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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우리네 마음, 갈대와 달뿌리풀

가葭, 로蘆, 위葦, 겸가蒹葭, 금芩

by 경인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어라 아아아 갈대의 순정


국민학교 시절 어느 해인지는 잊었지만 ‘갈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산골 개울 가 곳곳에 자라던 억새 비슷한 풀을 갈대라고 굳게 믿어왔다. 당시에 시골 구들방에서 쓰는 빗자루는 타작하고 남은 벼 이삭으로 만들었는데, 한번은 갈대 이삭으로 만든 비가 더 좋다는 말을 듣고선 그 이삭을 뽑아 모은 적도 있었다. 결국은 빗자루를 만들 만큼 많이 모으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갈대는 그 풀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러다가 김태영 선생 등 식물애호가들과 만나면서 산골 개울가의 그 풀이 달뿌리풀(Phragmites japonicus Steud.)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갈대(Phragmites australis [Cav.] Trin. ex Steud.)와 같은 속의 식물로 대단히 유사하여, 어린 시절 내가 달뿌리풀을 갈대로 잘 못 알고 있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달뿌리풀-IMG_1742-용문산20191102.JPG 달뿌리풀, 2019.12.2 용문산 - 달뿌리풀은 보통 산 속 계속의 물 가에 흔히 자란다.

내가 식물애호가들과 어울리면서 배운 달뿌리풀과 갈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달뿌리풀은 땅 위를 길게 벋어나가는 줄기의 마디에서 뿌리가 내려 퍼지는데 반해, 갈대는 땅속 줄기가 퍼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땅 위로 벋는 줄기가 보이면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분이 쉽지 않다. 그리고 달뿌리풀은 하천의 중, 상류 가장자리 어디에서나 자라고 특히 산골 개울가에서도 잘 자라는데 반해, 갈대는 강의 하류나 바닷가 인근 습지에서 자란다. 그렇다면 고전 번역에서는 이 둘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시경식물도감>이나 <중국식물지>를 살펴보면, 달뿌리풀은 금芩, 갈대는 로蘆, 위葦, 겸가蒹葭 등으로 적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우선 금芩을 살펴보면, 훈몽자회에는 나오지 않고, <전운옥편>에는 “芩금, 사슴이 먹는 풀이다. 뿌리는 비녀의 두 갈래 다리와 비슷하다”*로 나오고, <광재물보> 습초류濕草類에 “계척초鷄跖草(닭 발바닥 풀)”로 나온다. 또한, 자전석요에는 “약명藥名 황금黃芩, 속석은풀 금”로, <한선문신옥편>에는 “사슴먹는풀 금”, <한일선신옥편>에는 “약풀 금, 뿌리는 비녀의 두 갈래 다리 같고 잎은 대나무 같다 (根如釵股 葉如竹)”로 나온다. 현대의 <한한대자전>에서도 “풀이름 금, 만초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종의 식물인지 명확하지 않다.


달뿌리풀IMG_1741-용문산20191102.JPG
달푸리풀-줄기뿌리_MG_5853_20180720괴산.JPG
(좌) 달뿌리풀, 2019.12.2 용문산, (우) 달뿌리풀 줄기뿌리, 2018.7.14 괴산

이런 설명의 대부분은 <시경>의 소아小雅 “사슴이 울며 - 鹿鳴”에서 “들판의 금芩을 먹네 (食野之芩)”와, 이 구절의 금芩에 에 대한 육기陸機의 주석, 즉 “뿌리[혹은 줄기]는 비녀의 두 갈래 다리와 같고, 잎은 대나무 같으며 덩굴로 자란다. 늪 가운데나 메마르고 소금기가 있는 곳의 풀인데 진실로 소나 말도 즐겨 먹는다”**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옛 사람들이 명확하게 어떤 풀인지 밝히지 않아서일 것이다. 더구나 금芩은 약초로 쓰인 풀이 아니라서 굳이 정확히 어떤 풀인지 밝힐 필요성도 적었을 터이다. 하여간 육기의 주석을 참조하여,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은 달뿌리풀로 설명하고 있고, 일부 일본 문헌에서는 바랭이(Digitaria ciliaris)로 보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대나무 잎 모양의 풀로 덩굴로 자란다’는 설명으로 미루어 <시경식물도감>의 설명을 따른다. (소금기가 있는 곳에 자란다는 설명은 달뿌리풀 식생과 맞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금芩을 ‘닭의장풀’, ‘금芩풀’, ‘덩굴풀’등으로 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대-IMG_2464-20200118남한산성.JPG 갈대, 2020.1.18 남한산성

