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蔦, 상기생桑寄生, 곡기생槲寄生
2019년 1월에 나는 식물애호가들과 함께 덕유산 무주구천동 계곡으로 겨울 나무를 감상하러 갔다. 물푸레나무와 들메나무, 물들메나무 등 물푸레나무(Fraxinus)속의 나무들과 겨우살이를 살펴보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는데, 운이 좋으면 새가 먹고 배설한 겨우살이 열매 흔적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과연 무주구천동엔 겨우살이가 많았다. 계곡 입구에서부터 느티나무에 매달려 흰 눈 속에 노란 열매를 달고 있는 겨우살이를 만났다. 한참 걷다가 서어나무에 붙어 있는 것도 만났고, 졸참나무에 붙어 자라는 것도 만났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겨우살이를 본 것은 백련사를 지난 다음 향적봉을 향해 30분 가량 오른 후였다. 좁은 산 길 양쪽은 주로 신갈나무로 이루어진 숲인데, 나무 위에는 온통 노랑, 주홍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겨우살이 다발이 이곳 저곳에 붙어 있었다. 박달나무에 붙어 자라는 것도 있었다. 장관이었다. 겨우살이는 약초 꾼들이 즐겨 채취하는 한약재이므로 보통 길 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국립공원이라 함부로 채취할 수 없어서 자연 그대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살이는 어떻게 하여 나무 위에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겨우살이 열매의 과육은 매우 끈끈한데 “새가 겨우살이의 끈끈한 과육을 먹다가 부리에 달라붙은 종자를 주변의 나뭇가지에 닦아내거나, 열매를 먹고 다른 나무로 날아간 새가 소화되지 않은 종자를 옮겨간 나무 위에 배설함으로써 종자가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고 한다. 그래서 겨우살이가 많은 덕유산에서 운이 좋으면 새가 배설한 겨우살이 열매 흔적을 만날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이날 나는 이 신기한 이야기와 함께 앙상한 겨울 나무 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겨우살이 열매의 아름다움에 한껏 매료되었다. 또한 하산하는 길에 새가 싼 끈끈한 배설물이 나무 가지에 걸려 실처럼 길게 늘어뜨려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자에 풀초(艸) 밑에 새조(鳥)가 있는 조蔦 라는 글자가 있다. 겨우살이를 뜻하는데, <물명고>에 “기생寄生, 겨으살이”로 설명하고 있고, <전운옥편>도 “됴, 기생초奇生草”로 설명한다. 마치 이 글자가 새의 배설물을 통해 겨우살이가 나무 위에서 싹이 튼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 하여 흥미롭다. 이 조蔦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보전지습甫田之什의 “뾰족한 가죽 관 (頍弁)”이라는 시에 나온다.
有頍者弁 뾰족한 가죽 관을
實維伊何 무엇 하러 썼나?
爾酒既旨 술도 맛이 있고
爾餚既嘉 안주도 좋으니.
豈伊異人 이 사람들이 어찌 남남이랴?
兄弟匪他 남들이 아니라 형제들이라네.
蔦與女蘿 겨우살이와 송라가
施於松栢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감고 있네.
未見君子 군자들을 만나기 전엔
憂心奕奕 마음의 시름 그지없더니
既見君子 군자들을 만나보고는
庶幾說懌 내 마음 기뻐지네.
