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귀나무, 식수유食茱萸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6년 1/2월)
“금동목金桐木. 잎은 가죽나무(樗) 같다. 수피에 가시가 있다. 거문고를 만들 수 있다.”*
1653년에 간행된 이원진李元鎭(1594~1665)의 <탐라지> 영인본을 최근에 입수하여, 토산 편을 읽다가 만난 제주도의 나무 기록이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세종실록지리지>의 제주목濟州牧 토공土貢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제주목 토산품, 김정金淨(1486~1521)의 <제주풍토록> 등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제주도 지리지에 등장하는 한자로 표기된 식물들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찾아보고 있다. 식물애호가로서 육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제주도의 식생이 조선시대 기록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추정하는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들 지리지에는 보통 식물명만 기록되어 있는데 금동목은 상대적으로 자세한 주석까지 달려 있어서 특히 내 관심을 끌었다.
이 <탐라지>의 금동목 주석은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1653~1733)이 1702년에서 1703년까지 제주목사를 역임한 후 영천으로 물러나 저술한 제주도 지리지 <남환박물> ‘지목誌木’편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후, 1853 이후 최성환崔瑆煥(1813~1891)과 김정호金正浩(1804~1866)의 등사謄寫본으로 추정하는 <여도비지輿圖備志>와, 1861년에서 1866년 사이 제작된 김정호의 등사본으로 추정하는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제주 토산에 다시 금동목이 등장한다. <여도비지>에는 이름만 소개되어 있지만, <대동지지>에는 “거문고를 만들 수 있다 (可作琴)”라는 설명이 부기되어 있어서, <탐라지>나 <남환박물>의 금동목과 같은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이 제주산 금동목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이규경李圭景(1788~1856)의 ‘금동金桐 및 청양靑楊 변증설辨證說’ 중 금동목 부분을 살펴보자.
“<탐라지> 물산物産에 금동목金桐木이 있다. <사설僿說>에도 여러기지 동桐 류를 기재하고 있는데 간혹 <본초>에 나열되지 않는 것도 있으므로 분별하여 그것들을 밝혀보려고 한다. <탐라지>를 살펴보면, 금동목은 “잎은 가죽나무(樗) 같고, 가죽에 가시가 있으며 거문고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해동피海桐皮도 기재하고 있으나 주석은 없으니 그 소략함을 탄식할 만하지만, 전해지기는이는 육지의 민간에서 엄나무(奄木)라고 한다. ‘엄奄’은 토자土字로 엄나무(儼木)로 쓴다. <본초>에서 이른바 작부답목(鵲不踏木) 혹은 작부정목(鵲不停木)으로 쓴다. 금동목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주석이 있고, 해동피는 약재로서 간혹 서울로 들어오는데 그 모양을 보면 ‘나무 혹(木疣)’ 같고 가시처럼 날카롭다. 이것이 혹시 금동목 껍질인데 해동피로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해동피는 <제중신편> 약성가에도 기재되어 있으며, 풍습風濕을 다스리는 약으로 쓴다. 제주에 음나무(海桐木) 나막신이 있다. 목리木理가 매우 가볍지만 굳세고 질긴 성질이라서 오랫동안 부서지지 않고 견딘다. 혹시 이 나무를 쪼갠 것일까? 제주를 다스리던 이가 가져왔는데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 물으니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명에 어두운 것이 매양 이와 같다.”****
엄나무(奄木, 欕木)는 현재의 음나무(Kalopanax septemlobus)이다. 이규경은 금동목에 대해, 수피에 가시가 있다는 점과 ‘동桐’의 일종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혹시 ‘해동海桐’으로 불리는 음나무의 별명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나무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5~9갈래 깊게 갈라지는 원형이므로 가죽나무처럼 우상복엽 잎을 가진 금동목과는 다르다고 하겠다.
한편 이 금동목에 대해, 김영길 역주 <국역증보 탐라지>에서는 “금동목(金桐木). 잎은 가죽나무[樗저] 같고 껍질에 가시가 있다. 거문고를 만들 수 있다”라고 번역하고 있고,***** 김새미오, 이진영 역주 <남환박물>******은 “금동목(金桐木) [잎은 가죽나무 같은데 가시가 있다. 거문고를 만들 만하다.]”라고 번역하여, 나무의 종(species)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이창숙 등의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제주도 전통식물의 통시적 연구>에서는 금동목金桐木을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um)로 추정했다.******* 황칠나무는 제주의 산지에 분포하고 있지만 3~5갈래로 얕게 혹은 깊게 갈라지는 타원상 난형 잎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상복엽인 가죽나무 잎과 판이하게 다를 뿐 아니라 수피에 가시도 없고, 또 예로부터 ‘황칠黃漆’이라는 한자명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금동목이 황칠나무일 가능성은 없다고 하겠다.
