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치킨이 된 나의 투피스 정장

내가 좋아하던 옷과의 이별

by 클라라

오랫동안 중고앱에 올려놓았던 나의 투피스 정장이 드디어 팔렸다. 좋아하던 옷이고 웬만하면 살을 빼고 입고 싶었기 때문에 '드디어'라는 말은 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나는 절대 날씬해지지 않았고 한 해가 지날수록 체중은 늘어갔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20년 전 구매한 투피스 정장... 그런데 구매하러 오신 분을 보고 조금 놀랬다. 분명 난 20대에 구매한 옷인데 60대로 보이는 분이 구매하신 것이다. 친한 언니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시대가 다른데.. 지금이 그때랑 같니?"라고 말한다. 말인즉슨, 지금 젊은 애들은 그런 정장을 입지 않을뿐더러 연로하신 분들은 최대한 젊게 입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래도 좀 나이에 맞게 입는 게 더 품위 있어 보이지 않나? 60대가 되어야 젊어 보이고 싶은 그 기분을 알 수 있을까? 40대 중반이라는 내 나이가 좀 어중간하긴 하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불혹의 나이... 아무튼 그 옷을 판 돈으로 난 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으며 20대 때의 추억을 떠올렸다. 중요한 자리에서나 입을법한 너무나 고급스럽고 예쁜 벨로아 정장..

스물일곱에 난 꽤 괜찮은 남자와 소개팅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산 옷이다. 처음 만난 날 입은 건 아니고 두 번째 만났을 때 입었다. 생각해 보니 이성을 만날 때 정장을 입는 건 지금 20대들의 모습은 아니구나... 후훗...

어쨌든 설레는 마음으로 그 남자를 몇 번 만났고 전화통화도 많이 했다. 좋아한다는 고백도 받았고 여자는 사랑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사람이 떠오르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 말로만 듣던 핑크빛으로 보이는 세상이 현실이 되고 모든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게 되고 착해지는 마음을 갖게 되고.. 사랑에 빠졌을 때 나오는 호르몬의 영향은 그야말로 너무나 컸다. (그렇다고 잠자리까지 한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천천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던 도중 갑자기 연락이 뜸해졌다. 매일 전화를 했던 사람이 며칠 동안이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면 한참 후에 답장이 왔다. 몇 년 동안 사귄 오래된 연인들도 아니고 단지 몇 달의 시간 동안 나 혼자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은 나에게 쉽게 싫증이 난 건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난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서 문자를 보냈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맞냐고... 늦게까지 대답이 없었고 나의 '연락 그만하는 게 좋겠다'라는 문자로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이미 20대의 자존심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소개한 사람에게 뭘 물어보지도,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 뒤로 한두 번 더 입고 못 입은 정장을 20년 후 헐값에 팔고 마시는 맥주의 맛이란... 그냥 웃음만 나옴. 그때 받은 상처가 너무 컸는지 난 그 이후로 누굴 만나지 않았고 사랑을 믿지도 않게 된 것 같다. 옷은 변하지 않았지만 옷의 가격에 변화가 있게 되었고 그 옷의 주인은 외모도 생각도 마음도 변했고 앞서 얘기한 시대의 변화도 있고 20년이란 시간 동안 강산이 두 번 변함? 옷만 빼고 다 바뀌었군. 옷은 못 입게 되었지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길 바란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시간이 좋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좋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드러나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사람이 되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고 싶다. 맥주 한잔을 더 따르며 나에게 잠시나마 사랑을 경험하게 해 준 그 시간, 그 사람,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옷과 이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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