이 시에서 여라女蘿는 송라松蘿(Usnea diffracta Vain.)를 가리킨다. <시전대전詩傳大全>은 이 시에 대해, “겨우살이와 송라가 나무 위에서 자라는 것은 형제와 친척이 서로 얽혀 살면서 의지하는 뜻을 비유한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면 걱정이고 보면 기쁘다고 한 것이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아무튼 이 시로 인해 고전에서 ‘조라蔦蘿’라는 표현은 서로 의지하여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상상기생桑上寄生이 나오는데, ‘뽕나모우희겨으사리’로 우리말 훈을 달아놓았다. <광재물보>도 상기생桑寄生을 “뽕나무겨우사리, 잎은 둥글지만 조금 뾰족하고 두텁고 부드럽다. 표면은 푸르고 뒷면은 자주빛이고 털이 밀생한다.”라고 설명하고 조蔦라고 했다. 이 상상기생桑上寄生, 즉 조蔦는 <본초강목>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상상기생桑上寄生. 기설寄屑, 우목寓木, 완동宛童, 조蔦이다. … 이 식물은 다른 나무에 붙어서 기생한다. 새가 그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기생寄生, 우목寓木, 조목蔦木이라고 한다. … 보승保升은 ‘여러 가지 나무에 기생이 있다. 줄기와 잎이 서로 비슷하다. 이것은 까마귀나 새가 식물의 씨앗 하나를 먹고 나무 위에 똥을 떨어뜨리면 그 기氣에 감응하여 생긴다고 한다. 잎은 귤처럼 두텁고 부드러우며, 줄기는 회화나무처럼 통통하고 무르다. 비록 곳곳에 있지만 뽕나무 위에 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직접 채취한 것이 아니면 구별하기 어렵다. 줄기를 절단하여 봐야 하는데 샛노란 색이 효험이 있다’고 했다. … 대명大明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느티나무(櫸樹) 위의 것을 채취하여 상기생桑寄生이라고 한다. 뽕나무 위의 것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 기생寄生은 큰 것이 2, 3척이다. 잎은 둥글고 조금 뾰족하며, 두텁고 부드럽다. 앞면은 푸르고 광택이 있으며, 뒷면은 옅은 자주색이고 털이 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천성에 뽕나무가 많은데 가끔씩 자란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드물다. 모름지기 직접 채취하거나 혹은 뽕나무와 이어진 곳에서 채취한 것을 쓸 수 있다. 세속에서는 흔히 잡목雜木 위의 것으로 충당하는데 기氣와 성질이 같이 않으니 도리어 해害가 될까 걱정된다. 정초鄭樵의 통지通志를 살펴보니, ‘기생寄生은 두 종류가 있다. 큰 종류는 잎이 석류 잎 같고, 작은 종류는 잎이 마황麻黃 잎 같다. 그 씨앗은 모두 비슷하다. …’라고 했다.”
<본초강목>의 이 설명으로부터 조蔦와 기생寄生 등으로 불리는 겨우살이는 여러 종이 있으며, 그 중 상기생桑寄生, 즉 ‘뽕나무겨우살이’가 약재로 좋은데 워낙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약대사전>에 의하면, 조蔦나 조목蔦木은 겨우살이과의 식물, 즉 상기생桑寄生(Loranthus parasiticus [L.] Merr.)이나 모엽상기생毛葉桑奇生(Loranthus yadoriki Sieb.), 곡기생槲奇生(Viscum coloratum [Kom.] Nakai)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도 조蔦를 중국에서는 겨우살이과에 속하는 늘푸른나무의 총칭이라고 했고, 단 일본에서는 담쟁이덩굴(Parthenocissus tricuspidata [Siebold & Zucc.] Planch)을 뜻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일본 측의 이해를 반영하여, 일제강점기 후반에 간행된 <한일선신옥편>에는 조蔦에 대해, “겨우사리 됴, 기생만초寄生蔓草”라고 설명하고 나서 “쯔다ツタ”, 즉 담쟁이덩굴의 일본어를 추가해 놓았다. 이런 사정이니 우리나라에서 조蔦에 대한 이해에 혼란이 있을 것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전 번역에서는 조蔦를 겨우살이나 상기생으로 바르게 번역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새삼덩굴, 담쟁이덩굴, 댕댕이덩굴 혹은 그냥 덩굴이나 넝쿨로 번역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본초강목>과 <광재물보>의 “잎은 둥글지만 조금 뾰족하고 두텁고 부드럽다. 