나는 얼마 전 금동목에 대해 <탐라지>와 <남환박물>에 기록된 주석을 접하고서, 혹시 금동목이 머귀나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자명 식수유食茱萸인 머귀나무는, 오수유吳茱萸와 더불어, “모두들 머리에 수유를 꽃을 때에 한 사람이 모자람을 알게 되겠지? (遍插茱萸少一人)”라는 왕유王維(699~759)의 유명한 시 구절의 수유茱萸로 추정되는 나무여서, 식물 답사를 위해 제주도 등 남도를 여행할 때 마다 눈여겨본 나무였다. 이 머귀나무 잎이 가죽나무 잎 비슷하고, 수피에 굵은 가시가 많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머귀나무의 향명 유래와 제주도 식생 검토를 통해, 16세기에 이원진이 처음으로 기록한 제주도의 금동목이 머귀나무일 것이라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한자어 ‘금동목金桐木’은 우리말로 ‘금 오동나무’를 뜻할 것이다. 그 중 ‘동桐’은 <훈몽자회>나 <천자문> 등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문헌에는 ‘머귀 동’으로 훈을 달고 있는 점으로 보아, <탐라지>가 간행된 17세기에는 제주도에서 ‘금 머귀-낭’으로 불리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도 ‘동桐’이 들어간 나무 이름에는 ‘오동梧桐’과 ‘벽오동碧梧桐’, ‘청동靑桐’, ‘백동白桐’ 등이 있었으므로 이와 구분하여 ‘금동金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동桐’을 이름에 쓰는 이 나무들은 대개 거문고 제작에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제주도에서는 벽오동이나 오동나무가 귀해서 소위 ‘금동목’을 사용하여 악기를 제작했을 수도 있고, 금동목을 사용했을 경우 악기의 품질이 더 좋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탐라지>의 기록은 이 ‘금동목’으로 거문고를 제작한 사실을 보여준다.
‘머귀 동’으로 읽던 ‘동桐’은 <천자문>이나 <자전석요> 등 19세기 말 이후에 간행된 자전류 문헌부터는 대부분 ‘오동 동’으로 훈이 바뀌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가 되면 서울에서는 더 이상 ‘동桐’을 ‘머귀나무’로 부르지 않는 대신 ‘오동나무’로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현대까지 ‘머귀-낭’이 사투리로 살아남은 듯하다. 이는 1995년 제주도에서 발행한 <제주어사전>에서 식물명 어휘로 ‘머귀-남’, ‘머귀-낭’이 ‘머귀나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제주도에서는 ‘동桐’의 훈이 ‘머귀’였던 흔적이 ‘머귀-낭’이라는 나무 이름으로 최근까지 남아 있었으며, 이는 ‘금동목金桐木’이 머귀나무임을 말해주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
1920년 <조선어사전>에서는 “머귀나무 (名)[植] 桐. (梧桐)”이라고 했다. 당시 사전편찬자는 머귀나무로 (참)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를 지칭했다. 1932년 <토명대조 선만식물자휘>에서는 Paulownia tomentosa의 조선명으로 ‘오동(梧桐)나무’, ‘백동(白桐)나무’, ‘머귀나무’ 등 3가지 이름을 채록하고 있다.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학명 Fagara ailanthoides (Synonym of Zanthoxylum ailanthoides)에 ‘머귀나무’를, Paulownia tomentosa에 ‘참오동나무’와 한자명 ‘동桐’을 기재하고 있다. 이는 비록 <조선어사전>에서 Paulownia tomentosa를 ‘머귀나무’라고 했지만, <조선식물향명집> 저자들이 1930년대에 서울 사람들은 대부분 ‘오동나무’로 불렀던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불 수 있다. 아마도 <조선식물향명집>이 발간된 이후로는 더 이상 오동나무를 ‘머귀나무’로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1943년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정태현은 학명 Fagara ailanthoides에 조선명 ‘머귀나무’가 제주 방언임을 밝혀두었고, 한자명 ‘식수유食茱萸’라고 했다. ‘식수유食茱萸’는 중국에서 머귀나무(Zanthoxylum ailanthoides)를 가리킨다. 특기할 점은 이 식수유는 <동의보감> 등 우리나라 한의학 문헌에도 한약재명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탐라지>나 <남환박물> 등의 지리지에 금동목과 식수유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다면, 식수유를 머귀나무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각종 제주도 지리지에서 ‘식수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금동목을 머귀나무로 추정할 수 있다.
