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mbretum indicum, 留求子
아이들 어렸을 때 우리는 소아과 문턱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열, 설사, 기침, 감기, 찰과상 등 갖가지 이유로 병원을 드나들었는데, 돌이켜보면 의사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이를 길렀을까 싶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아이들이 아프면 의사의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현대에도 아이 양육은 쉽지 않은데, 의료 체계가 부족했던 조선시대에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각 지방마다 의원이 있고 한방 약재도 있었다지만, 일반 백성들의 접근은 어려웠을 터이다. 더구나 독성이 강한 약을 쓰기 어려운 연약한 어린아이들 병 치료는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리라.
‘사군자使君子’ 열매는 독이 없고 맛이 달아 조선시대에 소아병 치료에 사용한 대표적인 약재로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면 <산림경제> 구급편에서 아이들 구충제로 ‘사군자육使君子肉’이 사용된다고 했다.* 육肉은 씨앗을 발라낸 열매 과육이니 ‘使君子’ 열매의 과육이다. <목민심서>에도 회충 치료에 쓰이는 ‘2피3육탕二皮三肉湯’의 약재로 사군자육이 보인다. <동의보감> 탕액편에서는 사군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使君子.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아이의 오감(五疳)과 살충, 설사를 멈추는 데 효과가 있다. 치자 모양과 비슷하며, 다섯 모서리가 있다. 껍질은 청흑색이며 안에 흰색 인仁이 있다. 7월에 열매를 채취한다. 곽사군(郭使君)이 이것을 사용하여 어린이 치료를 시작하였으므로 使君子라고 부른다. 껍질을 제거하고 씨앗(仁)을 쓴다. 간혹 껍질도 함께 쓴다.”***
이 기록으로 보면 사군자는 아이들 구충제뿐 아니라 감기疳氣, 설사 등을 치료하는데 쓰였으니 어린아이가 있는 집안의 필수 약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약재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귀한 약재였다.
지난 1월 하순 베트남 여행 중, 나트랑 시내를 걷다가 덩굴시렁(pergola)을 덮으며 자라고 있는, 붉은 꽃 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를 만났다. 처음 보는 예쁜 꽃이 싱그럽게 피어 있는지라 사진으로 남겼다. 여행을 다녀온 후 식물 사진을 정리하면서, 이 덩굴성 목본 식물의 학명이 Combretum indicum이고, 중국명이 使君子임을 알게 되었다. 식물 이름이 ‘使君子’라니,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다. 언뜻 해석하면 ‘君子로 하여금’이 되는데, 식물명으로는 조금 어색했다. <중국식물지>에서는 별명으로 四君子, 史君子 등이 나오나, 모두 ‘君子’와 무슨 관계인지 아리송하다.
이옥李鈺(1760~1815)의 <백운필白雲筆>에는 꽃, 곡식, 화훼, 풀, 나무 등 온갖 식물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옥은 당시 우리나라 문헌 뿐 아니라 수입된 각종 유서류를 바탕으로 식물명을 고증했는데, 일본의 <화한삼재도회>도 참고했다고 한다. 마침 <백운필>의 식물을 살펴보는 중이라, <화한삼재도회>를 펼쳤다가, ‘使君子’가 그림과 함께 실려 있는 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나무 등걸을 칭칭 감아오르는 덩굴에는 치자 같은 열매와 큼직한 홑꽃이 하나씩 매달려 있는 그림이었다. 이 <화한삼재도회>의 使君子가 과연 내가 베트남에서 만났던 그 덩굴식물일까? 그림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 설명문을 읽어보았다.