표면은 푸르고 뒷면은 자주빛이고 털이 밀생한다”는 상기생桑奇生 설명은 내가 덕유산에서 만났던 졸참나무나 신갈나무, 서어나무, 느티나무, 박달나무에서 자라던 겨우살이(Viscum coloratum [Kom.] Nakai)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겨우살이과로 분류했지만 지금은 단향과로 분류하는 겨우살이의 가죽질 잎은 장타원상 피침형인데 양면에 털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몇 해 전 제주도 서귀포에서 만났던 참나무겨우살이(Taxillus yadoriki [Siebold ex Maxim.] Danser or Loranthus yadoriki Sieb, 중국명 모엽상기생毛葉桑奇生)’의 잎이 광타원형으로 뒷면에 적갈색 성상모가 밀생하는 것이 이 본초강목의 설명과 유사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겨우살이라고 부르는 것을 중국 측은 ‘참나무 겨우살이 (槲奇生)’라고 하고, 참나무겨우살이를 중국에서는 ‘뽕나무 겨우살이 (桑奇生)’ 류로 이름 붙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곡槲은 떡갈나무(Quercus dentata Thunb.)를 가리키는 글자이다. 실제 내가 식물애호가들을 따라다니면서 관찰한 바로는 겨우살이는 신갈나무나 졸참나무, 떡갈나무 등 참나무에서 볼 수 있었던 데 반해, 정작 참나무겨우살이는 참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참나무겨우살이는 구실잣밤나무, 가마귀쪽나무, 삼나무 등에 자란다고 한다. 우리나라 식물학자들이 표준 이름을 정할 때 ‘겨우살이’와 ‘참나무겨우살이’를 바꾸었던지, 아니면 최소한 ‘참나무겨우살이’의 ‘참나무’를 다른 나무로 바꾸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제 복잡한 이야기는 마치고 시 한 편을 감상한다. 1504년 갑자사화 때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천재 시인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1479~1504)의 시이다.
古木千尋上蔦蘿 천 길 고목 위에 겨우살이와 송라가 얽히었고
春山好事自能多 봄 산은 일하기 좋아해 온갖 경치 만드네
一盃取醉便歸去 한 잔 술에 취하여 곧 돌아가리니
更奈天磨明月何 다시 천마산 명월을 어이할 거나?
‘밤에 성해굴性海窟 앞 영침嶺忱에서 술을 마시고 운을 불러 각자 시를 읊다 (夜飮性海窟前嶺忱占韻各賦)’라는 시이다. 개성 천마산 유람길에 나섰던 박은朴誾이 자리를 함께 했던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 등 의지하는 친구들을 조라蔦蘿로 표현한 듯 하다. 이행李荇도 갑자사화 때 화를 입었으나 천행으로 살아남아 친구인 박은이 남긴 시를 정리하여 후세에 남겼다. 겨우살이는 의지할 나무가 없으면 자라지 못한다. 우리 인간도 겨우살이와 마찬가지로,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 사회를 지탱해나가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의지하는 삶이라면, 이왕이면 좋은 친구들에게 의지하여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끝 2020.8.7>
*蔦蘿施于木上 以比兄弟親戚纏綿依附之意 是以未見而憂 旣見而喜也 - 詩傳大全
**桑寄生 뽕나무겨우사리 葉圓而微尖 厚而柔 面靑背紫 有茸毛 = 蔦 – 광재물보
***桑上寄生, 寄屑 寓木 宛童 蔦. … 此物寄寓他木而生 如鳥立于上 故曰寄生寓木蔦木 … 保升曰 諸樹多有寄生 莖葉並相似 云是烏鳥食一物子 糞落樹上 感氣而生 葉如橘而濃軟 莖如槐而肥脆 處處雖有 須桑上者佳 然非自采 即難以別 可斷莖視之 色深黃者為驗 … 大明曰 人多收櫸樹上者為桑寄生 桑上極少… 時珍曰 寄生 高者二三尺 其葉圓而微尖 厚而柔 面青而光澤 背淡紫而有茸 人言川蜀桑多 時有生者 他處鮮得 須自采或連桑采者乃可用 世俗多以雜樹上者充之 氣性不同 恐反有害也 按鄭樵通志云 寄生有兩種 一種大者 葉如石榴葉 一種小者 葉如麻黃葉 其子皆相似 - 본초강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