에는 한글로 ‘자작나모’라고 설명한 사목沙木이 별도로 실려있다. 그러므로, 유희는 봇나무와 자작나모를 비슷하지만 다른 나무로 봤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 북부지방에서 자작나무와 같은 Betula속의 교목으로는 물박달나무, 사스래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이 있는데, 거제수나무 수피가 넓게 잘 벗겨지고 붉은 빛이 돌아, 위 화목樺木 수피 설명과 비슷하다. 당시에는 자작나무와 거제수나무를 구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반영하듯, 정태현은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거제수나무에 대해 평안북도 방언으로 ‘자작나무’, 강원도 방언으로 ‘무재작이’를 채록하여 병기했다. 또한, 자작나무를 함경북도에서 ‘봇나무’로 통한다고 기록하고, 한자명은 ‘백화白樺, 백단목白檀木’ 등이라고 했다. 이우철의 <한국식물명의 유래>에서도 정태현의 설을 이어받아 봇나무를 자작나무나 만주자작나무라고 이명으로 기록하고, 봇나무가 자작나무의 함북 방언이라고 했다.
사실 조선시대에 자작나무는 동북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였기 때문에 중부지방 이남에는 다른 방언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함경북도 방언이 채록되어 <훈몽자회>나 <동의보감>, <물명고> 등에서 화樺의 우리말 이름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식물지中國植物志>에서 백화白樺의 학명을 찾아보면 Betula platyphylla Suk.로 자작나무임을 알 수 있으며, 일본에서도 화樺는 자작나무를 가리킨다.
이제 백석白石보다 이백여 년 먼저 함경도의 자작나무를 읊은 강좌江左 권만權萬(1688~1749)의 시, ‘말 위에서 읊다 (馬上口占)’를 감상해본다. 이 시에는 ‘수주愁州로 가는 조간의趙諫議에게 드림 (呈趙諫議愁州之行)’이라는 부제가 있다.
太白岡頭一鳳鳴 태백산 머리에서 봉황이 우니
鳴聲驚動洛陽城 우는 소리에 놀라 서울이 흔들렸네
歸途竹嶺擡雙眼 돌아오는 길 죽령에서 두 눈을 치뜨면
南國山川分外淸 남국의 산천은 유달리 맑으리라
豆江千里暮雲平 두만강 천리에 저녁 구름 깔리고
夫子明時又此行 부자夫子께서 살아계실 때, 또한 이 길을 갔네
憑問愁州諸學子 수주愁州의 학자들에게 물어보았으면,
何人解識李先生 아직도 누군가 이선생李先生을 알고 있는지!
長白山中多白樺 장백산에 자작나무가 많으니
粧弓仍復覆人家 활을 치장하고 지붕도 덮는다.
由來燥濕皆無變 그 덕에 습기를 막고 모두 변함이 없으니
不怕胡風送雪花 오랑캐 바람 두려워 않고 눈 꽃을 보낸다.
이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경을 간략히 소개한다. 수주愁州는 함경북도 최북단의 두만강 가에 위치한 종성鍾城의 별명이다. 조간의趙諫議는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1658~1737)으로, 경북 영양에서 출생하여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1627~1704) 문하에서 공부한 유학자이다. 조덕린은 1725년 사간司諫 직을 사양하면서 올린 십조소十條疏에서 당쟁의 폐해를 논하고 노론의 득세를 비판한 내용 때문에 탄핵을 받아 68세의 고령에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 때 권만이 조덕린에게 보낸 시인데, 이 시의 일부가 <옥천집玉川集>의 부록, 북천증행시北遷贈行詩에도 실려있다.
조덕린의 스승 이현일도 상소의 구절이 불손하다는 탄핵을 받고 1694년에 종성으로 귀양을 갔다.유배지에서 이현일은 종성의 학자들에게 사서四書와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등을 강의하여 북쪽 변경 지방의 학풍을 진작시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시의 부자夫子와 이선생李先生은 모두 이현일을 존숭한 표현이다. 권만權萬은 이현일의 아들이자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를 저술한 밀암密菴 이재李栽(1657~1730)의 제자이므로, 이러한 배경을 알고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이 시를 음미하고 있자면, 조선시대에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우리나라 최북단 변경으로 유배를 가 심신이 지쳤을 많은 학자들을 따뜻한 온기로 위로해 준 나무가 바로 자작나무였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권만은 장백산 지역에서 자작나무로 "활을 치장하고 지붕도 덮는다"라고 기록했는데,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자작나무의 용도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실려있다. 견문을 넓히려고 남원 사는 김형진金亨鎭을 길동무 삼아 만주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가는, 우국충정으로 가득찬 젊은 시절의 김구를 떠올리며 해당 구절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우리가 단천 마운령을 넘어서 갑산읍에 도착한 것이 을미년(1895) 칠월이었다. 여기 와서 놀란 것은 개와를 인 관청을 제하고는 집집마다 지붕에 풀이 무성하여서 마치 사람 아니 사는 빈 터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뒤에 알고 보니 이것은 지붕을 덮은 봇껍질을 흙덩이로 눌러놓으면 거기 풀이 무성하여서 아무리 악수가 퍼부어도 흙이 씻기지 아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봇껍질은 희고 빤빤하고 단단하여서 개와 보다도 오래간다 하며 사람이 죽어 봇껍질로 싸서 묻으면 만년이 가도 해골이 흩어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혜산진에 이르니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를 바라보는 곳이라 건너편 중국 사람의 집에 짖는 개의 소리가 들렸다. 압록강도 여기서는 걷고 건널만 하였다."
<끝. 2019년 10월 27일, 2022년 1월 보완,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11/12월호, pp.64~71>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2023, pp.264~273. 초고>
*<중약대사전>을 찾아보면, <본초강목>의 화목樺木의 학명을 Betula platyphylla Suk. var. japonica (Sieb.) Hara로 설명하는데, 이는 자작나무를 가리킨다. <중국식물지>에는 Betula platyphylla Suk을 중국명으로 백화白樺, Betula pendula Roth는 수지화垂枝桦로 구별하고 있지만, <한국의 나무>에는 이 둘을 같은 종으로 보고 자작나무(만주자작나무)로 보고 있다.
**<전운옥편>을 보면 화樺의 “껍질을 활에 붙일 수 있다(皮可貼弓)”고 한 것을 보면, 원래 자작나무 껍질을 민어부레로 만든 풀을 사용하여 활에 붙임으로써 습기를 방지하는 용도로 썼는데, 벚나무 껍질을 대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화피樺皮를 벚나무 껍질로 이해하게 된 듯하다. 이 문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樺木, 出我東北道 木色黃有斑點 皮厚而輕 重疊起之 紅色甚薄 可褙器物 <물명고>
+표지사진 - 자작나무 숲, 2022.1.8 청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