이제 <탐라지>의 금동목에 대한 설명, “잎은 가죽나무(樗) 같다. 수피에 가시가 있다. 거문고를 만들 수 있다.”를 바탕으로 제주도 식생 검토를 통해 금동목이 어떤 나무인지 검토한다. 중국 원산의 가죽나무(Ailanthus altissima) 잎은 우상복엽 형태이다. 수피에 가시가 있다는 설명은 나무의 중요한 식별자가 된다. 그리고 재목으로 거문고를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자면 그 나무는 교목일 것이다.
제주도의 자생하는 우상복엽 나무에는 말오줌때, 솔비나무, 덧나무, 딱총나무, 붉나무, 개옻나무, 검양옻나무, 산검양옻나무, 물푸레나무, 마가목, 왕초피, 산초나무, 초피나무, 머귀나무 등이 있다. 이 중 수피에 가시가 있는 것은 왕초피, 산초나무, 초피나무, 머귀나무이다. 우상복엽으로 가시가 있는 나무 중에 거문고를 만들 정도로 크게 자라는 나무는 머귀나무 뿐이다. 그러므로 <탐라지>와 <남환박물>의 주석이 정확하다면 식물학상으로 금동목은 머귀나무(Zanthoxylum ailanthoides)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제주도 방언 ‘머귀-낭’이 <조선식물향명집> 저자들을 통해 머귀나무라는 나무 이름으로 정착되는 과정과, 제주도의 식생 검토를 통해 금동목이 머귀나무임을 밝혀 보았다. 요약하자면, 제주도에서 식수유食茱萸(Zanthoxylum ailanthoides)는 거문고를 만들 수 있다는 특징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16세기부터 ‘머귀-낭’으로 불리어졌을 것이다. <탐라지>나 <남환박물> 편찬자들은 제주도 ‘머귀-낭’이 한약재로도 사용되는 식수유食茱萸 나무임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머귀-낭’의 한자명을 적을 때 오동나무나 벽오동을 가리키는 ‘동桐’이나, ‘오동梧桐’, ‘벽동碧桐’ 등과 구분하기 위해 ‘금동목金桐木’으로 채록했을 것이다. ‘머귀-낭’은 현대까지 제주 방언으로 사용되었다. 이 ‘머귀-낭’이 일제강점기 식물학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편찬했던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은 그대로 채용함”이라는 사정요지에 따라 ‘머귀나무’로 채록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영원히 나무 이름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머귀나무’라는 이름은 서울 등 본토에서는 19세기까지도 현삼과에 속하는 나무 ‘오동나무‘ 이름으로 쓰이다가 근세에 사라졌지만, 저 멀리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는 오동나무와는 관계가 먼 운향과 나무 ‘식수유’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살아남은 점이다. 이 머귀나무를 <탐라지>와 <남환박물> 편찬인이 ‘금동목金桐木’으로 채록했으니, 그야말로 머귀나무는 각종 ‘동桐(머귀)’ 중에서도 최고 좋은 금 같은 동桐, ‘금동金桐’으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220호, 2026년 1/2월, pp.66~73.)
*金桐木 葉如樗皮有刺 可作琴 – 탐라지
** 金桐木 葉如樗皮有刺 可作琴 – 남환박물
*** 金桐木 - 여도비지/제주목/토산, 金桐木 可作琴 – 대동지지/제주/토산
**** 耽羅志 物産 有金桐木 僿說又載諸桐類 或有本草所未列者 故爲辨而證據之 按耽羅志 金桐木 葉如樗皮有剌可作琴 又載海桐皮 而無注脚 可歎其疏漏 而傳者以爲卽陸地俗名奄木 奄 土字 作儼木 本草所謂鵲不踏木 或作鵲不停木也 金桐木則有注如上 海桐皮者 以藥材或來京中 見其狀如木疣 而尖銳似棘 是或金桐木皮 而稱海桐皮耶 海桐皮又載於濟衆新編藥性歌 以爲治風濕之劑 濟州復有海桐木屐 木理甚輕而性堅韌 耐久不壞 或以此木所刳者歟 宰濟州人攜來 而問其爲何木 則未能詳知 東人之昧名物 每如是矣 - 五洲衍文長箋散稿 萬物篇/草木類/樹木/金桐及靑楊辨證說. (<중약대사전>에 따르면 ‘작부답鵲不踏’은 ‘총목백피楤木白皮’의 별명으로 나오며 이는 Aralia chinensis의 껍질이다. Aralia chinensis는 두릅나무(Aralia elata)와 아주 비슷한 관목 식물이어서 교목인 음나무와는 다르다. 한편 <중약대사전>에는 ‘조불숙鳥不宿’, ‘조부정鳥不停’ 혹은 ‘조부답鳥不踏’이라는 약재가 나오는데 이는 음나무의 가지를 말한다. 아마도 이규경은 ‘작부정목’으로 음나무를 뜻했을 가능성이 크다.)
