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경험 : 스마일런 페스티벌(9/1)
지난주 올해 마지막 대회를 마무리지었다. 하반기부터 시작한 대회 참여가 어느새 다섯 번이나 되었다. 과정을 기록해 본다.
대회 경험 : 스마일런 페스티벌(9/1)
결국 시작은 하프가 되었다. 처음에 10k부터 시작하려고 등록하고 나니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아 하프까지 등록하게 된 것. 하프 대회가 일정상 먼저여서 시작은 하프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한 20여 년 전 회사 차원에서 얼떨결에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후반에 걷다 뛰며 간신히 완주. 그 뒤로 마라톤은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그쪽은 관심도 안 가졌는데, 어쨌든 다시 나는 하프 마라톤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 대회나 마찬가지라 많이 긴장도 되고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되었다. 이런저런 자료 조회를 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준비했다.
전날 가볍게 러닝을 하고 푹 쉬었다. 대회 당일 먹을 아침용 샌드위치도 준비하고 에너지젤도 잊지 않고 챙겼다. 날이 너무 더울 거 같아 걱정이었다.
아내와 대회용 러닝화와 갈아입을 옷, 배번 등을 챙기고 여의도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대회장을 보니 사람들의 무리로 장관을 이뤘다. 어릴 적 학교 운동회 때 느낀 설렘이 밀려왔다. 날은 좋았다.
아내가 있었지만 경험을 위해 짐을 맡겼다. 테이핑 한 무릎에 보호대도 착용하고 러닝벨트에 이어폰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출발 시각 무렵 되니 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느낌이었다.
연예인들이 나와 무대는 시끌시끌했고 경품 추첨도 하고 이런저런 인사말을 들으며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그동안 몸을 풀며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 나의 대회 참여를 알렸다. 너무 뒤에 있으면 인파를 뚫어야 한다는 후기를 보고 가급적 앞쪽에서 대기를 했다.
카운트 다운을 하고 드디어 출발. 나이키 앱을 누르고 휴대폰은 러닝벨트에 넣었다. 출발선을 통과하면서 진정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폰에서는 미리 선별해 둔 락의 리듬이 흐르고 있고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 달리고 있었다. 컨디션은 좋았고 인파에 밀린 건지 나도 모르게 페이스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몸이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1k가 채 안 되어 풍선을 달고 달리는 1시간 40분 페이스 메이커를 봤다. 내 목표는 1시간 45분. 5분 페이스를 유지하면 가능하다. 저 풍선을 어느 정도 따라가면 되겠지. 갈 만했다. 추월도 할 수 있을 기세였다. 나도 모르게 오버페이스가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의식적으로 자제했다. 페이스 메이커만 뒤에서 따라가기로 했다.
2.5k 지점에 첫 번째 급수대가 나왔다. 종이컵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다 그냥 옆으로 움켜쥐었는데 물을 반은 흘린 거 같다. 어쨌든 물컵을 쥐고 입에 털어 넣고 나니 목은 좀 축여졌다. 사래도 들고 불규칙한 행동으로 인해 호흡이 흐트러진 후 정상 러닝 궤도를 찾을 때까지는 높은 심박수를 바쳐야 했다.
다행히 페이스 메이커는 따라잡을 범위 안에 있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어오는 나이키 앱의 멘트로는 내가 거의 4분 40초 페이스 전후로 달리는 듯했다.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더위가 굉장히 불길하게 느껴졌다. 10k 이상을 뛰기는 어려워 보였다. 페이스 메이커의 페이스는 4분 45초 정도일 텐데 내가 따라가긴 무리였다. 5k 지점에서는 그냥 보내드렸다. 나는 목표한 대로 5분 안쪽 페이스로 뛰기로 하고 속도를 늦췄다. 결과적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어느새 바글바글하던 사람들은 한참 전에 제친 뒤라 띄엄띄엄 달리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 방해 없이 레이스를 즐겼다. 다만 문제는 더위.
여의나루역에서 성산대교를 넘어갈 때쯤엔 더위가 확 느껴졌다. 급수대에서 물을 보급하긴 했지만 내리쬐는 태양은 여전히 한 여름이었다. 꾸준히는 뛰겠지만 오버페이스 하다 탈진하면 문제가 커진다.
코스는 평소에 한강에 나오면 달리던 구간이라 익숙했다. 안양천합수부를 지나 마곡대교 근방까지 가면 반환점. 태양은 더욱 뜨거워졌고 몸에서 기력이 쭉쭉 빠졌다.