“<本草綱目> 使君子는 본래 영남嶺南과 교지交趾에서 자란다. 지금은 민閩과 촉蜀에서도 재배하기 위해 심으며 잘 자란다. 그 덩굴은 칡처럼 나무를 감으면서 오르며, 잎은 오가(五加, 오갈피나무) 잎과 비슷하다. 5월에 꽃이 피는데 한 송이에 10~20개의 꽃이 달리며, 붉은 색이 해당화처럼 가볍게 하늘거린다. 열매는 길이가 한 치 남짓하며 5판이 합쳐진 모양에 모서리가 있어 치자 종류와 비슷하다. 어릴 때는 노랗다가 익으면 자흑색이 된다. 그 안의 씨앗(仁)은 비자처럼 길쭉하고 색과 맛은 밤과 같다. 오래된 油黑색은 쓸 수 없다. 어린아이의 병을 치료하므로 유구자留求子라고 이름한다. 기운과 맛은 달고 따뜻하다. 어린아이의 온갖 병과 오감五疳, 소변 백탁白濁, 설사, 허열을 다스리고 비위脾胃를 튼튼하게 한다. 무릇 벌레를 죽이는 약은 대부분 쓰고 매운데, 오직 사군자와 비자榧子만이 달면서 벌레를 죽이는 것도 특이하다.”****
교지交趾는 베트남 북부지방을 말한다. 오갈피나무 잎 모양이라는 것은 정확한 묘사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이 설명문을 통해 <화한삼재도회>의 使君子가 바로 내가 나트랑에서 만난 C. indicum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사군자 열매 과육의 맛이 달아서 더욱 소아병을 치료하는데 적당했을 것이다. 별칭인 ‘유구자留求子’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머무른다’는 뜻일 터이고, 사군자는 ‘사군使君’, 즉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가 어린이를 치료한 열매라는 뜻이다.
사군자(C. indicum)의 원산지는 탄자니아, 중국, 베트남을 포함한 아시아의 열대, 아열대 지방 및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지방이라고 한다. <중약대사전>에는 사군자의 학명이 Quisqualis indica로 기재되어 있으나 이것은 현재 C. indicum의 이명이다. <한국고전종합DB>를 검색해보면, 使君子의 용례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대부분 ‘君子로 하여금’의 뜻이지만 한약재 이름으로 쓰인 용례도 꽤 많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20년(1744) 조에서, 임금이 “사군자육使君子肉은 약성과 맛이 어떠하기에 기생충을 다스릴 수 있는가?”라고 묻자 유척기兪拓基(1691~1767)가 “석웅황石雄黃과 고련근苦練根 등의 약물이 능히 기생충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만 유독 사군자육이 맛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도 모두 먹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임금도 사군자가 구충제이자 소아병 치료제로 사용됨을 알고 있었다.
나트랑 시내에서 덩굴시렁을 장식하고 있던 식물의 열매가 조선시대의 유명한 소아병 치료제 사군자임을 알게 된 것은 이번 여행의 뜻밖의 수확이었다. 조선시대 의원들은 중국에서 수입한 사군자 열매만 보았을 터이니, 꽃 송이가 얼마나 예쁜지는 몰랐을 것이다. 나는 바람에 살랑이던 사군자 꽃송이는 감상했지만 열매는 보지 못했다. 이 붉은 꽃이 수정되면 곧 달콤한 맛의 치자 모양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군자 열매가 자흑색으로 익어갈 무렵 다시 베트남 여행길에 오르고 싶다. (끝)
* 若貫心則殺人甚急 使君子肉一兩 水煎服 - 山林經濟/救急/蛔厥
** 牧民心書/寬疾
*** [唐]使君子. 性溫味甘無毒 主小兒五疳殺虫止泄痢. 形如栀子 而有五稜 其殻青黑色 內有仁白色 七月採實 始因郭使君療小兒多用此 因號爲使君子 去殻用仁 或兼用殻《本草》 – 東醫寶鑑/湯液編
**** 本綱使君子 原出嶺南交趾 今閩蜀皆栽種之 亦易生 其藤如葛繞樹而上 葉靑如五加葉 五月一簇一二十葩 紅色輕盈如海棠 其實長寸許 五瓣合成 有稜 類巵子 嫩時半黃老則紫黑 其中仁長如榧子 色味如栗 久則油黑不可用 此藥療小兒疾 故名留求子. 氣味 甘溫. 治小兒百病 五疳 小便白濁 瀉痢 虛熱 健脾胃 凡殺蟲藥多是苦辛 惟使君子 榧子 甘而殺蟲 亦異. – 和漢三才圖繪/濕草類/使君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