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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야산다] 시작은 하프다 6

대회 경험 : 서울경기육상연합 하프마라톤대회(9/22)

by 악필

대회 경험 : 서울경기육상연합 하프마라톤대회(9/22)


지난 여의도에서의 대회 참석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두 번째 하프대회의 기회가 왔다. 내가 평소 달리는 안양천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자세히 보니 안양천에서 하프대회를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걸어가면 되는 곳에서 출발. 1회 대회라 인기가 없을 테지만 집 앞에서 열리는 대회니 부담 없이 생각하고 참석하기로 했다. 대회 신청도 바로 되었다. 사실 접수 후 이게 제대로 접수가 된 건지, 사기인지,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부담 없는 금액이기도 해서 맘 편히 먹기로 했다.


대회 전날 사실 산행이 있어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비로 인해 산행이 취소되면서 자연 컨디션 조절이 되었다. 올해는 아무래도 달리기 기운이 더 강한가 보다. 첫 대회가 너무 더워 고전하긴 했지만 이미 대회 경험이 생생했고 일명 ‘대회뽕’의 힘도 느낀 바가 있어 좀 더 나아질 것 같은 기분은 들었다. 특히 가을로 바뀐 날씨가 러닝을 훨씬 쾌적하게 할 것 같았다.


지역의 작은 대회이다 보니 규모도 작았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가까이에서 이런 대회가 열린다는 게 기분 좋았고, 이제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소규모 대회가 경험 쌓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도 통제해 주고 중간에 물도 주니 연습하기엔 이런 대회가 정말 딱이다.


역시 아내랑 걸어서 대회장에 가서 기록칩이 달린 배번을 받고 나서야, 다행히 대회는 사기가 아니라며 안심을 했다. 날씨는 아주 덥지도 않고 적당한 가을날이었다. 사람이 바글거리지도 않았고 또 코스도 내가 평소 달리던 익숙한 곳이었다. 마지막까지 화장실도 가고 에너지 젤도 이번엔 두 개나 챙기며 좀 더 익숙하게 준비를 했다. 경험은 쌓일수록 적은 에너지로 좋은 판단을 하게 하는 것 같다.


하프 대회 출발선에 서니 50명이나 될까 하는 수치였다. 경품 추첨할 때는 10k까지 합쳐져 많아 보였나 보다. 하튼 출발선 앞에 서니 역시 설렘과 긴장이 같이 몰려온다.


선두라인에서 세 번째쯤 뒤에 서서 나이키 앱을 준비한다. 첫 대회다 보니 출발 시키는 것도 좀 어설프긴 하다. 어쨌든 9시 무렵에 맞춰 출발.

지난번 대회와 같이 나이키 베이퍼플라이 3의 가벼운 탄성을 느끼며 신나게 출발했다. 이게 장기리이다 보니 출발이 연습인지 대회인지 모르게 아주 큰 긴장감은 없었다. 100미터, 200미터를 달리며 컨디션을 조절하다 보면서 ‘아, 내가 대회에서 달리는구나’ 정도라 할까.


출발 후 10분도 안 되어 대충 선수라인이 정해진 거 같다. 처음이 아니다 보니 이번엔 속도를 올리는 거에 좀 더 과감해졌다. 더위도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고. 사실 걸어서 대회장 갈 때는 다소 썰렁한 기운까지 있었기에 폭염걱정은 아예 없었다.

선두 그룹은 신나게 치고 나갔고 나는 전보단 단축된 기록을 목표로 하므로 안정적 4분대 진입을 꿈꾸며 나아갔다. 초반엔 일단 4분 40초대 정도로 시작한 거 같다. 나중에 지치면 어차피 느려지니 미리 당겨놓는 게 좋을지, 처음부터 힘을 비축해서 나중에 속도를 내는 게 좋을지 항상 고민이지만, 후반에 어차피 힘들고 지치므로 컨디션 좋은 초반에 손쉽게 속도를 만들어 놓는 게 좋다는 순전히 감으로 전략을 짰다. 끝은 어차피 초죽음이 되어 달리는 거니.

4:40대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더 빠르면 안 될 거 같았다. 같이 달리는 페이스 비슷한 사람을 따라 꾸준히 페이스를 떨어뜨리지 않고 달렸다.


구일역 근방 운동장에서 출발해 광명대교-금천교-시흥대교 정도까지 가서 다시 광명대교-오목교-목동교를 지나 목동병원까지 달려 다리 건너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첫 번째 반환점을 돌아 금천교를 지나 달리는데 자전거 동호회 분들이 앞길을 지나는 바람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노련하지 못했다. 심박수는 확 올랐을 게 분명.