반환점을 한 2k 정도를 남겨 둔 거 같은데 반환점을 지나 돌아가는 선두 그룹이 지나갔다. 이 더위에도 거의 전력질주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참 세상엔 달리기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꾸역꾸역 반환점 통과. 어질어질할 정도로 더위가 몸에 엄습해 왔다. 반환점 통과 후 앞서 가던 사람 중에는 중간 수돗물에 세수를 하는 사람도 있고 급수대에 아예 서서 물을 마시는 사람도 나왔다.
절반을 넘었으니 이제 10k 정도만 뛰면 끝난다는 생각이 위안이 되기도 해서 잠시 힘이 났지만 13k 지점을 지나면서 고통의 시간이 왔다. 연습 때도 항상 13k 지점부터 힘들었다. 덥다 보니 몸은 완전히 풀려 근육통은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더위가 온몸의 힘을 빠지게 했다.
‘나는 미쳤다, 나는 달리기에 미쳤다’를 반복하며 계속 달렸다. 다시 걷는 사람도 나오고 그 와중에 나를 추월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래 봐야 두세 명. 벌써 같이 뛰는 사람들이 익숙해진 것 같다. 여의도를 향해 1k, 1k를 줄여 나가는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올라왔다. 근데 포기하면 걸어가야 하는데 이 땡볕에 걸어갈 생각을 하니 더 힘들었다. 빨리 가야 빨리 쉰다. 계속 뛰었다.
마지막 3k 정도를 남겨 두고는 정말 쓰러질 듯 힘들었다. 러닝벨트에 넣어 두었던 에너지젤을 드디어 꺼냈다. 그걸 꺼내서 짜 먹는 것도 힘들었다. 대회 중 처음으로 먹어봤다. 원래 10k 정도쯤 먹는 걸로 알려졌는데, 소심한 나는 마지막 힘들 때까지 참다가 고민 끝에 꺼내 먹었다. 쓰레기도 버리면 안 될 거 같아 한 동안 들고뛰다가 나중엔 주머니에 넣었다. 들고뛰는 모습을 하필 카메라가 포착한 것 같다.
거짓말 같이 큰 힘이 난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 레이스에 에너지젤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마음의 위안도 되고. 나는 계속 뛰었다.
그 무렵 나는 뜻밖에 1시간 40분 페이스 메이커 풍선을 만났다. 내 속도가 그 정도가 아닌데 이상했다. 알고 보니 페이스 메이커 두 명중 한 명이었는데, 아마도 더위에 지쳐 페이스 유지에 실패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어쨌든 그 페이스 메이커도 추월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친 무리들을 따라잡았다.
어느새 나는 한 여성 러너와 같은 크루 소속의 남성 러너가 서로 격려를 하며 뛰고 있는 장면을 만났다.
나는 다른 데 정신 팔리면 에너지 소모가 많을 거 같아 나의 페이스에 집중하며 뛰었다. 전문 선수 같은 복장의 그들을 심지어 추월까지 했다. 여성분이 18k이상을 이렇게 빨리 왔다니 대단했다. 초반 페이스 메이커 뒤를 바짝 쫓던 분이었다. 더위에 지쳤는지 비명을 지르며 뛰고 있었다. 나에게 추월 당해 더 억울(?)했는지 소리는 더 커졌다. 이제 서강대교를 지나면서 결승선이 가까워졌다. 두 남녀는 나를 추월하기도 나에게 추월당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걸 신경 써 속도를 올릴 정도의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완주가 목표니 추월하시오, 하는 맘으로 내 페이스만 유지했다. 결국 마지막 10여 미터 정도 전방에서 나를 추월하더니 결국 결승선을 통과했다. 주최측은 그녀를 보고, ‘여자 1등, 여자 1등’을 외쳤다. 그리고 나도 바로 결승선 통과. 아이고 끝났다.
나는 너무 뿌듯했다. 쉬지 않고 걷지 않고 완주를 했다는 게 감격적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내는 나의 환호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얼핏 1시간 45분 안에 들어온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기분 좋았다.
(나중에 확인한 공식 기록은 '1:44:37'. 당연히 PB.)
이온음료로 목을 축이고 났는데,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이 다가왔다. 드러눕고 싶었다. 잔디를 찾아 누워버렸다. 몸에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웃옷까지 벗어 졌혔다. 좀 참고 쿨링 러닝을 하고 누워야 하는데 나는 너무 기뻐하다 지쳐 쓰러지고 만 것.
누워 있는데 손발이 저려오고 말이 어눌해졌다. 일사병 증상이었다. 불안을 느낀 나는 옆에서 아내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청년들에게 물을 얻어먹고 손발을 주물렀다. 호흡을 크게 반복하고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차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더위를 먹었던 것.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고 정신이 든 거 같다. 온몸이 피로감에 있었지만 입에서는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사실상 나의 첫 하프 마라톤은 마무리되었다. (악필, 202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