이와 대조적으로, 가葭, 로蘆, 위葦, 겸가蒹葭에 대해서는, 가끔 겸가蒹葭를 억새로 잘못 번역하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갈대’로 올바르게 번역하고 있다. 이는 <훈몽자회>에서 “葦, 갈위, 큰 가葭이다. 처음에는 가葭라고 부르고 조금 크면 로蘆라고 하며, 다 자라면 위葦라고 한다. 葭, 갈가, 위葦의 꽃이 피지 않은 것이다. 蘆 갈로, 위葦의 꽃이 피지 않은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또 <전운옥편>에서도 “葦위, 처음 난 것을 가葭, 크면 로蘆, 다 자란 것을 위葦라고 한다”****고 한 후, <자전석요>, <한선문신옥편>, <한일선신옥편> 및 현대의 <한한대자전>까지 모두 이 글자들을 갈대로 잘 설명하고 있어서, 고전 번역에도 오류는 거의 없다. 단 겸蒹에 대해서는 <훈몽자회>에서 “蒹 달겸, 물억새가 피지 않은 것 (萑未秀者)”이라고 설명했고, <전운옥편>은 “蒹겸, 갈대에 속하는 겸가蒹葭, 적藋(수수)비슷하나 가늘다”로 설명하고 있어 좀 더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제 <시경>에서 달뿌리풀과 갈대가 등장하는, 소아小雅 편의 ‘녹명鹿鳴’과 진풍秦風의 ‘겸가蒹葭’를 이가원 번역본으로 감상해본다.

달뿌리풀-20220312-영월동강.JPG 달뿌리풀, 2022.3.12 영월


사슴이 울며 - 鹿鳴


呦呦鹿鳴 끼룩끼룩 사슴이 울며

食野之芩 들판에서 달뿌리풀을 뜯네.

我有嘉賓 내게 반가운 손님 오셔서

鼓瑟鼓琴 거문고 타며 함께 즐기네.

鼓瑟鼓琴 거문고 타며 함께 즐기니

和樂且湛 서로 어울려 즐거움 끝없어라.

我有旨酒 내게 맛있는 술 있어

以燕樂嘉賓之心 손님의 마음 즐겁게 하리.


갈대-20220311-성남.JPG 갈대, 2022.3.11 성남 율동공원


갈대 - 蒹葭


蒹葭蒼蒼 갈대는 푸르르고

白露為霜 흰 이슬 내려 서리가 되었네.

所謂伊人 바로 그이는

在水一方 강물 저쪽에 있건만,

溯洄從之 물결 거슬러 올라 따르려 해도

道阻且長 길이 험하고 멀어라.

溯游從之 물결 따라 내려가 따르려 해도

宛在水中央 여전히 강물 가운데 있네.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갈대는 정처 없는 우리네 마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시경의 시 ‘갈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수 없는 슬픔이나 가을의 우수를 묘사하는 듯하다.


<끝 2020.1.23>


*芩금, 鹿食草 根如釵股 <전운옥편>

**(食野之芩) 根[혹은莖]如釵股 葉如竹 蔓生 澤中下地鹹處爲草 眞實牛馬亦喜食之 <毛詩草木鳥獸蟲魚疏, 陸機>

***葦 갈위 大葭也 初名葭 稍大爲蘆 長成爲葦, 葭 갈가 葦未秀者, 蘆 갈로 葦未秀者 <훈몽자회>****葦위 初生爲葭 大爲蘆 長成爲葦 <전운옥편>

+ 표지사진: 갈대, 2020.1.18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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