그래도 곧 정상 궤도를 잡고 계속 뛰는데 지난번 대회보다는 확실히 몸상태가 나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코스를 달린다는 것도 참 마음을 편하게 했다.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쓰며 계속 달렸다.


목동에 접어들고 신정교를 지나고 오목교를 지나면서도 최대한 페이스 유지에 힘썼다. 안양천은 자전거 도로와 보행용 도로로 나뉘는데 나는 평소 안전을 위해 보행용 도로를 달렸다. 근데 이번엔 대회라서 자전거 도로가 통제되어 달릴 수 있었는데, 여전히 자전거가 오가고 있어서 다소 위험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마라톤 대회 속도는 느린 자전거 운행자랑도 비슷하니 서로 양해를 구하며 그냥 달렸다. 페이스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면 계속 자전거 도로를 타는 게 좋았다.

이번엔 에너지젤 두 개를 다 쓰기로 했다. 일단 10k 부근에서 하나 먹은 거 같다. 수분도 빠뜨리지 않고 공급했다.

신정교를 지나 목동교로 이어지는 목동구간을 지나는데 피로가 몰려왔다. 이제 지치는 구간이 온 것이다. 목동 병원 앞이 15k 지점. 수분 섭취하고 힘을 냈다. 어차피 고통스러운 시간은 오게 되어 있고 그건 곧 끝나게 되어 있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고집스럽게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살짝살짝 밀리는 페이스는 어쩔 수 없었다.


17k 정도 이후를 달리는데 코스 잡기가 애매했다. 역시나 인도와 자전거 도로 중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자전거 도로는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무작정 그 코스를 잡기가 좀 겁났다. 그래서 인도를 찾아가려는데 또 길이 구불구불하고 동선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다시 자전거 도로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가는데 지침은 더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 코스는 평소에 다니던 길은 아니었다. 앞사람을 따라가다가도 그 사람이 길을 잘못 든 거 같아 다른 길을 택하기도 했는데 다시 만났을 때는 어느새 저 멀리 앞서 가기도 했다.


아마도 막판에 에너지젤을 먹었을 거 같은데 어느 지점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쳐 있었다. 지친 상태에서 에너지젤을 꺼내 먹는 것도 잘 생각해야 한다. 러닝벨트에 하나 허리 뒤춤에 하나 넣고 뛰었는데, 휴대폰이 들어 있는 러닝벨트에서 하나 꺼낼 때는 여유가 좀 있다. 근데 뒷춤의 두 번째 에너지젤을 꺼낼 때는 치친 상태이므로 꺼내는 것부터 젤을 찢고 짜서 입에 넣는 과정( 그것도 서둘지 않고 천천히 먹어야 사래가 안 걸린다), 그리고 남은 포장지 뒤처리까지. 이거 힘들다. 괜히 잔여 액까지 다 먹으려고 힘까지 쓴다.(이건 나중엔 안 하게 되었다. 미련한 짓이다.) 마라톤 대회니 그냥 쓰레기로 도로상에 버려야 하나 주머니에 넣어야 하나, 까지도 고민된다. 그래서 급수대 나오기 전에 먹고 그 근방에 버리면 되는데, 그건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좀 더 대규모 대회에서는 다른 사람이 버린 걸 보고 나도 별 죄책감 없이 버리게 되었다. 아직 익숙지 않은 것들이 많다.

하여간 나는 치친 상태에서 에너지젤을 짜 먹고 막판 힘을 다해 뛰었다.


저 멀리 구일역이 보이는데 에너지젤을 먹었음에도 몸은 무거웠다. 속도를 더 내기도 어렵고 더 늦추기도 어려운 느낌. 난 나이 때문인가, 비교적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편인데, 젊은 친구들은 막판에 미친 듯이 전력질주 하는 모습을 보니 나이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나올 힘이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것뿐.


마지막에 내가 따라잡은 사람보다 휙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확실히 전 대회보다 나은 기록이라는 확신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고통은 끝났고 성취감은 충만했다.

공식 기록은 ‘1:40:10’! 전 보다 4분가량 단축했다. 역시 PB.


이번엔 피니쉬 후에도 지난번 보단 확실히 덜 힘들었다. 아, 달리기! 이젠 훈련도 아니고 허리 재활 때문도 아닌, 정말 자체로 좋아졌다. 다음 대회가 벌써 기대가 되었다. (악필, 202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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