***** 金永吉 譯註, 國譯 增補耽羅誌, 濟州特別自治道 濟州文化院, 2016, p.171 (제주문화원 자료실 전자책 https://jejucc.kr/data/ebook.htm)
****** 이형상 지음, 김새미오/이진영 역주, 남환박물,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 역사자료총서 6, 2022. p.73
*******이창숙, 여성희, 정소연,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제주도 전통식물의 통시적 연구 –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탐라지, 남환박물, 제주계록을 중심으로, 한국자원식물학회지 29(2), 2016.
********濟州語辭典, 濟州大學校博物館(濟州方言硏究會) 編輯, 濟州道 發行, 1995
********* 금동목은 1694년 울릉도를 수토搜討한 삼척 영장營將 장한상張漢相)(1656~1724)이 쓴 <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에서 울릉도 수목을 열거하는 부분에도 금동목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머귀나무는 울릉도에서도 자생하는 나무이므로, <울릉도사적>의 금동목도 머귀나무일 것이다.
“이른바 수목은 모두 동백冬栢, 자단(紫檀, 향나무), 측백側柏, 황벽黃蘗, 금동목金桐木, 엄목嚴木(음나무), 괴목槐木(느티나무 혹은 회화나무), 유목榆木(느릅나무), 저楮(닥나무), 초椒(산초나무), 풍楓(당단풍나무), 계수桂樹, 백栢(잣나무) 류이고, 그 중에 겨울 동백과 자단紫檀이 가장 많다. 소나무(松木), 참나무(眞木), 개암나무(榛木) 상수리나무(橡) 등의 나무는 전혀 없다. (所謂樹木盡是 冬栢 紫檀 側柏 黃蘗 金(桐)木 嚴木 槐木 榆木 楮 椒 楓 桂樹 栢之類而 其中冬栢 紫檀最多 松木 直木(眞木) 榛木 橡等木 段終無一株).”
<울릉도사적> 필사본은 여러 판본이 있으나, 모두 참조하지는 못했다. 일부 문헌에는 금동목金桐木 대신 ‘동桐’이 누락된 ‘금목金木’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금목金木’이라는 나무 이름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필사시 탈자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울릉도사적>에 金桐木이 수록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열람한 영인본은 ‘아주신씨중앙종회 사이트(www.aju-shin.org)’에 게재된 것으로 금목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전체 판본을 열람할 기회가 되고, 인용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수정 예정이다. 2012년 <대한민국 독도 이사부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손승철의 ‘울릉도 수토와 삼척영장 장한상’에는 ‘金桐木’으로 기재하고 있다.
%이원조李源祚(1792~1871)의 <응와집凝窩集>에 실려있는 오현상吳顯相(1785~?)에게 보내 편지에, 제주도 지리지의 수목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에서 “유동油桐의 토명은 금동金桐입니다. 가시가 있고 잎은 목두채木頭菜(두릅나무) 같이 특이합니다. 열매를 짜서 등유燈油를 만듭니다. 그릇 칠을 하는 것은 시험해보지 않았습니다. 비록 칠을 해도 공연히 사치를 도울 뿐 백성들의 쓰임에는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油桐土名金桐 有棘葉扁如木頭菜 笮實爲燈油 未嘗試於塗器 雖塗徒助侈而無益於民用)”가 나온다. 이원조는 금동을 유동油桐이라고 한 것이다. 현재 유동油桐 혹은 유동나무로 불리는 나무는 중국, 베트남 원산의 Vernicia fordii이며, 제주도와 전남 지방에 간혹 식재한다. 그러나 이 유동나무는 20cm 정도의 심장형 잎을 가지고 있어서 두릅나무 잎 모양과는 판이하므로 이원조가 말한 유동이 Vernicia fordii는 아닐 것이다. 두릅나무 잎은 2회 우상복엽으로 우상복엽인 점에서 머귀나무 잎과 비슷하다. 이원조는 1841년 제주목사 재임시 <탐라지초본>을 저술했으므로, 이 편지에 나오는 금동이 금동목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시 제주도에서 머귀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히는데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표지사진 - 머귀나무 수형 (2024.3.17 여수 금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